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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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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26일 07시 22분 등록

우선 밝혀야겠다. 나는 돈을 좋아하는 편이다. 몸과 마음이 지쳐 너덜너덜해졌을 때, 뜨거운 물에 얼굴만 내놓고 들어가 앉아 잠시 후 내가 누워있게 될 세신용 침상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벌써부터 쌓인 피로가 녹아내린다. 사지 멀쩡한 젊은 것이 벌써부터 웬 사치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여사님에게 몸을 맡기고 있는 그 몇 십분 덕에 넘긴 삶의 위기가 상당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돈과의 사랑.JPG


그림 출처 : https://www.pinterest.co.kr/pin/783907878860449977


아무리 애를 써도 손이 닿지 않는 등의 한가운데까지 시원하게 밀어내고 나면 마치 묶은 허물을 벗은 기분이 든다. 말끔히 몸을 씻은 후 사우나에서 다시 데운 몸을 냉탕에 천천히 담그면 열린 피부층을 통해 세포 하나하나까지 찬 기운이 들고 나며 온 몸이 깨끗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후들거리던 다리가 추슬러지며 싱싱한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사십년 넘게 내 몸과 함께 해온 경험으로 적어도 석 달에 한번 씩은 이런 갱생의 시간이 절실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때가 왔을 때 망설이지 않고 꺼내들 수 있는 만 원짜리 몇 장이 있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친구같은 관계

어찌 이뿐일까? 돈이면 뭐든 할 수 있다고 믿지는 않지만 돈과 친하게 지내서 나쁠 것은 없다. ‘친하게’ 라는 표현이 좀 애매하다. 그러고 보니 대체 얼마나 ‘친하게’ 지내는 것이 좋을지를 몰라 참 오래도 부대꼈다. 오랜 시행착오 끝에, 만나고 싶을 때는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친구같은 관계가 서로에게 가장 건강한 거리임을 알게 되었다. 열일 제쳐두고 지극 정성을 다하지는 못 할지라도 마음을 낮추어 예의를 지킬 수 있어야 얻을 수 있는 거리다. 때때로 조금 더 가까이 지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마음만 앞설 뿐 행동이 따라주지 않는 것이 우연이 아님을 알고 있기에 금새 욕심을 거둔다.

한 때 오해했던 것과는 달리 다행히 이 친구, 내게 정성을 다하고 싶은 다른 대상이 있다는 사실을 흔쾌히 인정할 줄 아는 이해심 깊은 친구다. 심지어는 내게 소중한 그들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것을 기꺼워하기까지 하는 눈치다. 미안해하는 내게 그는 말한다. 그것이 자신이 세상에 온 이유라고. 자신을 제대로 쓸 줄 아는 나를 만나서 참 기쁘다고. 그런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사랑’한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그에 대한 예의를 다하고 싶은 마음만은 결코 겉치레가 아니다.

친구에 대한 예의를 표현하는 법

그에 대한 존경을 표현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반드시 필요할 때에만 그를 부른다. 부주의나 귀차니즘으로 그를 소환하는 것은 명백한 결례다.

둘째 그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는다. 자나 깨나 그만 생각하자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언제 들고 나는지, 탈 없이 잘 있는지 정도는 챙긴다. 짬나는 대로 그의 취향과 언어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더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지만, 그게 여의치 않다면 적어도 안부정도는 파악하고 있어야 필요할 때 연락을 취할 수 있다.

셋째,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반드시 초대해 의견을 묻는다. 그에게 결정권을 넘기라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어떤 계획과 의도를 갖고 있는지, 그것이 내게 얼마나 의미있는 일인지 정도는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기본적인 소통도 없이 덜컥 일부터 저질러 놓고 별안간 호출하는 방식으로 오래 유지할 수 있는 관계는 드물다.

물론 한다고 하는데도 영 감감 무소식인 경우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애타게 기다려도 오지 않는 그를 무작정 기다리다 보면 그야말로 속이 타들어 간다. 그러게 좀 더 잘하지 그랬냐는 자책과 한다고 했는데 어쩌면 이럴 수가 있냐는 원망이 영영 다시는 못 만날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뒤섞이면 제 정신 차리기 어려울 때도 많았다. 하지만 그것도 다 옛 이야기다.

이제 그는 가장 적절한 타이밍에 정확히 나타나 딱 좋은 만큼 머물다 간다는 것을 더 이상 의심하지 않는다. 올 때가 되었는데 오지 않는다면 아직 그에 의지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는 의미다. 너무 빨리 떠나가는 듯 느껴질 때도 마찬가지다. 결과적으로 그의 부재로 인한 뜻하지 않은 선물로 삶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이런 경험이 거듭되면서 그동안 나를 애태우던 그와의 엇박자의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돈'이라는 친구에게 배운 것들

내가 기대하던 그 일은 정확히 내 시야 속에서만 가장 좋은 일이었다. 속수무책 그를 기다릴 수 밖에 없게 되어서야 보고 싶은 것만 보느라 미처 눈에 담지 못하던 풍경들과 만날 수 있었다. 목표를 향해 한눈팔지 않는 ‘효율’을 위해 잃어버리는 줄도 모르고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내가 원한 적도 없는 그것으로 인해 이전에는 짐작도 할 수 없었던 시간의 질을 체험한다. 이 느낌을 모르고 죽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면 아찔할 정도다. 그러니 내가 어찌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을 도리가 있겠는가?

지금 우리는 정말 좋은 친구다. 우리가 ‘살아있는’ 이유가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 이후로 점점 더 서로를 아끼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사랑’하기 위해 지구에 머문다. 서로를 돕는다면 더 깊이 더 널리 사랑할 수 있다. ‘사랑’을 잃어버려 아파봤던 우리는 그 고통이 얼마나 끔찍한지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어마어마한 고통을 치유하는 유일한 처방은 진짜 ‘사랑’을 배워 나누는 것뿐이라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를 ‘사랑’하는 것도 같다. 하지만 우리의 사랑은 세상에 오직 너만 보이는 배타적 사랑이라기보다 각자의 존재 자체로 서로를 지지하는 동지적 사랑일 거다. 이 자리를 빌어 사랑스런 친구이자 존경하는 스승, 돈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어리석고 철없는 나를 기다리고, 믿고, 사랑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빙긋이 웃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너를 만나 나도 참 좋았다고.



블로그 : 내 삶에 변화가 찾아올 때

P.S.

이번주부터는 100%실패 이후, 다시 일어서는 과정에서 하나하나 다져나간 삶의 기본기(돈, 몸, 공간,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이번주부터 7주간은 그 첫번째 '돈과의 관계'입니다. ^^



--- 변경연에서 알립니다 ---

 


1. [출간소식『어느날 갑자기 가해자 엄마가 되었습니다』 정승훈 저

2015, 중학교 3학년 아들이 학교폭력 가해자로 지목되면서 소년재판까지 받았던 경험을 계기로 상담사로 활동하게 된 저자 정승훈의 수기입니다. 학교폭력 가해자 부모가 쓴 이 책은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특수폭행(집단폭행) 가해자가 되고, 아이와 함께 학교폭력위원회, 경찰서, 검찰청, 법원까지 거치며 겪은 경험과 그 이후 학교폭력 상담사로서 학교폭력 당사자와 그 부모들과 상담을 하면서 깨달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학교폭력 피해자들과 목격자들을 위한 정보도 자세히 담고 있습니다

http://www.bhgoo.com/2011/8598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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