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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 15일 07시 23분 등록

내가 귀자를 만난 것은 올 봄이 시작될 때였습니다. 벚꽂이 지천으로 흩날리는 남해도 남쪽 바다가 보이는 집에서 이 여자아이를 처음 보았습니다. 그때 우리는 그곳에서 연구원들 전체 모임을 가졌습니다. 귀자는 올해 연구원으로 들어왔었습니다. 귀자는 연구원들 중에서 가장 어립니다. 아직 학생이니까요.

귀자를 처음 보는 순간 앞이 막혀 숨이 턱 찼습니다. 크기 때문입니다. 귀자는 나보다 키가 더 큽니다. 다음에 다시 귀자를 만났을 때, 스승의 날이라고 팬 플륫을 불러 주었습니다. 달이 떠오르고 그 소리가 좋아 우리는 산으로 올라 술을 마셨습니다. 작은 악기를 다루고 아름다운 소리를 자신의 일상 속으로 끌어 들일 줄 아는 이 아이는 이 날도 나를 놀라게 했습니다.

얼마 후 나는 연구원들에게 숙제를 내 주었습니다. ‘자신의 장례식을 가정하라. 그리고 친지를 향해 세상과 작별하는 마지막 연설을 하라’는 숙제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나이가 들어 세상을 떠날 때를 가정하고 자신들이 써 온 글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귀자는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24 살의 자신을 죽여 놓았습니다. 제대로 살아 보지도 못하고 죽은 분노와 미련과 아쉬움이 절절한 글이었습니다. 24살의 귀자를 죽여 묻은 후, 다시 새로운 귀자로 태어나고 싶은 모양입니다. 지금은 단식 중입니다. 보름 간 포도 단식을 하고, 오늘부터 제대로 보식을 하기 위해 지리산으로 내려갑니다.

이 아이는 만날 때 마다 나를 놀라게 합니다. 만날 때 마다 선생의 눈을 크게 뜨게 만들어 주는 제자는 훌륭한 제자입니다. 이 아이를 보면 가지가지 재미있는 실험과 모색의 이야기로 가득한 커다란 꿈자루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 재미있는 아입니다.

하루를 놀라게 한다는 것은 멋진 일입니다. 긴 인생을 즐겁게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오늘 내 앞의 하루 하나를 껴안아 놀래키는 것은 수많은 날을 즐겁게 사는 비결입니다. 하루를 잘 살다 보니, 인생을 잘 살게 되는 것이지요.

오늘, 기분 좋게 놀라게 할 일 하나 저질러 보면 어떨까요. 귀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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