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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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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5월 18일 09시 49분 등록

일요일엔 <숲에게 길을 묻는 사람들>의 네 번째 세레모니가 있었다. 모든 일들이 다 그렇듯 우연과 진심의 절묘한 상호작용으로 만난 세 사람은 숲철학자 김용규 선생님의 책 <숲에게 길을 묻다>를 교과서로 1년 동안 숲생명체들의 생장수장을 함께 탐험해보기로 했다. 세 사람의 면면은 이렇다.

 

한 친구는 3년 전 뜻하지 않는 퇴직으로 삶이 휘청거리는 경험을 했다. 그때 우연히 만난 구본형 선생님의 책에서 큰 위로를 받았다. 자연스럽게 더 깊은 연결을 모색하다 마침 꿈토핑 더비움의 모집광고를 발견했단다. 그렇게 몸을 돌보는 것에서 연구소와의 인연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여러 가지 우연히 거듭되며 힘들 때마다 에서 위로를 받았던 자신을 기억해 내었을 무렵 <숲에게 길을 묻다>와 김용규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단다. 그리고는 일사천리, 마치 숲으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 그 모든 고난과 역경을 통과해낸 듯 새로운 삶을 멋지게 열어냈다. 그런 그녀가 숲생명체들과의 교감을 통해 자신의 삶을 깨워내는 인텐시브 프로젝트에 눈을 반짝인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또 한 친구가 숲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거의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매끼 다른 생명의 희생으로 숨 쉬고 살고 있으면서도 그 생명은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주문제작할 수 있는 공산품이 아님을 알아차린 것이 오래지 않았다고 한다. 배울 만큼 배운 그녀가 이리 말도 안 되는 무지 속에 머물러야 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더 높고 크고 위대한 무언가를 찾아다니느라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평범해서, 하찮은 것들에게까지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너무 많은 '위대한' 길들로 어지러운 책의 숲에서 길을 잃고 막막해하던 그녀를 살린 것은 자연이라는 '살아있는 책'이었다.

 

물론 혼자라면 어림도 없었다. 문맹자에게 글을 가르치듯 친절하고 인내심 있게 안내하고 통역해준 존재가 있기에 더듬더듬이나마 자연책을 읽어나갈 엄두를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우리를 살리는 것은 문자가 아니라 에너지라는 것을. 아무리 엄청난 에너지도 소화할 수 없다면 무용지물, 아니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러니 더 강한 에너지를 탐하기 전에 먼저 내 몸의 에너지 소화기관인 감각을 깨워내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도. 바로 그 감각을 깨워 내는데는 생명체와의 직접 만남만한 것이 없다는 것까지. 그러니 어찌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있단 말인가.

 

마지막으로 우리의 안내자이신 김용규 선생님.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 선생님께서 어찌 이런 맘을 내주셨는지. 한 달에 하루, 혹은 이틀을 옴팡 비워내 한 생명 한 생명을 세심하게 소개하고 연결해주시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게 웬 호사인가 싶다가도, ‘구본형 선생님께 받은 사랑을 아직 채 갚지도 못했는데 또 이런 사랑을 받고 있으니 아무래도 이번 생에 사랑빚 청산은 어렵겠구나.’ 하는 묘한 낭패감이 찾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 순간순간 선생님께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의 빛깔은 분명히 기쁨. 오래 써온 익숙한 손익계산기로는 도무지 계산해낼 수 없는 역학.

 

