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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6일 00시 20분 등록

화요편지

종종의 종종덕질

사자처럼 당당하고 양처럼 온화하게, ‘삼월의 라이온


 

"March comes in like a lion and goes out like a lamb.” ‘3월은 사자같이 추운 날씨로 시작되었다가 양같이 따뜻한 날씨로 끝난다는 영국의 속담을 아시나요? 마치 속담처럼 매섭던 3월의 꽃샘추위가 4월이 시작되지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수그러들고, 벚꽃이 일제히 피는 봄이 드디어 찾아와 주었습니다.


올 겨울은 폭설이나 혹한으로 고생한 기억은 없는데, 유난히 지루하고 길었던 것 같아요. 방콕말고 할 게 없던, 코로나와 함께 한 계절이기 때문일까요? 여하간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추운 겨울을 막 떨쳐내고 가까스로 맞은 봄이 더 멋진 법이잖아요. 그리고 저는 이 계절에 가장 어울리는 만화를 하나 알고 있습니다.


삼월의 라이온은 긴긴 겨울의 터널을 지나, 얼어 죽지 않고 버텨서 살아남은 나무 같은 소년, 키리야마 레이의 성장기를 다룬 만화입니다. 데뷔작으로 메가히트를 기록하고, 아오이 유우 주연으로 영화도 완전 성공했던 허니와 클로버의 작가 우미노 치카의 두번째 장편 연재작인데, 전작에 이어 엄청난 히트를 쳐서, 애니메이션화는 물론 영화화도 되었고 국내 IP TV로 다 보실 수 있어요.


이야기의 주인공 키리야마 레이는 어린 나이에 교통사고로 가족을 모두 잃고, 아버지의 친구였던 장기 기사의 양자로 들어가 중학생 신분으로 프로 데뷔를 한 신동입니다. 우리로 치면 이창호나 이세돌 같은 존재로 성장하리라 기대받는 촉망받는 십대죠. 그런데 막상 집에 오면 양부모와 그들의 친자식 간의 갈등에 치이고, 학교에선 친구 하나 없어 옥상에 숨어 점심을 먹는, 어디 한 곳 맘 둘 데가 없는 처지예요. 어린 나이에 프로 기사로 데뷔한 레이의 성공 뒤엔 본인의 재능 외에, 프로가 되지 않으면 설 곳이 없는 절박한 처지가 숨어 있습니다.


만화는 고등학교에 진학한 키리야마가 더 이상 견딜 수 없이 상황이 악화된 양부모의 집을 나와 자취방에 들어서면서시작됩니다. 의지할 곳 하나 없이 망망대해에 홀로 표류하는 뗏목 같은 신세였던 레이는 이사 온 동네에서 우연히 마주친 세 자매, 아카리, 히나타, 모모와 만나면서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갑니다. 처음에는 부모 없이 서로를 의지하며 씩씩하게 살아가는 세 자매의 에너지와 친절에 힘입어 세상 한 구석에 조그맣게 자신의 설 자리를 찾아간다고 생각하던 레이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자매들에게도 가장 어려울 때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 같은 존재로 자라나게 됩니다. 그리고 프로 장기기사로서 성장해나가는 레이 주변의 동료, 선배, 스승, 그리고 경쟁자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서 주인공 뿐 아니라 등장하는 모든 이들의 성장사를 목격할 수 있게 해주지요.


저는 이 만화를 그려낸 작가 우미노 치카를, 제가 아는 모든 작가를 통틀어 성장이라는 주제를 가장 잘 이해하고, 가장 애틋한 공감을 이끌어내는 작가라고 감히 생각합니다. 성장이라는 주제만 놓고 보면, 그녀에 필적하는 작가로는 저의 우상이자 가장 위대한 SF작가로 손꼽히는 어슐러 르귄 여사 밖에 떠오르지 않아요. 이야기를 빚어내는 솜씨는 물론이거니와, 작화도 무척 뛰어난 작가라서 어여쁘고 매력적인 그림체와 디자인, 코믹과 드라마를 넘나드는 구성과 인물의 섬세한 심리 묘사로 작품마다 완벽한 하나의 세계를 구축해 내는 작가지요.


그리고 또하나 제가 이 작가를 정말 좋아하는 이유는, 등장인물 하나 하나가 주인공을 위해 존재하는 들러리 같은 존재가 아니라 각자 자신의 상황과 성격대로 최선을 다해 자신의 몫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어떤 에피소드에서는 주인공의 절친이자 장기 라이벌인 니카이도가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또 다른 에피소드에서는 장기 회관에서 늘 마주치는 60대 명인이 벌이는 사투와 같은 타이틀 방어전에서 끝끝내 살아남은 희망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진흙처럼 가라앉는 노구를 이끌고 마지막일지 모르는 명인의 타이틀을 지켜내기 위해 마지막 핏방울까지 짜내듯 고통스런 한 수 한수를 두면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이유, 그 이유를 스스로 되뇌이던 명인의 마음 속에 휘몰아치던 한 마디를 지금도 기억합니다. 최선을 다한 인간이 마지막에 도달하는 장소가, 휑하게 타버린 벌판이면 안된단 말이다!”


그러니까 이 만화는 성장만화입니다. 이제 막 사회에 진입하려는 여린 청춘이든, 은퇴할 시기가 한참 지난 노인이든 각자의 자리에서 감당해야 할 성장의 무게와 고통은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 그러니 겨울을 이겨내고 당당히 돌아온 봄처럼, 다시 싹을 튀우고 또 한뼘 자란 나무처럼 버티고 견뎌낼 가치가 있다는 것을 그 어떤 자기개발서나 철학서보다 더 간절하고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권합니다. 이 성장의 마술사가 주조해낸 사랑스럽고 애틋한 캐릭터들이 겪는 시련과 극복의 여정에 꼭 한번 동행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 그럼 사자 같던 3월이 가고 양처럼 온화하게 찾아온 4월에 어울리는 곡으로 이 글을 마무리해볼까요?

삼월의 라이온의 엔딩곡, ‘Bump of Chicken’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RWQckbQ9t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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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음 주에 뵙지요~



IP *.32.23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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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06 18:04:26 *.169.227.25

문득 기억에도, 그리고 이름도 잊고 있었던 독고탁 만화가 생각났습니다.  어린 시절 말썽장이였던 저는 그 만화와 공상과학어린이문고가 좋은 친구였죠 ! 후일에 끈질길 인내심과 변하지 않는 성실함은 어쩌면 그 만화에서 본 주인공의 영향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겐  고전이나 유명한 베스트 설러들보다  우리 변경연 사람들이 쓴 '책'이나 '마음을 나누는 편지'들로 부터 배우고 느끼는 것들이 훨씬 많아요, 그리고 나이와 관계없이 그들을 존중하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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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19 14:48:53 *.166.254.112

저도 이상무 작가의 독고탁 시리즈 엄청 좋아했어요~^0^ 허영만 & 이상무가 당시 야구만화의 양대산맥이었는데 말이죠. 저는 그 어떤 매체보다 전달력과 표현력이란 측면에서 뛰어난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으로서 만화에 관심이 엄청 많거든요. 훌륭한 만화가 끼칠 수 있는 엄청난 영향력을 저는 요즘 많이 목격하고 있는 것 같아 무척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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