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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12일 09시 27분 등록
종종의 종종덕질
잘 봐, 언니들 인생이다 –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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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명함이 있으신가요? 
혹은 명함이 없으셨던 적이 있나요? 
세상은 일하는 사람들로 가득하지만, 명함이 없는 사람과 명함 없이 일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지 않나 싶어요. 그리고 이번 주 화요편지는 명함만 없던 진짜 일꾼들의 이야기를 전하려 합니다. 

지난 주 나온 따끈따끈한 책,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는 명함 따위 없이 한 세상을 먹여 살린 여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일하는 사람의 이야기라 하면 무릇 스티브 잡스 같은 수퍼울트라스페셜한 능력자들의 전기나 회고록, ‘나처럼 해야 성공한다’류의 자기개발서가 대부분이지요. 그래서 생각만 해도 너무… 졸려요. 누가 말했는지는 기억 안 나는데, 자기개발서란 (드물게 정말 뛰어난 책도 없지 않지만) 대부분 ‘성공한 사람들이 성공한 후에 각색한 이야기로 평범한 사람을 망치는 책’이라 했거든요. 그 말 전 좀 동의합니다. 그러니 너무 심하게 성공해버린 사람들의 각색된 성공담에서 저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 이거죠. 저는 평범하고 소중하니깐요.

그런데 이 책은 하도 흔해서 거기 있는지도 모를, 사회적 성공과는 거리가 먼 나이든 여성 일곱 명의 일과 인생을 있는 대로 들려줍니다. 아니 왜 나 같은 사람을 인터뷰한다고 그래, 손사래를 치던 분들이 삶을 돌아보며, “나 이런 일 하면서 이렇게 살았네. 그런데 내가 정말 많은 일을 했구나. 어, 나 대단한 사람이었어. 참 잘 했다. 수고했어’라고 되늦게 자신을 발견하고 토닥이는 모습을 만나게 되지요.

여기에 등장하는 일곱 명의 여성 중엔 이거 우리 엄마 이야기네, 딱 우리 할머니 이야기 같다 싶은 분들도 있으실 거예요. 저는 열네살에 민며느리로 시집와서 남편도 없이 유일한 혼수였던 미싱 하나만 믿고 아이들을 들쳐 업은 채 피난을 감행했던 할머니가 계속 생각났어요. 정말 자식들과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 들고 온 미싱 하나로 옷장사를 시작해서 결국은 저희 식구를 넘어 수십 명의 친인척을 먹여 살린 분이거든요. 

이 책에는 제 할머니 같고 엄마 같은 일곱 명의 언니들이 등장해요. 평생을 주부로 자식을 키우고 남편과 시부모를 봉양하며 누구에게나 위안이 되는 아름다운 쉼터를 만든 프로 살림꾼, 세상을 뜬 남편 대신 스스로와 자식을 부양하며 살아온 36년차의 광부, 공장직원에서 한식당의 오너쉐프로, 의상디자이너에서 남대문의 식당주인으로 변신하며 자식과 아픈 남편을 책임져온 칠순의 가장, 식당종업원에서 주인으로 손주돌보미에서 환갑에 다시 고등학생으로 돌아온 늦깎이 학생, 국졸의 과수원 일꾼이자 가사노동자에서 부녀회장에 재테크마스터가 된 능력쟁이까지… 이 고단하고 놀라운 삶의 궤적을 보고 있으면 참...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한 줄씩만 정리해 놔도 ‘명함 따위 명함도 못 내밀 만큼’ 대단한 일꾼들의 인생 아닌가요.    


배우지 못해 서럽고, 흰밥대신 눈치밥에 배가 불러 터질 것 같던 어린 시절과 시집살이를 넘어, 무능하거나 아프거나 폭력적이었던 배우자들을 이고 지고 혹은 떨쳐내면서 자식과 스스로의 삶을 책임져온 멋진 언니들의 이야기가 콩깍지 속에 나란한 완두콩들처럼 조롱조롱 담겨 있네요.

제게는 노동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나이든 여자들의 이야기가 꽤나 절실합니다. 지금 정장을 입고 사무실에 앉아 있다고 해도, 제 노동이 곧 현재이자 미래의 담보가 되는 월급쟁이로서, 스티브 잡스보다는 36년차 광부 언니가 훨씬 가까운 롤모델로 느껴지니까요. 그렇게 언니들이 버텨낸, 나쁜 일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세상에서 도망치지 않고 지켜낸 삶의 이야기가 ‘지금 무슨 일이 있든 괜찮다, 괜찮아질 거다’라는 담담한 증언이자 격려가 되어 줍니다.  

