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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15일 23시 30분 등록

종종의 종종덕질


죽지마, 쫄지마, 같이 살거야 이 시대의 좀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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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를 좋아하시나요?

아니, 좀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네요. 저도 좀비를 좋아하진 않습니다. 좀비물을 좋아하지요. 영화랑 드라마 꽤나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좀비가 나오는 컨텐츠는 호불호가 확 갈리는 분야죠. 제 친구들도 그 징그럽고 잔인한 좀비물을 대체 왜 보느냐는 쪽과 좀비가 등장한다면 죄다 찾아보는 쪽이 대립하는데, 사실은 후자는 저 밖에 없어요^^; 저는 좀비물이 나왔다는 소식이 있으면 일단 북마크해놓고 찾아보는 사람입니다. 그치만 제가 속한 후자는 친구에서 아는 사람 전부로 반경을 넓혀봐도 무척 희귀했어요, 지난해까지는요.


그러나 감히 선언합니다. 이제 좀비는 대세입니다! 우리는 좀비의 시대를 살고 있어요!!!

두둥, 우리가 만들어 글로벌 No.1을 찍어버린 지금 우리 학교는이 나와버린 겁니다. 사실 한국에서 성공한 좀비물이라면 아주 유명한 선구자가 있지요. ‘부산행킹덤이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좀비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찾아갈 극장판 영화나 당대 최고의 인기 배우들을 캐스팅한 기대작의 흥행과, 집에서 편히 볼 수 있는 시리즈물로 등장한 좀비물이 인기배우 한 명 없이 국내를 넘어 글로벌 No.1을 찍은 건 차원이 다르죠.


사실 지금 우리 학교는(이하 지우학)’에 대해서는 좀비물 꽤나 본다는 저도 개봉 전 아는 정보가 거의 없었어요. 제작사나 넷플릭스에서도 다른 시리즈에 비해 홍보를 딱히 열심히 하지는 않는 눈치랄까요? 그런데 개봉 첫 주에 글로벌 No.1을 찍고 말았지요. 오징어게임의 여파라 하는 분도 있지만, 사실 저는 오징어게임보다는 이 작품에 점수를 더 주고 싶습니다. 아주 다양한 면에서요.

지우학은 무명인 듯하지만 독립영화계에서 인정받아온 젊은 배우들과 신예의 훌륭한 연기, 좀비물의 장르 공식을 따르는 듯하면서도 묘하게 뒤틀린 플롯, 학교라는 독특하고 고립된 사회의 모순, 재난 상황에 대한 한국 사회의 트라우마를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주제의식이 촘촘히 쌓아 올려진 문제작입니다. 좀비물 매니아로서 개인적인 랭킹을 돌려본다면 최근 5년 간 나온 좀비물 중 감히 최고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이 엄청난 성공의 배경에는 좀비라는 장르의 비현실성을 현실과 맞닿는 지점으로 끌어내려준 코로나라는 시대적 배경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코로나 시대가 막 열린 2020, 국내에서 드문 시도였던 좀비물과 심지어 크리처물이 넷플릭스에서 개봉해 흥행했던 걸 기억하시나요? 유아인과 박신혜가 투탑이었던 영화 살아있다20206, 그리고 당시만 해도 무명이었던 송강을 주인공으로 이시영, 이진욱이 액션을 책임져준 시리즈물 스위트홈은 202012월에 개봉했지요. 스위트홈의 경우 좀비물에서 더 나아가 다양한 괴물이 등장하고 잔혹한 장면이 검열없이 등장하는 고어물에 가까운 크리처물이었음에도 엄청난 호평을 받았죠. 시리즈를 정주행하고 나자 바로 시즌 2 제작을 예감할 수 있었습니다. 22년 개봉이 목표라는데, 엄청 기대하고 있어요.


부산행과 킹덤의 흥행은 사실 대규모 예산과 배우, 감독, 작가의 인지도를 생각할 때 예상되는 바가 있었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소수 매니아 층의 전유물이었던 좀비물과 크리처물이 대세가 될 것을 예감케 해준 것은 살아있다스위트홈을 통해서입니다. 두 작품이 개봉했을 당시 사람들은 사회적 거리두기와 자가격리의 고립감과 싸우고 있을 때였고, 아파트에 갇혀 괴물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을 보며 현실감과 공감을 느낀다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쏟아졌더랬습니다.


