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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22일 12시 15분 등록

화요편지

2022.3.21

종종의 종종덕질

침몰하는 가족과 느슨한 연대 사이, ‘코타로는 1인 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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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슈는 모름지기 달콤하고 성분이 좋은 것을 사야 한다네.”

 

플라스틱 칼을 차고 다니며 만화 캐릭터의 말투를 흉내 내고, 곽티슈의 성분을 무척 까다롭게 따지는 프로 주부의 면모를 지닌 묘한 남자 아이, 코타로는 지금 막 넷플릭스에 진출한 애니메이션, ‘코타로는 1인 가구의 주인공입니다. 지난 주부터 애니메이션 코타로는 1인 가구의 시청을 권하는 페친들의 리뷰가 심심찮게 올라오기에, 긴가민가하며 1화를 눌렀습니다.

 

코타로는 이제 유치원에 갓 입학한 어린아이입니다. 우리 나이로 치면 이제 기껏 여섯 살쯤 됐으려나요? 그런데 어엿한 1인 가구의 세대주랍니다. 부모나 다른 어떤 보호자도 없이 혼자 살고 있는 거죠. 코타로는 1인 가구만 사는 낡은 빌라촌에서 누구보다 숙련된 프로 자취러예요. 혼자 먹는 밥도 늘 오첩반상은 되겠다 싶게 균형 잡히고 풍성한 밥상을 차려내고, 청소와 빨래, 가구와 가전 제품의 주문이며, 분리수거까지 능숙하게 해냅니다.

 

이렇게 믿을 수 없을 만큼 어른스러운 코타로지만, 아이 답게 좋아하는 것은 사극 풍의 어린이 만화 주인공 토노사마 맨. 옛스러운 하라체를 사용하는 무사 토노사마맨을 롤모델로 삼고 있는 코타로는 누구와 상대하든 결코 밀리지 않겠다는 듯, 늘 의젓한 사극체로 대화합니다. 이 특이하지만 사랑스런 꼬마에게 남모를 사정이 있음은 분명한데, 어쨌거나 혼자 사는 어린이를 그냥 보고만 있기는 뭐했던 빌라의 이웃들이 등교 시키기, 대중탕 같이 가주기, 함께 장보러 가기 등으로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고 코타로와 인연을 만들어가면서 이야기는 전개됩니다.

 

여기까지의 소개만 놓고 보면 사실 말이 안 되는 설정이죠? “여섯 살짜리 어린애가 혼자 집을 빌려 살다니, 게다가 살림꾼이라고? 요즘 같은 세상에 이웃이 아이 등하교를 봐줘? 나 살기도 바쁜데 그럴 시간이나 여력이 어딨어? 말도 안 돼라고 생각하실 분들이 많을 거예요. 그런데 코타로가 세 들어 사는 빌라는 낡고 좁은, 딸랑 6세대가 다인 1인 가구용 다세대주택이에요. 덕분에 이웃들이 죄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고 혼자 살 수밖에 없는, 외로운 사람들입니다. 대충 면면을 살펴보면 백수에 가까운 만화가, 하는 일이 뭔지도 모르겠는 건달, 유흥업소 직원 등이니 정상적인 출퇴근을 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 오히려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돌아가며 코타로의 등하교를 도와주고, 낮에는 장보기를 함께 하고 밤에는 대중탕을 같이 가주는 일 등이 가능합니다.

 

처음에는 혼자 살기에는 너무 어린 코타로에 대한 호기심과 걱정에서 시작된 어설픈 육아 공동체 같은 관계가, 6살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타인에 대한 예리한 관찰력과 공감력을 가진 코타로를 중심으로 점점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대안 가족으로 진화해 나갑니다. 요약하자면 이 만화는 몸은 3등신이지만 이미 다 자란 어른 같은 코타로와 몸만 어른이지 관계든 사회생활이든 서툴기만 한 이웃 양반들의 동반 성장기라 하겠습니다.

