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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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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9일 18시 57분 등록

월급쟁이 탁월함에 관하여

 

신나게 달려야 할 자전거가 바퀴가 터져 나자빠졌다. 하늘로 향한 바퀴는 어찌할 줄 모르는 나처럼 흐리멍덩하다. 멈출 때까지 돌게 내버려 둔 자전거 바퀴를 보며 무료한 주말을 견디게 한 낙 하나가 사라지나 싶었다. 수소문 끝에 모신 자전거 수리하는 아저씨, 그는 저문 눈을 천천히 껌벅거리며 인사했다. 예사롭지 않은 그의 공구 통엔 오랜 시간 동안 사용했음 직한 많은 공구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어디에 쓰이는지 알 수 없는 손때 묻은 나무막대, 손잡이 무늬가 닳아 희미해진 드라이버, 마모된 스패너. 눕혀진 자전거를 보자마자 문제를 파악하고 곧바로 수리에 들어가는 모습이 능수능란하다. 조금 전 인사하며 껌벅거리던 천진한 눈은 온데간데없다. 집중할 때의 눈매는 매섭고 매서운 만큼 동작은 간결하다. 마지막 체크까지 잊지 않고 마무리해내기까지 군더더기 하나 없는 일련의 과정에 나는 감탄했다. 착착, 기계처럼 허튼 동작 하나 없이 진행되던 수리 작업의 종래엔 그에게 인간 삶의 숭고함과 함께 지나간 조상을 본 듯 일종의 경건함까지 일었다. 인간의 행위를 보고 탄복한 적이 언제였나. 실로 오랜만에 경이롭고 드문 광경에 탄식을 연발했으니 나는 그의 숙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달의 운석처럼, 낯선 시간처럼 나는 숨죽이고 그를 지켜봤다. 그 덕에 탁월함에 관해 다시 생각한다.

 

숙련을 통해 이르게 된 절대적 단순성은 탁월함이다. 탁월함에 이르는 도저한 과정은 엄숙하다. 그러나 '삶의 현장에서 고도로 숙련된 절대적 단순성'이 삶의 목적일 수 있을까? 월급쟁이도 밥 벌어먹는 일에 관해선 자전거 아저씨처럼 각자 자리에서 탁월할 텐데 우리 삶은 왜 이리 공허한가. 아저씨가 자전거 수리를 마치고 떠난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나는 동태눈을 하고 꼼짝 않았다. 일에 탁월하지만, 자신의 삶에 관한 존재론적 성찰이 빠져있다면 그 탁월함은 얼마나 경박한 숙련이 될 것인가. 삶의 단편적 기술에 집착하여 탁월함에 이르렀지만,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는 허망함은 오랜 월급쟁이 생활 뒤에 찾아오는 필연적 무참함의 이유는 아닐까. 방향 없고 목적 없는 삶에 오로지 단편적 숙련에 매몰되어 제기랄, 징그럽게 일했다. 그 숙련은 오로지 돈을 위해서였다. 잡을 수 없는 돈을 좇다 보니 원하지 않는 것을 배우게 되고 하기 싫은 일을 하게 되고 누군가가 시킨 일을 하며 살게 되진 않았는가? 똑똑하고 탁월한 체하지만, 된장국 하나 제대로 끓여내지 못하는 반푼은 아닌가?

 

탁월함은 생산 아래에 있다. 비평과 평론이 제아무리 수준 높아도 한 줄 시보다 높지 않다. 그들은 시에 붙어사는 기생에 불과하다. 철학이 무한을 사유하더라도 오늘 내가 산 하루에 당하지 못한다. 이 세상 모든 위대한 자들은 스스로 잉태하고 스스로 출산한다. 스스로 생산하지 못하는 자는 임신하여 출산하는 자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생산하는 자를 폄하하고 왜곡하고 부정하는지 모른다. 생산이 먼저다. 탁월함은 후의 일이다. 탁월함에 쫓겨 인생을 놓치는 우를 범하고 있진 않은가. 생산이란 무엇인가, 자기 삶의 곡절을 자신의 방법으로 만들고 표현해서 세상으로 던지는 것이다.

 

그러니 부디, 지금부터라도 탁월하지 않아도 좋으니 생산자가 되어라. 생산하(거나 생산된)는 것들에 기생하는 자가 되어선 안 된다. 코멘트와 지적, 조언 같은 건 생산하지 못하는 자들의 저열한 열등감에서 오는 질투가 아니겠는가. 모든 위대한 비평보다 세련되지 않은 한 줄 시가 더 위대하다. 마찬가지로 날고 기는 월급쟁이 위에 쌀 한 톨 만들어내고야 마는 농군이 있다. 나아가 인민에 기생하는 것이 국가요, 죄에 기생하는 것이 법이다. 생산된 물자가 있어 돈이 있고 돈이 있어 자본이 생겨난다. 이 점에서 월급쟁이는 자본에 기생하는 것들에 기생하는 그러니까 자본의 3차 벤더쯤 되는, 보이지도 않는 기생에 불과한 초라한 존재다. 월급쟁이 삶은 잠재적인 어떤 것, 목적, 자아실현의 현실태과정에 있는 가능태에 지나지 않으므로 완성된 하나의 정체성일 수 없다. 그러니 월급쟁이로 삶을 마감할 순 없다. 지금의 삶이 삶의 완결이라 말해선 안 되는 것이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단지 예술에 의해서만 우리는 자신의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나만의 방식으로 나에 의해 생산된 예술 하나를 만들어야 우리는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을 표현하는 생산 방식 즉 예술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것은 춤이 될 수 있고 시나 소설일 수 있고 그림, 음악, 언어, 무용, 철학, 등산, 탐험, 모험, 영상, 영화일 수도 있다. 나를 나만의 방법으로 생산하는 것, 내가 본 세상에 관해 말하고 나를 보여주는 것, 이것이 예술, 생산의 본령이다. 월급쟁이로는 나에 관해 말할 수 없다. 주간보고는 이 세상 어느 것도 생산해 내지 못한다. 하루하루 치이는 일에서 나를 보여줄 방법은 없다. 설사 지금 하는 일에 탁월한 경지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그것이 묘비에 새길 수 있는, 나를 설명하는 존재 증명인지 자문해야 한다. 지금의 일에서 탁월함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내 길을 택하는 게 먼저다. 그리되면 터미널에서 들이켜는 우동 한 그릇에도 삶의 온도가 느껴지고 뚫어야 하는 벽으로 느껴질 터. 안전한 탁월함 대신 택한 내 길은 그렇게나 위험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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