그래서 이 책은 매우 특별합니다. 그간 알려져 있지 않았던, 너무 흔해서 기록될 이유조차 없었던 이야기로 치부되었지만 가족을, 동네를, 한 세상을 떠받치는 기둥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니까요. 정규 교육과는 거리가 먼, 노동으로 가득 찬 인생을 살아온 언니들의 이야기 속에 얼마나 멋진 지혜와 연륜이 담겨 있는지 몰라요. 하도 멋져서, 저는 책을 읽으면서 발견한 언니들의 명언과 글귀들을 한 번 정리해 보았거든요. 

“나쁜 일이 파도처럼 밀려왔지만 도망가지 않았다.”

“참 대단하세요.” 
“안 대단하면 어떡해.”

“소나무하고 말하고 갈대하고 말하고... 나는 진짜 듣도 안하고 보도 안하고 그라고 살았네. 그래야 쓰겠다 싶어서.”

“내가? 와따 진작 가르쳐주지. 내가 직업이 세 개인 큰 월급쟁이구나.”

“울 시간이 있어야 울지. 울어도 달래줄 사람이 있어야 울지.”

“60대답게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서두르지 않는다. 인생의 많은 것이 얼마나 느닷없이 결정되는지 순자씨는 안다.”

“엄마는 어떻게 맨정신으로 살 수 있었을까.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가 아니라 애초에 엄마처럼 사는 일이 엄두조차 나지 않았던 건 아닐까. 불안을 물려주지 않으려 나름의 방법으로 고군분투했을 나의 어른들. 옛날로 돌아가면 나를 숨 막히게 꼭 안던 엄마를 나도 함께 꼭 안아주고 싶어요.”

이 책은 탄생 과정 또한 아주 특별합니다. 출판사에서 기획을 한 게 아니거든요. 출판 경험 없는 기자들이 모여 책을 만드는데 필요한 최소 기금 300만원이라는 목표 금액을 정하고 ‘우리 이런 책을 기획 중인데 읽고 싶은 사람 모여’라는 펀딩 공지를 냈는데, 목표한 액수를 넘어 무려 1400%를 달성하고 말았답니다. 

저는 ‘나쁜 일이 파도처럼 밀려왔지만 도망가지 않았다’는 카피 문구를 본 순간, 할머니가 생각났어요. 그리고 '이 책이 세상에 나오는 걸 보고 싶다, 이 언니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는 생각으로 바로 펀딩에 참여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에필로그 뒤엔 각자 몇만원씩 십시일반으로 돈을 보탠 개별 후원자들의 이름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지요. 제 이름은 296페이지에 등장합니다. ^^

이 평범해서 특별한 언니들의 인생을 꼭 한 번 만나보셨으면 좋겠어요. 한 가지 주의할 점은, 공공장소에서 이 책을 읽으시다가 갑자기 눈물 콧물을 훌쩍이는 사태가 올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토록 바쁘고 힘들게 변신을 거듭하며 가장으로서 투잡에 쓰리잡이 모자란 세월을 살아온 그들인데, 가사노동에서 단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 역시 놀랍고 기가 막힌 공통점이기도 합니다. 정말 만나서 한 번 물어보고 싶어요. 언니, 언니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오신 거예요? 어떻게 (죽거나 도망치지 않고) 버티신 거예요? 그에 대한 답은 우선 책의 카피로 대신하고, 오늘의 편지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잘 봐. 언니들 인생이다.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누구보다 용감하게 삶을 살아온 멋진 언니들에게 바칩니다.

빅뱅의 봄여름가을겨울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N5mG_yMDiM



IP *.235.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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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12 13:20:15 *.74.92.128

책 구매는 어떻게 할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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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19 14:41:25 *.166.254.112

아, 이 책 넘 좋은데 시중엔 없어요. 펀딩으로 기획된 책이라서... 혹시 도서관엔 들어왔을 지도? 

하지만 경향신문에서 기획한 같은 제목의 기획기사 시리즈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라 여기서 관련 기사들을 보실 수 있어요. 대부분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https://www.khan.co.kr/series/articles/as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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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12 22:03:21 *.169.227.25

평범함 속에 담겨져 있는 비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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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19 14:42:09 *.166.254.112

맞아요. 평범해서 위대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저는 너무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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