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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11일 14시 04분 등록

국악 관현악, 혹시 들어보셨나요?

 

당연하지, 난 즐겨들어답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국악 관현악? 관현악은 알겠는데 국악도 관현악이 있나?’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꽤 되실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관현악은 관악기, 현악기, 타악기로 연주하는 음악이고 이 악기 연주자로 구성된 연주단체를 관현악단이라고 합니다. 오케스트라는 관현악과 관현악단을 모두 가리키는 말이죠. 규모가 큰 관현악단을 교향악단이라고도 합니다. 서울시립교향악단, KBS교향악단,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은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으로 전부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유명한 곳들입니다.

 

국악 관현악은 국악기를 중심으로 악기를 구성한 관현악 형식의 음악입니다. 전통 국악에서 악기는 단독으로 연주되거나 소리와 함께 연주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여러분도 판소리의 북이나 장구 장단, 가야금 병창 등을 쉽게 떠올리실 겁니다. 전통음악에서도 기악연주와 노래, 무용이 어우러진 음악으로 종묘제례악과 문묘제례악이 있고, 행진곡인 대취타, 사물놀이 등도 여러 악기들의 합주연주라 할 수 있지만 이들은 특정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음악들로 원형을 보존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거나 야외 공연을 기반으로 한 것이어서 현대의 우리가 감상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서양의 클래식 음악이 유입되고 오케스트라 음악이 익숙해지면서 국악에서도 다양한 국악기의 합주를 통해 새로운 음악을 창조하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물론 수백 년의 역사를 통해 완성된 서양 관현악에 비해 아직 국악 관현악은 백 년도 되지 않은지라 발전의 여지가 많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유튜브나 방송 등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클래식 음악에 비해 국악 관현악은 좋은 연주를 찾아듣기 쉽지 않습니다. 레파토리도 아직 많지 않지요. 그래도 최근 많은 창작곡이 발표되고 연주되면서 점차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연주회를 즐기는 팬입니다. 분기별 정기 연주회는 물론 송년음악회, 신년음악회 등 열심히 출석 도장을 찍고 있습니다. 지난 331일 국립극장에서 열렸던 정기 연주회도 참 좋았습니다. 호응이 좋은 단골 연주곡 3곡과 그 작곡가들에게 의뢰한 초연곡 3곡이 연주되었는데 6곡 모두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왜 국악 관현악이냐구요?

 

어쩌다 내가 이렇게 국악 관현악을 좋아하게 되었을까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이것이 바로 경험의 재구성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음편지의 주제인 어른의 공부에 좋은 사례라 생각해서 이렇게 길게 서두를 열었습니다.

 

경험의 재구성은 인간은 경험으로부터 학습하며, 삶을 의미있는 경험으로 채워나가는 과정이 바로 학습이라고 보는 경험학습 이론의 핵심 개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살아가며, 경험으로부터 학습한다는 것은 전혀 새로운 개념은 아닙니다. 인류는 선사시대로부터 경험을 통해 문명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우연으로부터 경험을 끌어내고 경험의 반복을 통해 자연을 이해하고 경험을 기반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며 지금의 모습으로 살고 있지요. 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걸음마를 배우고 언어를 배우는 과정은 모두 경험의 반복입니다. 인간관계, 단체생활 등 사회적 존재로서 필요한 많은 것들도 경험을 통해 학습합니다. 우리의 삶은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경험과 별도로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누구나 경험을 통해 성장하고 배우는 것은 아닙니다. 유사한 경험을 하더라도 사람들은 서로 다른 것을 느끼고 배우며 또는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스쳐 보내기도 합니다.

 

성장기 아동이 다양한 경험을 통해 구체적 사실을 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구체적 사실을 충분히 경험한 아동이 그렇지 못한 아동보다 추상적 개념을 이해하는 것도 빠르고 언어를 비롯한 상징을 활용하는 것도 훨씬 빠릅니다. 그래서 교육에 있어서 체험, 경험의 중요성이 강조되지요. 그러나 동시에 경험의 폭이나 수가 훨씬 적은 아동이 많은 것을 경험한 아동보다 성숙한 경우도 있습니다. 성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의 경험이 많은 사람, 노인들은 지혜롭습니다. 동시에 나이가 들었다고 모든 이들이 지혜로운 것은 아니지요.

