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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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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24일 11시 00분 등록

나와 별과 산 

   

흰 구름 떠도는 바람 부는 날 산에 올랐다. 타국에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하는 그리운 세 가지가 있었으니 내 방 서재와 내 사람들, 내 발로 걸었던 산이겠다. 휴가를 얻어 한국에 들어서자마자 자석에 끌리듯 산으로 향했다. 오죽하면. 아내는 혀를 찬다. 그럼에도 무리하지 마라, 간식 챙겨 먹어라, 자주 쉬어라 하며 새벽같이 일어나 김밥을 챙겨주는 살뜰한 후원자다. 간발의 차로 벚꽃이 졌다. 꽃비도 멈췄다. 연두의 잎이 나무를 점령해 있다. 연두, 그것은 색깔이라기 보다는 삶의 어떤 질감 같은 것이어서 하나의 세계에서 다음 세계로 도약하는 시적 순간의 또 다른 언표가 아닐까 생각했다. 다른 세계에서 오랜만에 찾아 온 나를 반갑다 말하는 듯하다. 연두의 열렬한 환영에 들떠 몸을 바르르 떨었다.

 

언양읍엔 장이 섰다. 버스터미널은 이전했고 새로운 상점들이 들어섰지만 사람들은 그대로다. 그때도 지금도 장날이면 봄 미나리를 팔고 뻥튀기를 튀기고 산나물을 소쿠리째 내다 판다. 마치 이 곳을 떠나올 때 같은 장소에 고정 카메라를 놔두고 온 것처럼 오랜 세월을 건너 건물이 무수히 무너뜨려지고 세워져도 장날 사람들의 배경은 바뀌지 않는, 한 편의 무성영화를 보는 듯하다. 이리도 그리울 줄 알았다면 이 살가운 풍광을 곁에 두고 왜 데면데면했을까. 멀찍이 서서 산은 나를 보고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않고 노려본다. 밉다는 걸 게다.

 

석남재로 올라 능동산으로 향하는 길은 꾸준히 남진한다. 평일이라 산길엔 아무도 없다. 조릿대 숲을 지나면 솨아 하고, 지난 가을 떨어진 낙엽을 밟을 땐 사각사각 한다. 산 길 곁에 자라 사람 손 많이 간 소나무 등껍질이 반질반질하다. 들벚나무, 사시나무, 향나무, 싸리나무 사람 많은 주말에 적의를 날리며 회초리처럼 걸리던 가지들을 안아주며 걸었다. 고요하던 산 길에 나타난 사람에 이들도 뜻밖에 놀라 적의를 내려 놓는다. 우리 언젠가 한번 본적 있지 않느냐며 모르는 나무에게 하이파이브 날리며 걸었다 

 

북상을 서둘던 봄이 배내봉 산허리에서 멈추었다. 땅에서 다 떨어진 벚꽃은 산허리에 만발하고 진달래가 지척이다. 눈 앞에서 봄을 다투는 꽃들을 보았으니 가는 봄이 아쉬웠던 나에겐 횡재가 아닐 수 없다. 진달래와 벚꽃, 산길 옆에 곱게 핀 야생화로 눈이 즐겁다. 어찌나 예쁜지 이 꽃들이 혹 아름다움으로 다투고 있는 것 아닌가 싶은 것이다. 아서라 꽃들은 아름다움을 다투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꽃이 더 아름답니 아니니 하는 말들은 틀리다. 꽃들은 자신들을 곡해하는 사람들을 어리석다 여기지 않겠는가. 시나브로 봄은 지나간다.

 

간월산 굽이를 돌 때 해가 지기 시작했다. 마침 허기도 있어 간월재 너른 마당에 내려서서 밤을 지샐 터를 수색했다. 없던 휴게소가 생겨 휴게소 담벼락 구석에 바람을 피하기로 한다. 배낭을 털썩 내려 놓았다. 아무도 없다. 바람이 횡하고 지나갔다. 오렌지빛 석양이 사방을 물들였다. 내 살던 고국을 떠나 살며 마음 한구석이 늘 비었었다. 몸서리 치는 외로움이 나를 관통했고 떠나온 나를 자책하며 밤을 지샌 적이 며칠이던가. 오늘, 숲을 헤치며 산길을 오르고 마냥 기어오른 간월재 마루턱 벼랑가에 침낭을 펴고 산과 함께 잠자리에 들려 누우니 지나 온 삶이 별처럼 지나간다. 어두운 밤, 별과 나 사이엔 아무것도 없다. 문득 시야가 흐려지며 표정 없이 누운 침낭에 동그르르 눈물 한 방울이 흘렀다. 어디를 헤매다 이제 오느냐, 나를 끌어안으며 소리치는 산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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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9 15:32:45 *.144.57.235

연락하시지, 보고 싶었는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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