 

사실 코타로는 1인 가구의 원작은 만화책이고, 원작의 설정과 이야기 전개는 애니메이션보다 더 개그 만화에 가깝고 억지스런 설정도 많아요. 그런데 그런 세부 묘사가 쉽지 않은 애니메이션과 방송 상의 제약 때문인지, 과도한 설정이나 억지스런 개그를 들어 내면서 애니메이션 버전의 코타로는 오히려 더 설득력 있는 캐릭터로 다가오고, 원작이 담은 문제의식을 선명하게 부각시킨 작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코타로의 사정은 일상을 공유하는 이웃들과 소소한 해프닝을 겪으면서 조금씩 베일을 벗게 됩니다. 하지만 그 사정은 도저히! 제 입으로 말할 수 없어요. 이건 완전 스포일러니까요!

 

하여간 달콤한(?) 고급 티슈를 고집하는 코타로는, 머리가 신장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개그체 만화 캐릭터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사연을 숨기고 있습니다. 감히 스포일러가 될까봐 내용을 더 소개할 수 없지만, 이 사랑스러운 애니메이션과 함께 읽기를 권하고 싶은 몇 권의 책이 떠오르네요. 가족과 함께 살 수 없는 아이가 만들어 가는 이상하고 따뜻한 공동체가 그저 만화 같은 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엔, 세상은 만화보다 더 만화 같은 사연들로 넘쳐 난답니다.

 

침몰 가족, 비혼 싱글맘의 공동 육아기가노 쓰치, 정은 문고

여기, 결혼을 거부하고 아이는 기르기로 하지만, 독박 육아로 인해 세상과 단절되는 삶을 원치 않았던 씩씩한 엄마와 아기가 있습니다. 가족의 도움조차 거부한 이 비혼모가 선택한 방법은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도쿄로 상경하여 공동육아 전단지를 돌리고, 스스로를 낙오연대라 이름한 사람들과 육아공동체를 결성하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탄생한 육아공동체가 바로 이 책의 제목 그대로, ‘침몰가족입니다.

 

수십명의 자발적 돌보미들의 손에 자라난 아기가 대학에 진학해 자신을 키워준 이들을 한 명 한 명 찾아가 인터뷰하면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책도 출간하게 된 거래요. 책보다 다큐가 먼저 나왔고 각종 영화제에서 큰 화제를 불러왔다고 해요. 책은 저도 어제 읽기 시작했는데 상황만 놓고 보면 뭐 이런 육아가 가능할까 싶었는데 내내 고개를 끄덕이며 읽게 되네요. 그리고 가족의 굴레와 의무에서 신음하는 독박육아가 아니라 자율적인 연대의 힘이 아이를 더 건강하게 키워낼 수도 있구나라는 어쩌면 당연하고도 신선한 깨달음에 가 닿게 합니다.

 

이상한 정상 가족, 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를 그리며’ - 김희경, 동아시아

이미 많은 분들이 읽으셨을 거예요. 정상이라는 범주에 묶인 가족의 폐쇄성 속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 얼마나 다양한 형태로 소외되고 희생되어 왔는지를 날카롭게 지적하며 2017년 출간 당시 엄청난 화제를 불러왔던, 그리고 이후 불거진 다양한 아동학대 사건 등을 통해 다시 소환되며 아동학대와 가정폭력에 대한 공론화를 가능하게 했던 책입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꼭 한 번 읽고, 또 다시 읽을 가치가 있는 역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출신이면서 세이브더칠드런에서 활동한 저자는 사회적 사각지대인 아동 인권의 문제를 가족과 가족주의에 관한 문제로 확장시켜, 사회적 구조를 통해 해결해야할 문제로 끌어 올리는 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코타로는 1인 가구로 다시 돌아와서, 저는 이 개그풍의 만화가 지금 소개드린 두 권의 책 못지않은 문제작이라 생각해요. 어쩌면 수백 페이지에 이르는 명문장과 연구와 데이터로도 전달하지 못한 진실을, 3등신의 이웃집 꼬마가 여러분께 전해드릴 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꼭! 한 번 시청해보시길 권해드려요.

 

그럼, 저는 오늘의 주제가를 들려드리며 이만 퇴장하렵니다. 사랑스런 코타로와 다정한 이웃들을 위해 선정한 노래는 바로, Bruno Mars‘You can count on me’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sl2fl3h59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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