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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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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20일 17시 46분 등록

일상에 욕망이라는 것이 있다면

 

마침내는 주식과 아파트 얘기를 할 터인데 웃지 못할 일에 동조하며 웃어야 하는 억지 웃음이 그저 슬픈 표정을 짓는 것보다 슬퍼서 그랬다. 한 번 가면 오지 않는 생이고, 죽으면 썩어질 몸이라 삶은 참으로 허망하고 무상한데, 그렇게 방금 얘기해 놓고선 재빨리 표정을 고쳐 지난 번 산 주식이 두 배로 오른 것과 버린 셈치며 가지고 있던 아파트의 값이 올랐다는 데 얼굴을 무너뜨리며 기뻐하는 걸 보면 어째 우리가 기뻐해야 할 일이 그런 것들 밖에 남지 않았을까 하고 슬픈 것이다.

 

그래, 기함 하겠지마는 술 마시자는 사내들의 요청을 뿌리치고 나는 아내에게로 간다. 아내에게로 가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듣고, 싱거운 농담을 주고받고, 밥을 먹고 산책을 한다. 산책을 하며 팔을 끝까지 뻗었다가 몸을 뒤틀고 고개를 젖히다 먼 별을 보며 감탄한다. 차에 밟혀 내장이 터진 채 길가에 널브러진 개구리를 아무 느낌 없이 지나치고 가끔 떨어진 프렌지파니 꽃을 주워 냄새를 빨아 마시고 다시 조신하게 버린다. 산책하며 집주인 욕을 하기도 하고 지난 날 고마운 사람을 불러내 지금은 어찌 지내나 궁금해하기도 한다.

 

이 단촐한 의식 같은 하루의 마무리가 그저 똥 같은 삶을 그래도 살만한 삶으로 바꾸는 것이다. 오랜 동지처럼 서로의 마음을 토닥이는 아내와의 잡스러운 대화는 하루 중 큰 기쁨이다. 나조차 자기기만의 하루를 보내며 나에게 지배를 받다가 그 누구에게도 지배받지 않고 놓여나서 더는 지배하지 않는 유일한 해방의 이 시간을 어찌 마다 할 것인가. 술자리를 늘 거절하여 미안하지마는 친구여, 나에겐 볼 일이 있는 것이다.

 

산수유 꽃 날리던 날, 시원한 계곡 끝에 편평한 바윗돌을 찾아 허리춤 차고간 술을 꺼내고 병뚜껑에 나눠 마시며 드러누웠던 날, 하늘에 흰구름, 나뭇잎 사이로 내려앉는 햇살에 나는 한쪽 눈을 찡그리며 환하게 웃었다. 계곡 물 소리, 연두색 풀꽃들, 노란색 산수유 꽃에 끊임없이 웃어재끼던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지만, 세상에, 그녀와 그런 웃음이 있었다.

 

유성이 비처럼 내리던 밤, 큰 놈과 침낭을 나눠 덮고 방금 꺼진 모닥불 잔불 냄새 맡으며 별과 우리 사이에 아무것도 없다, ,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을거라, 별과 우리 사이에 아무것도 없다, 마침내 눈이 커졌을거라, 별과 우리 사이에 아무것도 없다는 그 말을, 세 번 내뱉으며 침낭 자크를 올리고 경이로운 하늘을 봤지. 추운 겨울 감탄하며 침묵했던 5, 그렇게 가슴 뛰고 재잘대던 침묵도 없었을 테지.

 

두 해 전, 우리 10년 뒤 어떤 모습일지 하얀 종이에 그려보자고 딸이 말했다. 뒷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나는 이유를 알 수 없이 얼얼했던 머리를 쥐어뜯으며 시간을 더 달라, , 더 하며 마침내 완성한 그림을 서로 바꾸어 보던 때, 무대에서 노래 부르는 그림을 설명하며 딸은 환한 얼굴이 되고 이미 댄스 가수가 되어 있었다. 먼데서, 다른 사람들과 젠체하고 꿈을 얘기했었다. 내 앞에 딸아이의 모습으로 다가와 앉아 있던 신을 몰라보았다. , 그래서 얼얼했던 것이다.

 

나에게 욕망이 하나 있다. 주식과 아파트와 연봉과 집의 평수가 침범하지 않는 일상을 늘려 나가는 것, 한번뿐인 짧은 내 삶이 나보다 긴 수명을 가진 것들로 인해 훼손되지 않게 하는 것, 내가 죽어도 여전히 남아 있을 것들에 내 단명함이 갉아 먹히지 않게 하는 것이 내 일상의 욕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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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1 02:24:36 *.52.254.111

누군가 제게 물었죠,  인생은 전쟁아니면 사랑이라는 데 너는 어느 쪽이냐고,  전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서 전쟁을 했었다고 그런데 그 전쟁같은 삶이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앗아 갔다고 말했었죠. 

어린시절,  주기도문외워서 사탕받으러 형과 누나들을 따라 가던 일요일 교회가는 길, 사람들은 늘 웃고 기쁘게 찬송했었는데,,,  또 어머니 잔등에 엎혀 간 절 스님 몰래 부처님 무등타고서 절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내려다 보며 느끼던 묘한 안도감...  방학 때 외가 너른 마당에 깔린 멍석위에 누워 모기불 사이 높은 7월의 밤하늘을 수 놓던 은하수를 보며 이모와 외삼촌의 도란도란한 이야기에 잠들던 편안함...  그 모든 것들은 아주 오래 전에 잊혀 젔고 지옥과 천당 사이의 갈림길을 헤매이며 되돌아 올 때 마다 더 비장한 각오를 하고 더 높이 더 멀리 세상을 떠돌다가 나는 허울 뿐인 명예와 긍지 권위에 갇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잃었었습니다.  

그런 내게 명예도 지위도 권위도 다 버리고 '한 걸음 더 !'  지나 온 그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아프고 힘겨운 한 걸음을 내 딛게함을 감사하며 '나 새롭게 ... 그렇게  만신창이가 됐지만 온 몸과 마음으로 소박한 일상을 감사할 수 있는 삶으로 회귀할 수 있게 해 주신 신과 운명 앞에 아직 살아 있음을 감사드림니다. 그리고  여기 내게 새 삶의 시작을 주신 스승,  그의 그늘에서 깊은 절망과 좌절에서 다시 일어나 한 걸음을 떼기 시작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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