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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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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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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21일 22시 28분 등록
오래전 일입니다. 친한 지인이 난데없이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시집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지인이 회사를 그만둔 이유는 대충 들어 알고 있었지만, 술자리에서 다시 들었던 그 뒷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일 잘하기로 평판이 소문난 그는 회사 중요부서의 차기 팀장으로까지 거론되던 인재였습니다. 회사의 구조가 바뀌면서 새로운 경영진이 들어서게 되었고 평소 사내정치에 무심했던 그는 비주류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믿었기에 다시 중용되리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그의 생각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억울하게 좌천성 인사까지 당한 그는 결국 퇴사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마흔중반의 나이지만 좋은 경력과 출중한 능력이 있기에 호기롭게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보았지만, 나이 많은 그를 선뜻 받아주는 회사는 없었습니다.

그가 얘기한 그날 오후에도 내심 기대했던 곳에서 탈락 문자를 받았습니다. 이미 네번째 서류 탈락이었습니다. 회사 책상에 앉아있으면, 뒤에서 사람들이 자기한테 수근거리는 것 같아 앉아있기도 힘들었다고 합니다. 답답한 마음에 바람이나 쐬야겠다 생각하고 잠깐 회사밖에 나갔습니다. 회사 빌딩 입구를 나가자마자 한 노래가사가 들려왔습니다. 회사빌딩 1층에 있는 휴대폰 매장에서 크게 틀어놓은 노래였습니다.

"지금부터 난 다른 내가 되어야 해! 내가 웃는 등 위엔 고독이 따르겠지만 그건 날 오히려 더 강하게 하지 기다리는 이에게 저절로 돌아오는 건 없을 걸 일어나 먼저 부딪혀 보는 거야!"

그는 그 앞에서 그대로 멈췄습니다. 그냥 그대로 길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노래를 들었습니다. 노래의 가사가 그의 귀로 들어와 텅 빈 가슴에 그대로 꽂혔습니다. 옛날 가요였습니다. 알고는 있었지만 일말의 관심도 없었던 그 흔한 유행가의 가사가 그를 울렸습니다. 그는 바로 사무실로 올라가서 사직서를 작성했습니다. 며칠 후 그만두더라도 갈 곳이 생긴후에 사표를 내라는 회사 동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과감하게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는 회사를 다니면서 이직을 알아보다보니 자신이 매우 소극적이였다고 말했습니다. 하루는 꼴도 보기 싫은 이 회사를 때려치워야지 했다가, 또 하루는 오랜 기간 몸담았던 회사에 남은 미련을 부둥켜안고 있기를 반복했던 겁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이직의 가능성을 타진해보기는 했지만, 무게중심을 뒤에 둔 채 잽과 헛방만을 무수히 날리고 있었을뿐 앞으로 박차고 나가 제대로 된 펀치 하나를 쭉 내뻗을 용기가 없었던 겁니다. 마음 한켠에는 지금과 같은 월급과 지위를 포기할 수 없다는 마음과 이직이든 퇴사든 경제적인 상황이 좀 나빠지더라도 새로운 도전을 해야겠다는 마음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던 겁니다.

회사를 나간 그는 지금 주3일은 계약직으로 일을 하고, 나머지 4일은 글을 쓰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냅니다. 원래 그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시 동아리 회장까지 할 정도의 문학청년이었습니다. 지금 받는 급여가 원래 회사에서 받던 월급의 절반도 되지 않지만 그의 만족도는 꽤 높아 보입니다. 이전 회사에서는 개처럼 일했지만, 지금은 사람처럼 일한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소주잔을 부딪히며 그의 앞날의 행복을 기원했습니다.

그가 행한 행동, 그리고 그에 따른 결과가 외견상 성공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부족해진 경제력 때문에 힘든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인은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삶 대신 새로운 도전을 택했습니다. 별 것도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마흔중반까지 주어진 삶속에서 쳇바퀴 돌듯 살아갔던 그에게 회사를 그만두는 것은 쉽지 않은 결단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제가 여기서 주목한 것은 그가 우연히 듣게 된 노래입니다. 가수 김원준이 부른 <세상은 나에게>라는 노래입니다. 저 역시 모르는 노래는 아니였지만, 이 노래의 가사를 인식하게 된 것은 이번 계기를 통해서입니다. 사실 대단한 문장도 아닙니다. 흔한 자기 계발서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문장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날 지인에게 그 노래와 그 가사는 분명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 날의 상황, 지인의 마음, 그리고 그 노래의 가사가 공명한 겁니다. 아무런 배경이 없이 지나가는 행인들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노래가사였지만 누군가에는 울림을 주는 명언이었던 것입니다.

