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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20일 22시 24분 등록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자유학년제 인문독서’로 돌아왔습니다. 이번 주는 ‘다시, 책으로’ 돌아온 가족의 이야기에 대해 썼습니다. 


올해 3월초까지 온가족이 인문독서를 이어왔습니다. 하지만 3월 말부터 지난 주말까지 가족 독서는 사실 상 멈춤 상태였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아이가 바빠졌기 때문입니다. 큰아이는 중학교 2학년입니다. 혁신초등학교를 졸업했고 중학생이 되고나서도 자유학년을 보냈기에 여태 학교에서 시험을 쳐 본 적이 없었습니다. 올해 난생 처음으로 지필고사와 수행평가를 치러야했습니다. 고교 비평준화 지역이어서 원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려면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내신 성적을 관리해야 합니다. 이 지역 중학생들은 입시 부담에 시달립니다.


또한 엄마인 제가 바빴습니다. 4월에 한 권, 5월에 한 권, 연이어 두 권의 신간 출간을 앞두고 마지막까지 책 작업을 하느라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지 못했습니다. 예전처럼 인문고전을 읽고 가족독서 토론을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지난 두세 달 간, 가족독서는 중단됐습니다.


지난 일요일 아침, 온가족이 식탁에 모였습니다. 오랜만에 여유가 생긴 제가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얘들아, 가족독서 하지 않는 동안 어땠어?”


두 아이는 멀뚱멀뚱, 무언가 말을 하고 싶지만 정리가 안 되는 눈치였습니다.


“너희들이 지금처럼 가족독서를 안 하는 게 좋다면, 앞으로 그렇게 하자. 각자 책 읽는 취향도 다르고, 읽고 싶을 때 자유롭게 읽는 게 좋지 않겠어?”


제 말이 가족독서를 그만하자는 말로 들렸는지 작은아이가 얼른 끼어들었습니다.


“가족독서토론은 꼭 했으면 좋겠어요! 각자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일요일 저녁에 식탁에 모여서 일주일 동안 무슨 책 읽었는지 그 책이 어땠는지 이야기하는 거예요. 저는 <헌터걸> 시리즈를 소개하고 싶어요. 오늘 저녁부터 독서토론 다시 하자고요!”


초등 4학년 작은아이는 가족독서를 하지 않았던 시간 동안 혼자서 책을 많이 읽은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중학생 큰아이와 인문고전 읽기를 중심으로 가족독서토론을 해왔다면, 이젠 초등 4학년 작은아이와 이야기책으로 독서토론을 해도 좋겠구나 싶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큰아이는 별 말이 없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속마음을 알 수 없었습니다.


“중학생 때 내신 성적 안 챙겨서 한 시간 씩 버스 타고 멀리 있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선배들을 보면, ‘가까운 학교 가려면 나는 성적 잘 챙겨야 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생각해 보면 엄마가 책 읽어줄 때가 제일 좋았어요. 엄마가 일 하느라 우리 가족이 떨어져 지냈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졌죠. 우리가 ’책 읽는 가족‘이 되고 나서 집이 얼마나 좋아졌는데요 계속 가족독서를 하면 좋겠어요. 하지만 이렇게 책만 읽다가는 원하는 고등학교에 못 가는 건 아닌지 걱정도 돼요.”


월요일인 오늘 오후, 하루 동안 생각을 정리했는지 큰아이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책읽기와 고교 진학 준비 사이에서 고민하는 아이가 안쓰러워서 다시 물었습니다.


“책읽기가 학교 공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부분이 있지 않을까?”


“있죠. 특히 글쓰기 할 때요. 정해진 시간에 두 페이지를 가득 메울 정도로 이젠 글이 술술 써져요. 논지를 밝히고 결론을 제시하는 논설문 쓰기는 이제 정말 쉬워요. 이건 작년에 인문고전을 읽고 온가족이 독서토론을 해서인 것 같아요. 또 지필고사에서 긴 문제를 읽어 낼 때, 서술형 수학 문제 풀이과정을 쓸 때, 도움이 돼요. 책 읽기를 꾸준히 하지 않았다면 이런 것들이 어려웠을 거예요.”


“그렇다면, 입시 때문에 책 읽기를 미룰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오히려 책을 더 읽어야 하지 않을까?”


“음, 그게... 교과서 표현을 그대로 썼는지, 수업 시간에 필기한 내용을 그대로 옮겨 썼는지가 중요해서요. 내신 성적을 잘 받으려면 똑같이 써야 하니까 암기를 해야 하고, 암기할 시간이 필요한 거죠.”


아이 말을 듣고 보니, 지금도 예전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와 같은 방식으로 평가가 이루어지는 건가 싶어 속이 답답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이 되고나서 예전처럼 읽고 싶은 대로 책을 읽지 못하는 아이 심정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됐습니다.


“엄마도 알 것 같아. 당장 급한 일에 매달려서 책 읽을 시간을 내지 못 하는 그 상황. 그래, 책을 안 읽는 시간 동안 어땠니? 좋았니?”


“아니요. 우리가 ‘책 읽는 가족’이 아니었던 때로 돌아간 것 같았어요.”


“엄마도 그랬어.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하루 30분이라도 책 읽는 시간을 가지려고 해.”


온가족이 다시 책을 읽기로 온가족 인문독서를 계속 하기로 했습니다. 주말에는 가족독서토론도 하고요. 다음 주에 ‘자유학년제 인문독서’ 돌아오겠습니다.   


김정은(toniek@naver.com)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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