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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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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15일 18시 22분 등록

그의 장도壯途에 부쳐

 

김홍빈(1964~, 산악인), 그는 열 손가락이 모두 없다. 그가 컵에 물을 따라 마실 때엔 두 손바닥을 가지런히 모아 합장해야 마실 수 있다. 신발 끈을 동여 맬 때엔 항상 누군가 매어 주어야 하고, 대소변을 볼 때엔 누군가 자크를 내려줘야 한다. 그도 한 때 열 손가락이 모두 붙어 있는 전도유망한 산악인이었다. 대학시절 암벽대회에서 수위 석권은 물론 노르딕, 스키, 바이애슬론까지 섭렵한 전천후 산악인이었다.

 

더 없이 잘 나가던 때, 1991 5월 북미대륙 최고봉 데날리(6,194m)에 오르며 사달이 났다. 혼자 산을 오르던 중 갑작스런 혹한과 계속되는 악천후로 정상 직전에 정신을 잃고 조난당하고 만다. 기적적으로 구조됐으나 동상은 온 몸에 퍼진 뒤였다. 알래스카 앵커리지로 긴급 후송된 후 일곱 번의 수술 끝에 그는 발뒤꿈치가 잘렸고 열 손가락을 잃었다. 그는 순식간에 벌어진 어이없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차라리 텐트 속에서 죽어가도록 놔두지, 정신을 차리고 난 뒤엔 원망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절망에서 벗어나 정신이 든 다음엔 먹고 살기 위해 마음을 다잡고 운전면허, 중장비 자격증도 따봤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죽으려 마음먹고 약국 앞까지 갔던 적이 수십 번이고 뛰어내리려 아파트 창가에 서 있기를 여러 번, 죽지 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러워 주저앉아 운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이렇게 살 바엔 산이라도 다시 한 번 가고 죽자는 마음을 먹고, 1997년 멀쩡한 산악인들도 하기 힘든 7대륙 최고봉 등정이라는 목표를 세운다.

 

지인들의 도움을 얻어 열 손가락이 없어도 고산등반이 가능하다는 걸 알았고 놀랍게도 하나씩 하나씩 계획대로 등정해 나가면서 자신감은 물론 삶의 애착이 더해졌다. 2002, 자신의 손가락을 모두 앗아갔던 북미 최고봉 데날리를 다시 오르며 7대륙 최고봉 등정을 10년 만에 마무리한다. 데날리를 다시 오르면서 트라우마를 씻어냈고 현실에 보란 듯이 승리한다. 2021년 현재 그는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14좌 중 불과 1개 봉우리만을 남겨 놓고 있다.

 

그와의 인연이 있다. 나와 에베레스트를 함께한 등반 대장님은 열 손가락이 없는 그에게 맞춤형 Ice axe(빙벽을 찍으며 오를 수 있도록 고안된 등반용 피켈)를 특수제작해 선물했었다. 10여년 전 내가 에베레스트 등반을 위해 네팔에 도착해 두려움에 떨던 때, 따뜻하게 맞아주며 카트만두에서 그와 함께 저녁을 하고 두려움을 떨쳐냈었다. 그가 들려주는 인생 역정과 그가 올랐던 8천미터급 히말라야 이야기는 초자였던 나에게 용기를 주는 어떤 것이었다. 이후 그는 행사에 필요한 글이 필요하거나 장문의 연설이 있을 때 꼭 내게 손을 내밀어 도움을 요청했는데 나는 기꺼이 그에게 빙의해 글을 썼었다. 에베레스트를 다녀온 내 이야기가 첫 책으로 나왔을 때 그는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며 월간 잡지에 전화를 걸어 홍보역을 자처했었다.

 

어제 그로부터 히말라야 8천미터 14개 봉우리 중 마지막 봉우리인 브로드피크(8,047m) 등정을 위해 파키스탄으로 떠난다는 말을 들었다. 장애인 최초 14좌 등정, 열 손가락이 없는 채로 그 험한 여정을 어찌 했는가. 그는 알피니스트 중에 알피니스트다. 그는 호모 사피엔스, 인류의 무형문화유산이다. 어제 그는 만년설을 향해 떠났다. 떠난다는 말은 언제 들어도 가슴 뛰지만, 떠나는 사람의 뒤통수에 대고 어떤 조건도 달아선 안 되지만, 나의 악우岳友, 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좋으니 부디 떠난 모습 그대로, 머리카락 하나도 한 올도 다치지 말고 이 자리로 다시 돌아오라.



IP *.161.53.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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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6 09:59:04 *.138.247.98

이번 장도에서 성공하던 실패하던 김홍빈님은 이미 승리자입니다.
그의 성공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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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8 12:18:59 *.9.140.76

자신의 삶을 통해 한계를 넘는 사람들을 볼 때 마다 큰 감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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