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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29일 21시 03분 등록
MBTI 모르시는 분들 없죠? 일종의 성격 검사죠. 이게 새로 나온 것도 아닌데, 근래에 회자가 많이 되고 있더군요. 예능이나 대중매체에서 흔하게 나오는 소재입니다. 초등학생인 저희 딸과 딸아이 친구들은 MBTI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따지더군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붐이긴 한 것 같아요. 서울대 김난도 교수는 <트렌드 코리아 2022>에서 이런 경향을 레이블링 게임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자기 정체성을 특정 유형으로 레이블을 붙이고, 해당 유형이 가지고 있는 라이프 스타일을 추종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이게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태고적부터 인간이 좋아하는 것이 분류하고 딱지 붙이는 일입니다. 소심한 친구가 A형인 것을 알고, "거봐, 그럴줄 알았어"라고 한다거나, 경상도 남자는 죄다 무뚝뚝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흔한 사례겠죠.

근래에 이런 레이블링 게임이라는 트렌드가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아무래도 코로나로 인한 펜데믹 시대의 영향이겠죠. 갑자기 바뀐 비대면의 시대, 사람들은 자기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게 됩니다. 원래 사람들은 자기 정체성을 외부에서 찾는데, 사람들간의 접촉 방식이 바뀌고 비대면이 많아지니 자기 정체성을 찾는 기존 회로에 노이즈가 끼게 된거죠. "MBTI에서 너는 I고 나는 E고 철수는 I도 E도 아닌 이상한 애 같아" 어떠한 틀에 맞추려는 시도가 많아지고,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비정상이라고 여기기도 합니다. 우리 스스로를 틀에 넣는 것만큼 우리는 또한 남들이 보는 틀에 우리 스스로를 고정시키곤 합니다. 한 TV 프로그램에서 어떤  아이돌 가수가 자신의 MBTI를 묻는 질문에 자신의 MBTI를 알리고 싶지 않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볼 때 선입견을 가지게 될 수 있고, 자신 또한 '나는 이런 사람이야'하고 자기 자신을 틀에 가두게 될 것 같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어떤 게임이 있습니다. 여러 명이 함께 하는 건데요. 자신의 이마에 무작위 카드를 붙이고 포커게임을 하는 겁니다. 포커게임은 몇장의 카드를 조합해서 가장 좋은 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승자가 되는 게임입니다. 이 게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카드와 좋은 패가 되는 상대방을 찾는 게임입니다. 에이스(A)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2나 3과 같은 낮은 숫자의 카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보이는 반응을 보고 자신의 이마에 붙여져 있는 카드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타인의 반응을 보고 자신의 가치를 추측하는 것이죠.

1900년대 초 심리학자 허버트 미드와 찰스 쿨라는 실제 세계에서도 우리 자신에 대해 알게 되는 과정이  이 간단한 카드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가치를 찾는 것입니다. 혼자 아무리 잘났다고 생각해도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으면 못난 사람이 되는 거고, 연예인이나 유명인사가 되어 남들이 우러러 보면 스스로가 고귀한 인간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외부적인 인식틀에 의해 자기자신이 규정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이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참나를 찾아야 한다, 자기 자신에게로 침잠하라고 떠들어대지만,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가 면벽수행을 하거나, 깊은 산속에 혼자 은둔하지 않는 한 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낄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들과 부대끼다 보면, 나를 형성하는 많은 것들이 밖에서 올 수 밖에 없고요. 실상 우리는 외부로부터 형성된 많은 자기 의식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들은 진짜가 아닙니다. 이런 자기의식들은 원래부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도, 우리 존재를 구성하는 진정한 핵심도 아닙니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런 외부적으로 형성된 자기 의식을 우리 자신보다 주위 사람들을 위해 더 봉사하는 비밀요원, 즉 스파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기생충과 다르지 않죠. 본체의 의도와 상관없이 물가로 향하게 만드는 연가시처럼 나 자신을 조종하고 내 삶을 좌지우지하게 만드는 것들인 셈입니다.

어떤 기생충들이 있을까요? 자기가 명색이 부장인데 어디서 굴러먹다 들어온 과장 신출내기가 회사에서 더 인정을 받으면 분노와 모멸을 느낍니다.  외제차를 뽑고 명품가방을 들고 남들의 부러워하는 시선을 기대합니다. 타인의 눈높이에 들기 위해 높은 점수와 그럴듯한 간판에 연연합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면서 사는 한 코로나와 마찬가지로 이런 기생충들은 잘 죽지도 않고 벗어나도 금방 감염되기 쉽습니다. 지금 내 안에 어떤 기생충들이 살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기생충이 본체를 좌지우지하게 두어서는 안되겠죠. 다독이며 함께 잘 살아갈지, 맘 독하게 먹고 구충제를 쏟아 부을지 결정하는 것은 본인의 몫이겠죠. 자신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기생충들에 대해 인식하는 것만으로 자기인식은 크게 바뀔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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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30 22:24:54 *.169.227.25

일상의 삶을 초월하는 것이 목표지만 그리고 그것이 사람으로서 최고 선의 삶이지만 막상 그렇게 되면 사람이라고 불리지 않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인류사에  몇 명 안될 정도로 그런 사람은 드물고 또 그렇게 되면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고 '신'으로 불렸던 것 같습니다. 

어차피 세상에서 사는 한 저는 그냥 '50보, 100보' 나  '재 묻은 개나 뭐 묻은 개' 로 생각하고  타산지석으로 삼고요 ... 그래도 초가삼간을 다 태우고 싶지는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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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31 13:07:26 *.225.171.202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 상대방의 인식이 자기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불가피 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스파이, 기생충, 속물근성 뭐라고 부르든 타인이 설정해 놓은 기준에 따라 나를 규정하고 살면, 항상 조급증에 쫒기데 될 것만 같습니다. 돌아보면, 저도 지난 30년 사회생활을 그렇게 살아온 것도 같고요. 기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몽상가니 현실감각이 떨어진다는 얘길 들으며 걱정어린 눈초리를 감내해야 하니,  남들이 얘기하는 상식적인(?) 삶 속으로 숨어들고만 싶어집니다.  그래도 용기는 내보아야겠군요. 마음 속 기생충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하시니....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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