그렇게 시작된 <숲에게 길을 묻는 사람들> 세레모니가 이번 달로 4회차를 맞았다. 생장수장 生長收藏, 그러니까 나고 살고 이루고 죽는 생명의 순환 중에 생명, 숙명, 운명과 수용을 체험해본 지난봄에 이어 이번 달부터는 본격적인 성장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비오는 화양구곡에서 펼쳐진 여름꽃들의 치열한 성장의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을 따라 용감하게 삶을 열어내가는 다양한 생명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니 너무나 오래 붙들려 있어 이제는 답답한지도 잊고 살던 익숙한 굴레 하나가 철컥 벗겨져 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중에도 내게 가장 큰 울림을 준 것은 계곡의 바위틈에서 푸르게 자라나고 있는 신나무들이었다. ‘하필이면 왜 저 바위틈일까, 기구하기도 해라습관적인 안스러움이 밀려오던 차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조건보다 빛이 가장 중요한 저 아이들에게 마음껏 빛을 누릴 수 있는 계곡의 바위틈은 우리가 생각하듯 고난의 현장이기만 하지는 않을 거라고. 가장 소중한 그것을 위해 다른 것쯤은 얼마든지 감당하며 살 수 있는 것이 생명인 거라고. 어찌 신나무뿐일까.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있는 선택지를 늘리기 위해 그리도 안간힘을 쓰며 살았다. 선택의 폭이 삶의 질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을 거다. 그러나 살면 살수록 결국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라는 쪽으로 기울어 간다. 옷장에 아무리 많은 옷이 있다고 해도 입는 옷은 정해져 있듯, 아무리 많은 옵션을 들고 있어도 살 수 있는 삶은 하나 뿐인데 뭐하러 입지도 못할 옷을 마련하느라 그리 애를 쓰며 살아왔는지.

 

최근 지나온 기록들을 다시 살피고 있었다. 구본형 선생님을 만나 새로운 삶을 향한 여정을 시작하면서부터 남은 시간 내가 머물게 될 삶의 현장에 이르는 동안 각각의 국면에서 정리해 놓은 글들을 읽으며 신기해하고 있었다. 희노애락의 주관성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하늘이 다 무너져내린 것 같다고 표현되어 있는 그 시기를 타인의 시선으로 다시 보니 자꾸만 고개가 갸우뚱거려졌다. 파산을 한 것도 아니고, 몸이 아픈 것도 아니고,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니고 대체 뭐가 그리 힘들었다는 걸까? 마찬가지로 갑자기 떼돈이 생긴 것도 아니고, 환골탈태해 절세 미녀가 된 것도 아니며, 아이들이 금의환향해 돌아온 것도 아닌데 뭐가 그리 기쁘고 행복하다는 걸까?

 

질문의 대답은 명료했다. 삶을 이루는 수많은 요소들 중에 나의 행불행에 직접적이고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따로 있었다. 그것만 흡족하다면 다른 조건의 미비에서 오는 불편함쯤은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었다. 아니 그것이 불편하다는 것을 자각하지 조차 못할 때도 태반이었던 거다. 세상에 나는 그런 사람이었던 건데. 세상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그 모든 조건들을 한꺼번에 넘치게 충족시키기 위해 그리 안간힘을 쓰며 살았던 걸까? 그러느라 정작 내게 소중한 것들마저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살고 있는 걸까?

 

오래 나를 파먹던 기생생물이 스스로 떠나간 듯한 느낌이었다. 지뢰밭 같던 삶이 꽃밭으로 변한 듯한 자유로움이 이런 느낌일까? 후련하고 시원하고 통쾌한 가운데 설렘이 차오른다. 또 한 운큼 두려움을 덜어낸 숨맛, 삶맛이 달디 달다

IP *.70.3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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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9 10:12:51 *.215.153.124

일상으로 돌아와서 다시 변경연에 돌아왔습니다.


무언가 꾸준히 한다는 것은 선배님 글에도 나오지만,

"우연과 진심의 절묘한 상호작용" 중에서

아직 저는 진심이 부족한가 봅니다.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 이렇게 길고도 먼 길임을 다시한번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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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9 19:10:17 *.70.30.151

딱 지금 같은 순간,  내게 필요한 '우연과 진심'이 작동하기 시작하던데...ㅎㅎ


한 번 시작된 길은 멈추지 않습니다. 

주저 앉아 있는 동안에도, 심지어는 뒷걸음질치는 것 같은 순간에도 

내게 허락된 그 길을 정확히 만들어가고 있었다는 거. 


머리가 아니라 온 몸으로 느끼실 날 반드시 맞으실 거예요. 

거창한 무언가가 필요한 일이 아니니까요.

아침이 와 밤새 감고 있던 눈을 뜨는 것처럼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과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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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2 05:58:09 *.215.153.124

멈추고 있는 저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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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2 09:37:40 *.52.254.239

멋지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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