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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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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31일 21시 10분 등록

새벽 3 30. 알람 소리에 눈이 저절로 떠진다



신기하다. 습관처럼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시계를 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뿌듯하다. 이런 몰입감. 기분이 좋다. 출근할 시간이 다가온다. 회사 출근 버스에 몸을 싣는다. 새벽에 책을 읽고 글을 쓴 뿌듯함의 온도가 아직 식지 않았음을 느끼며 버스 안에서 조용히 부족한 잠을 보충한다.




 버스가 회사에 도착하고 회사 정문이 보이면서 조금 우울해진다. 매번 똑같다. 이 두려운 기분은 뭐지? 늘 그렇지만, 오늘 아침도 회사 정문을 통과하며 무거운 공기 한 사발을 깊이 들이 마신다




내 자리에 앉아 마자 반자동적으로 컴퓨터를 켜고 이메일을 읽는다. 제발 새로운 이메일이 10개 미만 이길 기도하며 숨죽여 이메일 개수를 살펴본다. 다행이다. 밤사이 새벽 이슬을 맞으며 내게 배달된 이메일은 20개나 됐지만 나의 이름은 모두 참조로 되어있다. 내가 당장 할 일은 없어 보인다. 앗싸 땡잡은 날이다. 물론 어제 밤 8시까지 야근하며 이메일 처리한 것은 안 비밀. 그래도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야근은 가뭄에 콩 나듯이 한다. 왜 너 이제야 온 거니



갑자기 오늘 아침은 여유가 생겼다. 커피를 마시고 동료와 짧은 수다를 떤다. 늘 그렇지만 이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팀장님 호출이다. 예고 없는 호출로 등에는 식은땀이 주르륵. 응 괜찮아 월급 받잖아




월급통장.PNG





CEO 보고 자료를 리뷰하자고 한다. 보고 내용을 취합하고 정리하고 다듬어서 팀장님 리뷰를 거친다. 여기 고치고 저기 고치고 글자모양은 이걸로 했다가 글자 크기도 바꾸길 여러 번. 리뷰하고 고치는 것은 육체 노동




문제는 감정 노동. 자료에 빼곡히 채워진 숫자들에 대해 질문 받고 대답 못할까 두려운 내 심장. 조금 전까지 압박 받았던 소변의 욕구마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런 와중에 일이 터졌다




이틀 전에 유관부서에 제출했던 자료에서 숫자가 이상하다며 재검토 해 달라는 이메일이 도착했다. 늘 이런 이메일에는 눈에 거슬리게 따라 붙는 녀석이 있다. ASAP(As Soon As Possible). 이 말은 도대체 누가 만든 것인가? 일복이 터졌다. 오줌보도 터지려고 한다. 하도 많이 들어서 늘어진 카세트 테이프처럼 내 몸도 축 늘어져 의자 밑으로 몸이 빨려 들어갈 것 같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내 기분과는 상관없이 회사 시계는 멈추지 않고 돌아갔다. 드디어 퇴근이다. 내일 일은 내일의 내가 처리할 테니 일단 회사 정문을 쌩~하고 통과한다. 다시 회사 버스를 타고 내 보물, 아이들이 있는 집과 가까워진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오솔길. 오늘 처리하지 못한 일과 내일 해야 할 일들이 허락도 없이 내 뇌를 침범한다. 급 우울해진다. 왜 이러지? 응 괜찮아. 월급 받잖아




이 우울한 감정을 씻어 내려고 기분 좋은 일들을 상상해 본다. 갖고 싶던 빠~~알간 스포츠 카를 타고 해변을 달리는 생각. 그리운 어린 시절 친구 생각. 첫 사랑은 무얼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 이런 은밀한 상상에 피식 웃음이 난다



현관문을 연다. 아이들이 내게 뛰어 온다. 이것이 행복. 아이들이 10분 넘게 내 몸에 달라 붙어 있다. 옷도 갈아 입어야 하는데. ~회사에 있는 시간이 차라리 편한 걸까. 아니다. 그럴리가. 얘들아. 아빠 옷 갈아 입고 10초만 딱 10초만 등 좀 방 바닥에 붙여 보자꾸나




갑자기 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시계를 보니 어김없이 다시 새벽 3 30. 응 괜찮아. 난 꿈이 있잖아. 내 눈 빛은 다시 빛나기 시작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뿌듯함의 온기가 내 심장을 다시 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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