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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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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5월 11일 09시 29분 등록

라이처스 브라더스의 언체인드 멜로디 선율과 함께 또르르 흘러내리던 데미 무어의 눈물고등학교 때였을 거다영화 <사랑과 영혼>을 보는 내내 너무나 신기하기만 했다. 세상에 어떻게 저렇게 예쁘게 울 수가 있지? 아니 어떻게 저렇게 아무런 맥락도 없이 눈물이 나오냐고? 거울 앞에서 아무리 연습을 해봐도 될 리가 없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저건 안약인거야. 어떻게 표정 하나가 안 구겨지는데 눈물이 뚝뚝 떨어지냐고. 하지만 그 역시도 석연치가 않았다. ‘편집이라는 개념 자체를 몰랐던 당시 안약 한통을 다 쓰고도 도무지 그 절묘한 타이밍을 재현해 낼 수가 없었던 거다. 그렇게 데미 무어의 눈물은 내가 기억하는 첫 넘사벽의 체험으로 남았다.

 

눈물에 대한 씁쓸한 기억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물을 잘 챙겨 마시지 않아서 일까? 내 몸에는 눈물에 까지 할당할 여유 수분이 없는 것이 분명했다. 일상생활에서는 물론 친구들은 손수건을 흠뻑 적셔가며 펑펑 울고 나오는 극강의 슬픈 영화에도 내 눈물샘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를 않았다. 어쩌다 친구들과 투닥거릴 일이 있어도 상대가 눈물을 보이고 나면 시비를 가리기도 전에 상황은 종료. 나는 영문도 모르는 가해자가 되어 눈만 꿈뻑거릴 뿐이었다. 이런 경험이 거듭되자 누군가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만 봐도 가슴이 답답해졌다. 난 또 뭘 잘 못 한 거냐. 제길.

 

원래 그렇게 잘 울어요?”

, 저요?”

 

12년 전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과정의 두 번째 오프 수업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주제 발표 후 동기들의 피드백을 받는 시간이었다. 주제와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뜬금없는 질문에 진심 당황했다. 겨우 몇 달 사이에 내가 그렇게 자주 울었단 말인가? 내가? 그러고 보니 그랬다. 그들을 만나러 가기도 전에 과제로 받은 글을 쓰는 동안에도 나는 내내 울고 있었다. 키보드에 손가락을 얹고 화면을 바라보면서 꺽꺽 소리까지 내며 그야말로 대성 통곡을 한 것도 수차례였다. 마치 눈물이 넘치는 것을 막고 있던 제방이 한꺼번에 무너져내린 듯 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오래 참았던 만큼 눈물이 몸 밖으로 흘러나가는 해방감이 엄청났음에도 불구하고 다소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니까 이제 내가 그렇게도 진저리치던 수도꼭지가 되어 버린 거야? 그 와중에도 내겐 끝까지 데미무어처럼 울어 볼 기회는 오지 않는 모양인가 싶어 섭섭했던 모양이다. ‘그래. 그건 분명히 편집이었던 거야. 안약을 넣고 하늘보고 있는 장면을 컷팅한 것이 확실하다고!’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던 기억이.

 

그랬던 나의 볼에 시도 때도 없이 눈물 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리기 시작한 것은 스승을 떠나 보내고 난 다음이었다. 길을 가다가도, 밥을 짓다가도, 심지어는 변기 위에 앉아 있다가도 마치 코피가 터지듯 아무 준비운동도 없이 눈물이 터져 내렸다. 그럴 때는 도리가 없다. 정말 코피를 지혈하듯 일단 흘러나온 눈물을 닦고 휴지를 눈물샘 주변에 받쳐 둔 후 고여 있던 그리움이 다 빠져나올 때까지 하늘을 보며 기다리는 수 밖에.