해당 작품들이 기존의 좀비물에 비해 훨씬 진화된 작품들이긴 했지만, 코로나라는 시대적 상황이 아니었다면 좀비 아포칼립스에 동질감을 느끼는 현실이란 걸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게다가 이토록 비현실적인 현실, 그 뒤로도 2년이 넘도록 지속될 줄을 아무도 몰랐지 말입니다. 그렇게 코로나의 정점을 향해 달려온 2022, 지우학이 개봉했을 때 우리에게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재난 상황과 좀비의 세상은 닮은 꼴로 이미 익숙해진 거죠.


이런 장르물에서 극한의 대립상황에 몰린 등장인물들은 그 적이 바이러스가 됐던 좀비가 됐던 우리와 그들을 분리하고, 그들을 위험요소이자 적으로 간주해 무조건 처단해야 할 존재로 규정합니다. 그들이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건, 내 가족이건, 친구이건 상관없지요. 나와 내 주위를 오염시켜 모두를 위험에 처하게 할 존재니까요. 그러므로 요새를 쌓고 철저히 저들을 우리와 분리시키고 감정을 이입하지 않아야만 살아남습니다. 그렇지 않고 좀비가 된 친구를 버리지 못하는 등장인물은 생존을 위한 공동체에 민폐가 되고 시청자에게 암을 유발하는 존재가 되죠.


그런데 이런 좀비물의 공식을 뛰어넘는 설정이 지우학에 등장합니다. 좀비에게 물려 기로에 선 친구를 버리지 않는 겁니다. 그리고 좀비와 인간을 넘나드는 이 인물이 위기를 넘기고 친구들을 살리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죠. 시리즈 2는 이 친구의 비중이 훨씬 커지고, 심지어 반은 인간, 반은 좀비인 존재들의 공동체를 구성해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축이 될 게 거의 확실해 보여요. 이게 아주 결정적인 차이를 만듭니다.


원래 영화 속 좀비는 지능도 없고 걸음도 느리고 식욕만이 남아있는, 겁나 느린 살아있는 시체라는 설정으로 시작된 존재잖아요. 하지만 좀비는 허구의 존재가 아닙니다. 부두교의 주술로 사람을 의식 없는 노예로 부리는 전설 같은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죠. 혹시 허구가 아닌 좀비의 실체가 궁금하시면 민속식물학자 웨이드 데이비스의 좀비 추적기를 담은 책, ‘나는 좀비를 만났다를 참조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시 엔터테인먼트 컨텐츠로서 좀비로 돌아오면, 이 부두교의 의식 없는 노예 상태에 살아난 시체라는 설정, 사람을 공격해 잡아먹고 전염시킨다는 아이디어가 추가되면서 오늘날 좀비물의 공식이 만들어진 것인데요. 이것도 시대에 따라 진화하여 ‘28일 후에서 뛰어다니는 좀비가, ‘웜바디스에서는 생각하고 느끼는 좀비가, ‘지우학에 와서는 절반은 사람, 절반은 좀비로 둘 사이를 왔다갔다하면서 초인적 능력을 발휘하는 절비가 등장해 버린 겁니다. (사실 절비 같은 기상천외한 캐릭터도 이 세상 모든 설정을 다 찾아볼 수 있다는 일본 만화 매니아분들께는 익숙하겠습니다만^^;)


그 결과 지우학은 학원물+좀비물+재난영화+사회비판+초능력히어로물까지 온갖 장르를 뒤섞은 초강력짬뽕장르가 된 것인데 그러다보니 오히려 장르물의 상투성을 확 뛰어넘는 지점까지 가고 말았달까요? 그 중 가장 중요한 차이를 만드는 지점은 이성이 없어진, 의식이 없어진 좀비들과 달리 인간의이성과 감정을 그대로 유지한 채 좀비의 식욕과 괴력을 가진 절비들 또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모든 것을 파괴하는 좀비떼들에게서 살아남은 이들을 지켜줄 안테나이자 방패이자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는 존재들이기도 하죠.


이 절비의 존재가 저들과 우리를 철저히 분리하는, 그래서 나와 다른 좀비들에 대해서는 무조건 박멸! 어떤 폭력을 가하든 용인되는 좀비 장르의 핵심을 삐끗하게 만듭니다. 좀비가 오늘날 주류 컨텐츠가 된 배경으로 양극화된 사회, 듣고 싶은 말만 듣고 편향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만 소통하며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다른 이들을 교화의 대상이거나 처단할 존재로만 보는 극단적인 이분법이 횡행하는 사회상을 주목하는 해석도 많은데요.


