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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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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 14일 08시 31분 등록
어둠이 깊어질 때…

엊그제 몇 사람과 함께 깊은 산 속에 사는 분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어떤 행사를 준비하기 위한 답사 여행이었는데, 그곳에서 우리는 다른 목적으로 그곳을 방문한 도시 사람 세명을 만나 저녁을 먹고 술을 나누었습니다. 그 팀과 우리는 서로 처음 만나는 사이였지만 크게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갑자기 내가 사는 도시에서 종종 겪게 되는, 함께 탄 엘리베이터 안의 어색한 공간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보다 훨씬 넓은 마당의 평상을 밥상 삼아 널찍널찍 둘러앉았지만 우리의 거리감은 훨씬 적었습니다.

주인장이 뚝딱 차린 저녁 밥상은 큰 감동이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주인의 밭에서 부추를 자르고 왕고들빼기 잎을 뜯고 방금 딴 초록 고추를 얹어 씻은 뒤 접시에 담아 놓았습니다. 안 주인은 항아리에서 된장을 떠 쌈장을 만들고 나머지는 된장찌개로 내었습니다. 바깥 주인은 화덕에 솥뚜껑을 걸고 장작을 지펴 목삼겹살을를 구었습니다. 맞은 편 산에서 따고, 항아리에 담아 빚었다는 복분자주를 사기 주전자에 담아 웃음꽃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몇 순배 술이 돌자 어둠이 산을 완벽하게 안았고 우리는 헤어져 올라가야 할 시간이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일어서는 우리에게 주인장이 쇼를 보고 떠나라 했습니다. 이름하여 ‘별 쇼’였습니다. 마당의 불을 끄고 집 안의 불마저 끄자, 산은 말그대로 고요한 어둠으로 빨려들어갔습니다. 드문드문 반딧불이가 날고 있는 정원에 서서 모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습니다. 은하수가 남북을 가르는 하늘에 쏟아질 듯 별들이 가득했습니다. 마치 우주 공간에 박혀있는 눈송이 같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탄성을 쏟아내는 경험이었습니다.

시골에서 자랐으면서도 어둠의 힘이 이렇게 선명한 것인줄 나는 잊고 있었습니다. 가까운 곳을 밝히는 불빛을 모두 차단하고 고요한 마음으로 하늘을 올려다 보니 먼 곳의 별이 더 선명해지는 경험. 우주에는 어둠이 깊어질 때 더 선명해지는 질서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사람은 모두, 이따금 좀체 빛이 보이지 않는 삶의 어두운 골목길을 통과하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마음에 켜둔 불빛을 모두 끄고 더 큰 어둠에 서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가려는 길을 더 선명하게 찾고 밝혀보는 방법이 될 수도 있을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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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06.09.14 13:32:14 *.81.19.184
안녕하세요? 용규님. 저도 자연속의 라이프스타일에 관심이 많거든요. 아직 뜬구름잡기인 저보다 용규님은 모색과 진전이 있으실듯 싶어서요.

비슷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논의를 성숙시킬 수 있는 자리라면, 함께 할 기회를 주시면 어떨지요. 어차피 중요한 것은 하드웨어가 아니고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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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06.09.18 16:18:26 *.188.45.36
우선 언제 한 번 뵈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서울에 올라오실 일이 있으시면 미리 연락하셔서 시간을 잡으면 어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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