 

스승이 떠나신지도 이제 만 8,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 싶었다. 그리움이 오히려 스승께 누가 되는 것이 아닌가 죄송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의연해보려고 애써보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만사가 그렇듯 애써서될 일이 아니었나 보다. 스승의 기일까지는 어떻게 잘 참고 넘겼지만, 스승의 날 주간에 딱 맞춰 세상에 나온 홍승완 작가의 <스승이 필요한 시간>에 단단하다 자신했던 무장이 단번에 해제되어 버리고 말았던 거다.

 

반가운 책이니 기쁘게 읽어야지. 하는 다짐이 무색하게 책 표지를 넘기고 첫 장에서 만난 구본형(具本亨) 사부에게’ 11글자에 봇물처럼 눈물이 터져 나왔다. 무슨 일인지 도무지 책장이 넘어가지가 않는다. 글자보다 행간에 버무려져 있는 그리움이 자꾸만 내 안의 그것을 건드려 오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모르게 스승을 부르고 있는 내가 있다. 사부님, 부족한 제자의 눈물이 사부님께 누가 될까 두렵습니다. 그런데도 도무지 이 눈물을 멈추게 할 수가 없으니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은 걸까요? 어쩌면 좋은 걸까요


그리고 어김없이 들려오는 낮고 굵은 목소리. 숨을 들이 마시고 나면 내 쉬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 그 자연스러운 것을 참으려고 하니까 병이 되는 것이다. 들이 쉬고 내쉬는 숨에 부족하다는 분별이 가당키나 한 것이냐. 너는 그냥 너의 숨을 쉬면 그걸로 충분하다. 눈물이 흘러나오면 흘리면 되고, 글이 흘러나오면 쓰면 된다. 내 이름을 보고 쏟아낸 네 눈물은 이제는 이미 네가 된 나를 쏟아낼 때가 되었다는 신호다. 내가 말하지 않았더냐? 너는 터진 그리움으로 흩날리는 봄 날의 벚꽃잎 같은 책을 쓰게 될 거라고.

 

그렇게 오랜만에 스승을 만나고 오래 망설이던 한 줄을 드디어 자판에 찍었다. ‘살림, 그것은 궁극의 변화경영이다.’ 스승께 받은 변화경영의 씨앗이 엄마’, 그리고 주부라는 현장에서 싹 틔워 맺은 열매, ‘살림명상’. 엄마, 주부 뿐만 아니라 몸을 가진 생활인이라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살림이야말로 우주 변화의 구조와 원리, 그리고 실천을 여한없이 체험할 수 있는 황홀한 수련이라는 깨달음을 이제는 주저없이 세상에 흘려보내려고 한다. 한 포기 한 포기 파를 다듬듯 마늘을 까듯 묵묵히, 정성스럽게. 그것이 눈물을, 글을 그리고 이윽고 삶을 되찾게 해주신 고마운 스승들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보은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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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7 19:06:58 *.52.45.248

나의 이 새로운 삶은 스승의 단 한 마디 글귀 때문이었다네...

"익숙한 것과의 결별" 

난 갑판 위에서 바다로 가 아닌  천길 벼랑 끝에서 뛰어 내렸지 ...

난 두 눈에 시퍼런 불꽃을 일으키며 벼랑의 틈새를 찾아  칼을 꼽았고 !

단, 한 번의 기회를 불끈 쥐어 솟아 오르며 외쳤지... 

"그래 ! 죽으면 살리라 !"  

난 울면 지는 거라 배웠거든,  우는 법을 잃을 정도로 

그런데 요즈음엔 자꾸 눈물이 났는데,  왜 그랬는지 이제야 알게 됐네 !

 내가 좋아하는 비내리는 날 !   사부님께 합장하고 천배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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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9 19:00:58 *.70.30.151

글고 보니 저 역시 일상을 이루는 거의 모든 것들이

합장과 절이 되어 있더라구요. ㅎㅎ


첫단추를 잘 끼운 덕분이라 감사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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