단 한마디의 말에도 인생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굳이 훌륭한 위인이 근엄하게 내뱉은 명언이 아니여도 그렇습니다. 싸구려 자기 계발서라고 매도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자신의 컨텍스트(context)안으로 들어오는 글과 말이라면 다 살아있는 것들입니다. 중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포기하고 귀국하려던 사람이 화장실 문에 써있던 시유불다( 時有不多)라는 글을 보고 크게 깨우침을 얻어 공부를 계속하여 성공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시간은 있으되 결코 많지 않다"라고 해석한 거지요. 이것은 사실 화장실 표시 - W.C를 한자로 표기한 것(다불유시 多不有時)을 거꾸로 읽어서 비롯된 오해라는 우스개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보면 명언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심지나 성냥에 불과한 겁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배경과 맥락(context)입니다. 이는 이전 글에서 이야기한 혁명의 발생조건과도 같습니다. 임계점까지 누적된 에너지에 불이 붙으면 혁명이 탄생하는 겁니다. 명언과 격언, 좋은 글은 어쩌면 묻혀버릴 수 있는 산발적인 에너지들을 응집시키고 폭발시키는 위력을 가집니다. 어떤 명문장은 그 문장 하나만으로도 위대한 힘을 가집니다. 위인이 살아온 인생의 역정과 교훈이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좋은 책을 읽다가 만나게 되는 명문장들은 내러티브적 속성을 가집니다. 짜임새 있는 글의 구성, 감명 깊은 스토리가 독자를 심연의 골짜기로 인도하며 멋진 문장은 부지불식간에 폭포가 되어 온 마음을 덮칩니다. 떨림과 공명은 삶으로의 생생한 동력으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명언집만으로 인생을 바꿀수는 없습니다만, 인생을 바꿀 의지를 다질 수는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경험에 있어 독서는 가장 경쟁력 있는 수단입니다. 노래 가사를 듣건, 인문학 강의 유투브를 보건간에 신은 오직 구하려는 자에게만 메시지를 보냅니다. 절실하지 못한 사람들, 다시 말해 준비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오직 스팸 메일함뿐입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피와 잠언으로 글을 쓰는 자는 읽히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암송되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좋은 글은 그냥 읽히고 아무 의미없이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울림을 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니체는 잠언은 또한 산 한가운데 우뚝 솟은 봉우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산에서 산으로 갈 때 가장 가까운 길은 봉우리에서 봉우리로 바로 건너뛰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리가 엄청나게 길어야 합니다. 이것은 축적된 노력, 그리고 절실한 의지가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뜻을 품은 사람만이 명언과 격언, 잠언을 봉우리로  삼아 더 큰 걸음을 내딛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가장 훌륭한 명언은 사랑하는 사람의 위로와 격려입니다. 진심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에 나온 제 지인도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데 있어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것은 아내의 격려였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회사를 그만두고 도전하게 된 이유는 노래 가사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의 맞춰진 퍼즐의 작은 조각일뿐, 그의 퍼즐은 이미 거의 완성된 상태였던 것입니다. 퍼즐의 가장 큰 조각은 사랑하는 가족과 아내,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과 살고 싶었던 하루의 모습이였던 겁니다. 
여러분의 하루는 어떻게 지나갔나요? 하루하루가 소망과도 같은 날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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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7 18:13:04 *.52.45.124

글을 읽다보니 기억속의 문장이 생각 났습니다.

"신은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앞에 모습을 나타내신다."


나의 무예 사부님이 그러셨거든요 

" 단순함은 복잡함을 이기지 못하고 복잡함을 오묘함을 능가할 수 없다.

그러나 오묘함은 단순함과 상통한다. 그것은 외형상으로는 같으나 하나는 조건과 상황을 포함하지 않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 

그 같지만 다른 "단순함"과 "오묘함"의 차이가 어디에서 오는지를 이렇게 이글처럼 표현할 수도 있겠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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