 

이런 차이는 모두 경험의 재구성을 통해 설명할 수 있습니다. 경험의 재구성을 얼마나 깊이 있게, 폭넓게 하는가, 또 이를 통해 다시 새로운 경험을 맞이하는가에 따라 같은 경험으로부터 학습할 수 있는 것이 사람마다 크게 달라집니다.

 

아동·청소년기와 비교하여 성인은 경험이 풍부한 것이 특징이며 나이가 들수록 경험이 증가한다는 측면에서 경험은 성인의 큰 자산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하나하나의 경험이 유의미해지기 위해서 꼭 거쳐야 할 과정이 바로 경험의 재구성입니다. 경험은 해석을 통해 재구성되어야만 삶을 바꾸는 힘이 됩니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교육자인 존 듀이John Dewey는 삶을 바꾸는 경험이 학습이고 경험의 질을 높이는 것이 바로 교육이며, 경험이 삶을 바꾸는 학습이 되거나 삶과 무관하게 되는지의 차이는 경험의 재구성에 달려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살아가기 위해서 나는 주변 환경과 사람, 즉 세상에 이렇게 저렇게 작용하고 또 이에 대한 세상의 반작용을 해석하면서 관계를 맺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나는 세상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이에 대한 반응을 선택하면서 세상과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이처럼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능동적 요소와 수동적 요소가 모두 경험이며, 능동적 요소로서의 시도하는 것trying과 수동적 요소로서의 겪는 것undergoing은 반성적 사고thinking를 통해 해석되고 재구성reconstruction되어 내 삶에 영향을 끼칩니다.

 

예를 들어 배우자 또는 친구와 싸운 것은 하나의 사건이자 경험입니다. 그러나 그 경험을   그냥 흘려보내면 비슷한 상황에서 나는 동일한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그 싸움은 내 인식이나 행동, 즉 삶관계에 어떠한 변화도 일으키지 않는 하나의 사건일 뿐입니다. 그러나 싸우고 나서 왜 싸웠는지 자신의 감정과 사고의 과정을 돌이켜 생각하고 문제점을 파악해서 변화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그것은 관계에 대한 경험의 재구성이 됩니다. 즉 하나의 사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무늬를 바꾸어 놓은 계기인 경험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경험을 통하여 무언가를 흡수하고 이것을 다음 경험에 덧붙여서 지속적으로 나의 관점과 행동을 변화시키고 개선해 나가는 것, 이것이 바로 경험학습론에서 이야기하는 성장growth입니다. 더 많이 생각하고 반성적으로 성찰하게 한다는 점에서 성공보다 오히려 실패가 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 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저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었던 물건이 있습니다. 바로 안방  구석에 세워놓은 해금입니다.  

 

제가 해금을 배우기 시작한 건 꽤 오래전 일입니다. 아이 학교에서 학부모들에게 학교 악기를 사용해서 해금과 가야금 무료 레슨을 한다는 가정통신문을 보냈는데, 마침 하던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된 해였습니다. 어릴 때 잠깐 피아노를 배워본 것 외에는 악기와 먼 삶을 살았는데, 이 가정통신문을 보자 갑자기 악기 하나 연주할 수 있으면 인생이 참 풍요롭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10주라는 기간도 한 번 배워볼까생각하기에 부담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해금 레슨은 10주가 지나고도 계속되었습니다. 처음 같이 시작했던 15명의 학부모 중 딱 2명이 남아 서로의 집을 오가며 선생님을 청해 레슨을 받았습니다. 해금도 샀습니다. 선생님의 대학원 졸업연주회도 같이 들으러 가고, 유명 연주자들의 동영상 연주를 찾아듣고 연주회도 갔습니다. 그런데 시이 지나면서 처음의 열정이 시들해습니다. 어느 날부터는 연습도 전혀 하지 않게 되었 연습이 부족하니 실력은 늘지 않고 재미는 더 없어지는 악순환에 빠졌습니다. 다른 레슨처를  50플러스에서 해금 수업을 받기도 했습니다. 여러 수강생들과 함께 50플러스 행사에서 미니 발표회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코로나 사태가 터졌습니다. 50플러스 수업은 모두 중지되었고 해금은 다시 가방 속에잠자기 시작했습니다. 년동안 같이 해금을 배우며 친구가 된 언니가 둘이서라도 연습을 하자고 해도 의욕이 살아나지 않습니다. 외부적으로는 코로나 때문에 해금을 못하게 되었다고 핑계를 댔지만 마음 한 편으로는 해금을 그만둘 핑계가 생겨서 편하기도 했습니다. 그냥 재미가 없어졌다고 하기에는 스스로에게 또 주변인들에게 어쩐지 민망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해금 연습에 재미를 잃어버린  해금 실력이 좀처럼 늘지 않때문이었습니다. 저보다 나중에 레슨을 시작하고도 금새 실력이 앞서사람들을 보면서 은근히 스트레스 받고 레슨을 시작한지 몇 년이 지나도 능숙하게 연주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코로나 핑계로 방치했던 당근마켓팔아버릴까 하다가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 그러지도 못하어느새 해금이 마음의 짐이 되었습니다. 

