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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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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2일 06시 30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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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필요할 땐 언제든 찾아와주는 든든한 친구라고?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세상물정을 몰라도 어쩜 이리 모를 수 있을까?’ 어쩌면 당신은 살짝 빈정이 상하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당신도 모르게 이미 ‘허’하는 실소까지 날린 이후일 가능성도 있다.

따지고 보면 당신의 반응에는 상당히 예리한 구석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있을까? 지금 당신의 심기가 불편한 이유는 이런 관계가 자신같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허락 될 리 없다는 검토되지 않은 신념체계 때문은 아닌가? 물론 당신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번쯤은 당신이 가진 돈에 대한 신념체계를 꼼꼼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앞서 잠깐 고백했던 것처럼 나도 처음부터 이런 관계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 역시 꼭 당신과 같은 믿음으로 어색하고 껄끄러워 불편하기 짝이 없는 관계를 불가피하다고 여기며 견디던 시간이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당신과 다를 것 없던 누군가는 당신이 불가능할 거라 우기는 바로 그 관계 속으로 들어올 수 있었을까?

돈이라는 '비현실'


태어나자마자 비단 보료에 금수저를 물고 있지는 않았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삼군 사관학교를 통해 육군장교가 된 아버지와 역시 농부의 딸로 살다 결혼해 전업주부가 된 엄마 사이에 생긴 첫 아이가 나였다. 물려받은 것 하나 없이 오로지 외벌이 월급으로 살림을 꾸려야했던 형편이었으니 ‘금수저’는 그야말로 당치않다.

그러나 어떻게든 자식만은 남부럽지 않게 키워보겠다고 이를 악무셨던 부모님들 덕분에 돈이 없어서 뭘 못하거나 했던 기억은 없다. 이것이 70년대에 태어난 동년배들과 비교해 ‘특수한’ 환경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고생이 뭔지 모르고 자났다’는 것만은 인정할 수 밖에 없을 듯하다.

돌이켜 생각하면 신기할 정도다. 다행히 꼬박꼬박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고는 해도 네 식구 먹고 살고 나면 여유 따위가 있었을 리 없었을 텐데. 게다가 아버지가 마흔 여섯 젊디 젊은 나이에 병을 얻어 전역을 하신 이후엔 더더욱 살림살이가 팍팍했을 텐데 어쩌자고 돈이 궁했던 기억이 없다. 고등학교 때까지야 군인아파트에 살아 그럭저럭 비슷한 형편의 이웃들과만 교류했으니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완전히 다른 세상을 만난 대학에서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친구들과 함께 난생 처음 스키를 타러 가겠다고 하면 고가의 스키복을 뚝딱 사다주셨고(지금 생각해보면 빌려 입어도 충분했을 것을 굳이), 병상에 누워서도 이뻐지겠다는 딸을 위해 선뜻 쌍거풀 수술비를 내주셨다. 외벌이 가장으로 고군분투하시던 아버지가 간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고 집에 누워계신 형편에서도 미국 유학을 꿈꿨다. 그것도 뭔가 절실한 이유가 있기 때문도 아니었다.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없는데 마침 IMF로 갈 곳도 없고 해서 어찌어찌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주변사람들이 다들 유학 간다니까 나도 그러지 뭐 하고 있었던 거다.

결과적으로 유학을 접고 취직을 하긴 했지만 그때도 이유가 돈은 아니었다. 그저 공부가 지긋지긋해서였다. 대학원 시절 교환학생으로 머물렀던 일본에서 그 어렵다는 문부성 장학금을 받고 유학하고 있는 선배들을 직접 접할 수 있었던 것이 마음을 바꾸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어린 내 눈에 그들의 모습은 썩 멋있어 보이지 않았다. 왜 하는지 몰랐으니 재미있을 리 없던 공부에 매달릴 이유가 사라졌다. 그보단 폼나게 차려입고 나타나 술을 사주는 취업한 선배들이 훨씬 그럴 듯해 보였다.

그때쯤 집안 형편은 더더욱 어려워졌다. 아빠가 믿었던 친척과 친구에게 연이어 사기를 당하시면서 집이 경매로 넘어가고 아픈 아빠를 대신해 엄마가 신용불량자의 멍에를 뒤집어 쓰셨다. 그러나 다행히 어렵지 않게 취직이 되었고 받은 월급의 대부분을 엄마에게 생활비로 드리면서도 어쩐지 가난이라는 것이 피부에 와 닿지가 않았다.

수중에 가진 돈은 없었지만 가난해서 비참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부모님이 힘들어하시는 것이 가슴 아프기는 했지만 왠지 그 고통마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TV 속의 남 이야기를 보듯 담담히 지켜보며 그들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해선 안 되겠다는 다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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