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장재용
  • 조회 수 995
  • 댓글 수 1
  • 추천 수 0
2021년 5월 11일 18시 03분 등록

벚꽃이 그 주인을 만나니 얼굴이 붉어지더라 (진해 시루봉 기행)

 

그 봄, 날리는 벚꽃 아래 사진을 찍으러 사람들은 몰려 들었고 도시는 떠들썩 했다. 올해 봄 도시는 적막이다. 적막한 도시를 휘휘 돌아 들어선 산 길도 적막이지만 도시의 적막과는 사뭇 다르다. 벚꽃 화장을 지워버린 진해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진해가 멋들어지게 보여주는 속살, 시루봉으로 가는 길은 지금이 축제다.

 

들머리부터 자생하는 녹차나무가 열병한 길을 한적하게 오른다. 오르는 길 중간 중간 아담한 정자를 내어줄 줄 아는 산의 유혹이 농도 짙다. 산과의 밀당놀이에 푹 빠져 걷다 보면 언제부터 흘렀는지 모를 태곳적 물 터를 만난다. 쏟아지는 땀인지 그녀가 씻겨주는 세안인지 분간하지 못하고 급하게 돌아본 전경에 외마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진해만이 박힌다.

 

아름다운 진해만의 해안선은 군사지역이라는 이유와 벚꽃의 유명세에 가려 눈에 띄지 않지만, 시루봉 중턱에서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예부터 천연의 양항(良港)’이라 일컬어진 이유를 실감한다. 크고 작은 반도와 곶 그리고 유인도 4개를 포함한 26개의 섬이 조화롭게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에 저도 모르게 눈을 감고 두 팔을 벌리게 된다.

 

트인 시야는 멀리 거제와 가덕, 바다 위 그네들을 잇는 문명의 이기(利器) 거가대교까지 조망할 수 있다. 맑은 날 눈을 씻고 보고 또 보는 풍광은 나에게 안긴 자여 보아라하는 시루봉의 선물이다. 뿐인가, 눈을 떨구어 앞을 보면 힘차게 뱃고동 울리며 달릴 듯한 큰 배들이 도열한 조선소 광경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다. 여러 상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느덧 큰 바위 앞에 마주하게 되는데 이곳이 진해의 속살, 시루봉이다.

 

오랜 세월 이 자리를 지킨 우뚝 솟은 바위는 볼수록 새롭다. ‘어떻게 산 꼭대기에 이렇게 큰 바위가 있을 수 있을까?’ 의문은 나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지질 학자들도 품은 의문이었다. 정상의 바위 지질학적으로도 매우 가치가 있다고 한다. 언제인지 모를 과거에 강력한 화산폭발이 있었고 그로 인해 화산쇄설물과 간간이 흘러나온 용암층이 진해지역의 병품처럼 감싸 안은 환상형 산악구조를 이루게 했다. 용암이 솟구친 자리에 바위가 들어 앉았으니 그 바위를 덮은 퇴적물이 오랜 세월을 두고 깎이고 깎이어서 시루봉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랬을 것이라 짐작만 될 뿐 현재 한국의 지질학계에서도 정확히 시루봉의 생성원인을 여전히 밝히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문명이 범하지 못한 멈춘 시간이다. 지상에 모든 걸 앗아가는 시간도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되는 여신의 속살 중에 속살, 봉긋한 가슴 끝임을 눈치 챘던 것 같다.

 

그러나 세월을 견디며 깎이어 가는 동안 이 바위는 우리네 땅에서 벌어진 역사의 여러 장면을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연기(緣起)의 시선으로 묵묵히 바라보지 않았겠는가. ‘진해가 역사의 전면으로 걸어 나온 때를 이 바위는 뼛속 깊이 기억하고 있을 게다. 서기 48년 멀리 인도 아유타국에서 허왕후를 태운 배가 진해만을 비껴갈 때는 기쁜 마음으로 환영하여 금관가야의 찬란한 전성기를 굽어보았을 것이고 근래’ 1592년 임진년에는 왜국의 대마도를 발진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선(戰船)이 한반도 남쪽 바다를 까맣게 뒤덮는 장면을 이 바위는 몸서리 치며 목도했을 것이다. 또한, 이 바위는 자신의 아랫도리에서 벌어지는 각종 제사를 신라시대부터 기분 좋게 봐 왔을 것이고 그 중 명성왕후가 순종을 낳고 지낸 백일제에서는 기울어 가는 조선의 어두운 명운을 일찌감치 예감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 저러한 어설픈 감상을 뒤로 하고 내려서는 길에 자꾸만 돌아봐 지는 것은 내가 그랬듯 산도 나와의 교감을 잊지 못한 것일 게다. 내리막의 빠른 걸음을 애써 늦추며 축제 같은 시루봉의 속살을 마지막까지 부여잡는다. 붉게 산다는 건 어떻게 사는 것일까, 바위의 시간과 내 육체의 시간을 번갈아 생각한다. 봄날이 간다. 아쉽다. 어제, 자이언츠 손아섭의 병살타만큼.



IP *.161.53.174

프로필 이미지
2021.05.23 15:13:15 *.52.45.248

시루봉,,, 산...  아 !  봄 날은 가네요 !  그나마, 가족들과 함께 지리산에 다녀왔네요 ! ^^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236 [화요편지_어른의 공부] 경험의 재구성을 위한 4단계 삶을 담은 하루 2023.04.18 502
4235 [월요편지-책과 함께] 은유 작가의 『다가오는 말들』 에움길~ 2023.04.17 496
4234 꺼지지 않는 불꽃 어니언 2023.04.13 450
4233 [수요편지] 모든 나뭇조각은 진짜 [2] 불씨 2023.04.11 713
4232 [화요편지_어른의 공부] 경험의 재구성, 실패의 재구성 [2] 삶을 담은 하루 2023.04.11 799
4231 [내 삶의 단어장] 꽃잎처럼 피어난 아나고 에움길~ 2023.04.10 482
4230 주인공의 조건 [3] 어니언 2023.04.06 740
4229 [수요편지] '나'에 대한 짧은 생각들 [1] 불씨 2023.04.04 541
4228 [화요편지] 10주기 추모제 스케치 "오직 마음에서 잊힐 때" file [10] 삶을 담은 하루 2023.04.04 1332
4227 [내 삶의 단어장] 퐁퐁 묻힌 수세미 에움길~ 2023.04.03 509
4226 사월이 온다, 올해도 어김없이 어니언 2023.03.30 556
4225 [수요편지] 나에게 돌아가는 길 불씨 2023.03.28 683
4224 [화요편지] 선택의 갈림길에서 [6] 삶을 담은 하루 2023.03.28 679
4223 [월요편지] 내 인생의 단어장을 펼치며 [3] 에움길~ 2023.03.27 1115
4222 [라이프충전소] 끝은 또 다른 시작 [15] 김글리 2023.03.24 1337
4221 [수요편지] 인생을 바꾼 한마디 [1] 불씨 2023.03.21 506
4220 [월요편지 138] 마지막 편지, 3년 동안 감사했습니다 [6] 습관의 완성 2023.03.19 964
4219 [라이프충전소] 기억의 궁전, 들어보셨나요? [1] 김글리 2023.03.17 841
4218 중요한건 꺾이지 않는 마음 [1] 어니언 2023.03.15 584
4217 [수요편지] 혁명으로 가는 길 [1] 불씨 2023.03.15 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