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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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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7일 07시 35분 등록

거리마다 완연한 봄입니다. 지난 주말에는 서대문 안산에 있는 둘레길을 걷고 왔습니다. 낯익은 북한산의 굽이굽이마다 노란 산수유 꽃무리가 안개처럼 깔려 있었고, 시내에서는 보기 힘든 진달래도 실컷 보았습니다. 개나리는 벌써 이파리가 자란 녀석도 있었습니다. 아직 벚꽃은 꽃망울만 달려있는데 이번 주말이 절정이겠구나 하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봄에는 마음이 부풀어 오릅니다. 그리고 유달리 꽃과 나무를 좋아하셨던, 나의 일부이자 보고 싶은 아빠가 생각납니다. 아빠에 대한 마음은 슬픔보다는 즐거움으로, 새로운 계절을 알리는 작은 두근거림 같은 것으로 저를 찾아옵니다.


아빠는 글에서변화경영전문가에서변화경영사상가를 넘어 언젠가 변화경영시인이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막연히 시인보다 전문가가 벌이가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 시인보다 사상가가 더 멋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무엇보다 시라는 것이 어떤 점에서 그다음 레벨이 되는 것인지 잘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에 남긴 시들을 다시 읽어보면서 생각을 좀 달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시라는 것을 특별한 사람들이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먼 옛날 위대한 영웅의 업적도 음유시인들이 읊었고, 현대에도 삶을 예리하고 섬세한 눈으로 관찰하고 살아가는 어떤 특별한 사람들이 시를 쓴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변에서 누가 시를 쓴다고 해도 저는 그것을감정이 과잉되어 오버하는 것같다고 생각했고 시 쓰기가나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시라는 것은 온 감각을 동원해서 풀어내야 하는 수수께끼 같은 것처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빠는 책을 읽고 난 감상을 엮어 독서 시를 만들곤 했습니다. 또한 저서인 『그리스인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마다 짧은 시를 써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리스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빠의 독서 시에 크게 별표를 해놓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아빠가 신화의 한 조각을 글로 풀어내서 마지막에 정리를 시로 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정리가 또한 절묘하고 핵심을 잘 짚어주고 있으며 신화의 이야기를 나의 문제와 연관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시를 통해 신화가 먼 옛날의 이야기에서 나의 당면한 문제와 해결로 바뀐 것이었습니다.


시에 도대체 어떤 힘이 있길래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요? 사람들은 왜 시를 쓰고, 왜 읽는 걸까요?


정재찬 교수의 『시를 잊은 그대에게』란 책의 서문에서는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우리의 청춘은 사랑과 낭만, 아름다움을 이야기하지만 먹고 사느라 그것들을 다 잊지만, 살아가다 보면 외면해왔던 마음의 빈틈들에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지는 때가 있다고 말이죠. 인생이 그런 것이기 때문에 사람에겐 시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삶이 그렇게 사랑과 낭만, 아름다움의 소중함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이고, 이렇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일깨워주는 먼 북소리에 가장 적합한 형태가 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시는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일상의 차원과 다른 차원을 연결하는 고리 같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다만 이다른 차원'이 어디인지에 따라 시의 쓰임이 정말 크게 달라진 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어릴 때 본포켓몬스터애니메이션도 한 화가 끝날 때마다 등장인물이 포켓몬에 관한 짧은 시를 읊으며 끝났었습니다.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하 모동 숲)에서도 가리비를 주면 아주 사소한 것에 대한 시를 읊어주는 해탈한 이란 철학자 해달이 나옵니다. 등장인물 중에 시를 읊으며 등장하는 이는 없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각 콘텐츠가 전하고 싶은 핵심, 즉 포켓몬스터 라면 각 화에서 가장 주목할 포켓몬을, 모동 숲이라면 작고 사소해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해 보았을 일상을 떠올리길 바라는 마음에서 넣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동시에, 진실에 진실한 시일 때 메시지가 시의 운율에 힘입어 더 큰 의미를 갖게 된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바빌로니아의 저승을 지키는 에레시키갈에게 가는 길에는 일곱 가지 문이 있습니다. 그곳을 지나려면 입고 있는 것을 하나씩 벗어버려야 합니다. 에레시키갈의 동생인 이슈타르가 죽은 애인을 구하기 위해 저승에 갈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녀는 몸에 차고 있던 왕관과 귀걸이, 허리띠와 옷을 하나씩 벗었고, 마지막 관문을 통과했을 때는 알몸으로 통과했습니다. 시를 읽는다는 것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일깨우기 위한 거라면 바로 그 삶의 정수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벗어버려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것이 단순한 라임 맞춘 단편적 사실에서 시의 맛을 끌어내는 방법이라는 생각과 함께요.


’다큐멘터리 3'에 나왔던 한 선장님은 어릴 때는 국문과를 가고 싶었다고 하면서 이형기 시인의 낙화를 읊고 선미에서 바다를 보며 술이 담긴 종이컵을 들어 올립니다. 그 모습이 어쩐지 매우 쓸쓸하기도 하고 잘 어울리기도 하여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좋은 시가 가진 힘 앞에 저는 저항하기가 어려움을, 그리고 아무리 아름다운 시라도 깊게 공명하는 인생이 있어야 의미와 생기를 갖고 완성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장면이었습니다.


그동안 제 안에는 시를 조금 어색해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도 어딘가를 다녀온 시를 쓴 적이 있었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었을 때 좋은 반응도 있었고, 아예 무관심한 적도 있었습니다. 제가 시에 대해 마음이 조금 열리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워하는 것은 그런 경험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를 보는 두 가지 시선을 모두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변화를 소망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언제까지 모른 척 지나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내 마음에내가 듣고 있어라는 대답을 위한 통로로 시에게서 힘을 빌릴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 작업을 아빠의 독서 시를 읽는 것으로 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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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18 18:17:40 *.169.227.25

아주 내밀하고 상징적인 그런 ... 

공유하지만 다를 수 있는 ...  그런 

같으면서도 ... 다른,,, 

짦지만... 긴 여운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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