예를 들어 대선 기간 동안 극명해진 젠더 갈등, 지역 감정, 다주택자와 무주택자의 대립, 보수 우파와 진보 좌파라고 불리는 정치세력 간의 대립 등등 이 모든 분열상과 극한 대립을 이제는 봉합하고 통합해야 한다는 칼럼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선거가 끝났고 진 자와 이긴 자가 가려졌으니까요. 그런데 이 통합이라는 개념조차도, 우리는 패자의 승자에 대한 투항으로 해석하는 것은 아닌지 싶어요. 이것이 바로 좀비 세상의 공식이죠. 내 편이 아니면 적이니 파괴하거나 완전히 굴복시켜 우리 편만 남긴다는 논리요. 그러나 우리가 지향해야 할 통합이란 이 모든 갈등과 대립된 입장을 하나로 수렴하려는 불가능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입장과 생각을 존중하며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의 통합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지우학에서 절비의 존재는 아주 중요한 질문과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양 진영이 서로를 좀비떼로 몰아세우며 상호 파괴로 치닫는 것이 아니라 양쪽의 강점을 한 몸에 지닌 존재를 통해 새로운 세상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접근법을 제시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승자가 패자를 괴멸시키는 좀비 세상의 논리가 아니라 두 진영의 장점과 주장을 살려 함께 진화할 수 있는, 더 나은 공존을 위한 노력과 기다림이 아닐까 하는 질문을 던지면서요.


사실 지우학이 한국사회와 글로벌 팬데믹 시대에 던지는 질문은 정말이지 다양해서, 이걸 갖고 한 34일 학술 심포지엄을 해도 재미나겠다 싶습니다. 잔혹하고 끔찍한 장면이 난무하지만, 이 코로나의 시대에 꼭 필요한 질문을 던지는 지우학을 만나보실 것을 추천합니다. , 혹시라도 좀비를 철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들여다보고 싶으시다면 평론가 후지타 나오야의 좀비 사회학을 추천해드려요. 왜 이 시대가 좀비에 열광하는가에 대한 예리한 고찰이 담겨 있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좀비영화 따위나 본다고 은근히 취향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유식한 척 하기에도 좋구요! ^^


그럼 오늘은 여기서 수다를 마치고 역시나 제 맘대로 정리한 좀비영화/드라마 Top11 리스트를 공유하며 이 편지를 마치겠습니다.


좀비물의 진화과정을 보여주는 top 11 무비/TV시리즈 리스트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데드 얼라이브

이블데드 1&2

좀비오

새벽의 황당한 저주

웜바디스

워킹데드 시즌 5까지만 (시즌 6-9는 처참하게 망했어요^^;)

부산행 1&2

킹덤

살아있다

지금 우리 학교는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곡

좀비의 시대에 어울리는 노래도 하나 공유할께요. 인디 음악계의 문제아, 김이랑이 던지는 묵직한 곡이죠. ‘늑대가 나타났다를 반드시, 꼭 가사를 띄워놓고 들어보시길 추천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4TqBnVNriU

 

늑대가 나타났다 김이랑


이른 아침 가난한 여인이 굶어 죽은 자식의 시체를 안고

가난한 사람들의 동네를 울며 지나간다

마녀가 나타났다

 

부자들이 좋은 빵을 전부 사버린 걸 알게 된 사람들이

막대기와 갈퀴를 들고 성문을 두드린다

폭도가 나타났다

 

배고픈 사람들은 들판의 콩을 주워다 먹고

부자들의 곡물창고를 습격했다

늑대가 나타났다

 

일하고 걱정하며 노동하고 슬피 울며

마음 깊이 웃지 못하는 예의바른 사람들이 뛰기 시작했다

이단이 나타났다

 

도시 성문은 굳게 닫혀 걸렸고 문밖에는 사람이

마녀가 나타났다

폭도가 나타났다

 

내 친구들은 모두 가난합니다

이 가난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이건 곧 당신의 일이 될 거랍니다

이 땅에는 충격이 필요합니다

 

우린 쓸모없는 사람들이 아니오

너희가 먹는 빵을 만드는 사람일 뿐

포도주를 담그고 그 찌꺼기를 먹을 뿐

내 자식을 굶겨 죽일 수는 없소

마녀가 나타났다

폭도가 나타났다

이단이 나타났다

늑대가 나타났다

IP *.32.23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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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1 22:43:59 *.169.227.25

노래 가사가 슬프네요... 

저도 사는 날엔 비정했는데, 요즈음에는 왜 그렇게 울컥울컥 하는지...  

프로필 이미지
2022.03.23 09:52:45 *.166.254.112

그러게요.... 요즘 저도 오디션 프로그램 보면서도 울고, 만화 보면서도 울고....^^; 

근데 울고 싶을 만큼 내 맘을 건드려주는 것들이 많아 좋다는 생각도 합니다.  봄이 오면 새싹 돋을 희망이 있는 얼음땅이 모래사막보다 낫지 않나 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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