 

사실 악기를 배우다 그만두는 , 누구나  있는 일입니다. 저희 집에는 남편이 제대로 배우겠다고 사놓고 그대로 방치된 기타도 있아이가 한때 배웠던 플롯도 있습니다. 유독 제가 해금을 배우다가 그만 것을 무겁게 느끼는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요?

 

가장 큰 이유 뒷심이 부족하다는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신나게 시작했다가 어느새 슬그머니 밀어둔 많은 것들처럼 해금도 그렇다는 것, 끝을 보지 못하고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저를 힘들게 했던 것입니다. 그랬구, 자신에 대해 화나는 마음이 해금에 반영되어 해금이 짐이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쌓일수록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더 겁이 나서 머뭇거렸습니다.  

 

저는 왜 그렇게 저 자신에게 가혹했을까요? 하나에 집중하여 끝까지 가는 것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삶의 모든 영역에 그럴 수는 없습니다. 어떤 것들은 즐겁게 시도하면서 경험하고 그 안에서 배우고 성찰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해금 연주자가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해금을 배우며 얻은 것도 꽤 많습니다. ‘,,,,로 알았던 국악5계가 사실은 중국에서 사용하는 것이었고, 이제는 ,,,,을 기본으로 하여 다양한 계가 존재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전통 악보인 정간보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장 배움은 해금을 통해 국악의 아름다움을 알게 된 것입니다. 클래식도 국악도 모르고 몰랐던 만큼 즐기지 못했던 제가 해금을 통해 음악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었고 제 취향에 맞는 소리를 발견하고 즐기게 되었습니다. 해금 레슨이 저에게 국악 관현악으로 가는 다리를 놓아준 것입니다.

 

경험을 통해 배운다는 것은 성공한 경험을 통해서만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해금 뿐만이 아니라 숱한 실패의 경험들이 저를 더 넓은 세상으이끌어 주었습니다. 실패한 경험을 바라보는 관점도 바꾸어 주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성공의 경험보다 실패의 경험이 더 많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해야 하는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겠다고 시도했던 많은 것들접었습니다. 한때는 좌충우돌했던 그 시절을 후회한 적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경험들은 그대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시도해 본 것 자체를 좋은 경험이자 자양분으로 받아들이기까지 꽤 시간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그 경험들이 40대의 가장 자산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 자신에 대해서도 많이 너그러워졌습니다.       

 

실패에 대해 어설프게 변명할 것이 아니라 최선을 해 완전한 실패를 하고, 그 위에서 다시 일어나는 것, 실패한 경험을 통해 새로운 것을 흡수하고 이것을 다음 경험에 덧붙여서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바로 실패의 재구성’입니다. 

 

경험의 재구성 또는 실패의 재구성은 우리 성인들의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 최고공부입니다.

 

우리는 경험으로부터 배우지 않습니다. 우리는 경험을 반성하는 것으로부터 배웁니다.”

(존 듀이)

IP *.230.26.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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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12 23:23:58 *.169.227.243

제가 알기로 완벽한 선수는 없지요,  ( 표현은 가능하지요 모든 시합을 5대0 , 15대 0으로 이길 수 있다면 그렇겠지요 ! )  다만 완벽해지려는 선수가 있을 뿐이지요 !   

그러기 위해서는 '훈련과 수양'이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몸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시합이라는 것을 통해서 점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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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18 13:06:11 *.230.26.152

완벽한 선수가 없는 것처럼, 완벽한 사람도 없겠지요. 

훈련과 수양, 몸과 마음. 시합을 통한 점검.

그렇군요. 

공부도 그런 것 같습니다. 

머리로 이해한 인지적 변화는 몸을 통한 행동의 변화로 이어져어야 진짜 공부라고 하지요.   

시합처럼 나의 공부를 점검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요? 저도 생각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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