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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2006년 9월 18일 01시 04분 등록
2006년 9월 4일, ‘내 꿈의 첫페이지’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9기 꿈벗들을 만나러 부산에 갔다가 ‘새로 풀어 다시 읽는 주역’의 저자이자 역술인이신 서대원 선생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서 선생님께서는 당신의 댁으로 찾아온 우리 모두에게 당신의 책 첫 장에 각자의 호(號)를 지어주시면서 삶에 도움이 되는 말씀도 간략히 적어주셨습니다. 그 분은 제 얼굴을 보시고 이름과 직업을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호를 지어주시고 글을 쓰셨습니다.

‘일귀(一貴)’

‘이섭대천(利涉大川)’

호에 대해 “귀하게 태어나셨습니다. 귀한 삶이에요.”라고 간단히 말씀하십니다. 저는 이 말을 여기서 듣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섭대천’은 주역에 있는 말입니다. 직역하면 “큰 강을 건너는 것이 이롭다.”는 뜻입니다. 선생님은 “때가 되고 준비가 되면 자신감을 갖고 큰 강을 건너는 모험을 하세요. 주저하는 데 그러지 마세요.”라고 말씀하시면서, “때가 되어 큰 일이 하게 되면 주저 하지 말고 하세요.”라고 덧붙이십니다. 좋은 말씀인 것 같은데 저는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메일을 확인하던 중에 포털사이트에서 보내준 ‘9월 운세’를 보게 됐습니다. 평소 같으면 그냥 삭제했을 터인데 왠지 열어보고 싶었습니다. 운세 내용을 보고 잠시 놀라다가 허무하게 웃고 말았습니다.

“직장인은 사표를 내고 사업을 구상합니다.”

“직장인은 쌓인 감정을 풀어야 하는 시기입니다. 다만, 진로가 새롭게 수정된 사람은 충분한 조사와 대책을 세워서 다시 탑을 쌓아가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운세에 놀란 이유는 직장을 그만두기로 결정했기 때문이고 웃은 이유는 제가 충분히 준비를 했는지 더듬다가 허무해졌기 때문입니다. 이제 열흘 정도 후면 저는 3년 조금 넘게 몸담았던 직장을 떠나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듣고 본 말들이 절묘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제가 떠날 때가 된 것일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떠날 준비가 된 것일까요? 그것 역시 모르겠습니다. 자신감은 있을까요? 이것 또한 희망과 우울 사이를 오락가락 합니다. 알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인데 알지 못하니 답답합니다.

떠나기로 결정을 내리고 친한 이들에게 소식을 전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사람들의 반응은 비슷합니다. 몇 사람이 말합니다. “옮길 곳을 준비해두고 떠나야지. 먹고 사는 게 어디 쉽냐. 네 나이 서른이다. 애가 아니야.”

제가 말합니다. “입사 시절, 내 과거는 초라했습니다. 사장님은 당시 내 미래와 잠재력을 믿어준 몇 안 되는 분입니다. 저는 여전히 그 분을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계산 다하고 영악하게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차라리 아이 같은 마음으로 떠나고 싶습니다.”

대기업에서 오래 근무한 선배가 또 말합니다. “야, 관둘 때 관두더라도 추석 지나고 하지. 열흘 가까이 놀잖아. 월급날도 금새 올텐데.”

저는 그냥 웃었습니다. ‘그거 말고도 떠나지 않아야 할 이유는 많습니다. 그런 거 고려하면 저는 떠나지 못합니다.’ 속으로 말했습니다.

며칠 전 저녁을 먹다가 고민 끝에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어머니가 말씀하십니다. “취업하기 어렵다는데... 괜찮을 거야. 잘 할 수 있지? 점쟁들이 그랬어... 너는 그냥 두면 된다고 잘 태어났다고, 귀하게 태어났다고. 전에도 말했지? 엄마는 걱정 안 해.” 엄마 얼굴 보면 눈물 날까봐 밥만 먹었습니다. 점 같은 거 믿지 않았는데 어머니에게 그런 말을 해준 그 분들이 고맙습니다.

제게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떠나야 할 시기가 됐다고 마음에서 말하길래 그 말을 따랐습니다. 떠남은 저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떠남이 도피는 아니었는지, 이 선택이 철모르는 방황의 시작은 아닌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의 선택인데, 그것도 중요한 선택일진대 이런 저를 보면 답답해집니다. 두렵습니다.

“승완이는 지는 싸움은 안 해”, 언젠가 저보다 저를 더 잘 아는 친구가 농담처럼 한 말입니다. 그 친구는 제가 지지 않는 길을 선택해 왔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돌아보니 맞는 말인 것도 같습니다. 앞으로 저는 어떤 길을 가게 될까요? 이번에도 그저 지지 않는 길로 갈까요? 더 쉬운 길, 혹은 험난한 길을 갈까요? 이기고 지고, 쉽고 안 쉽고의 문제가 아니겠지요. 제 선택과 노력에 달려 있을 겁니다.

고민했습니다, 지극히 제 개인적인 일을 여러분에게 보내야 하는지를. ‘마음을 나누는 편지’를 쓰면서 저는 한 가지 원칙을 정했고 스스로에게 약속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쓰는 이 글만큼은 마음으로 쓴다, 오로지.’ 하지만 이 원칙과 약속을 지켰다기보다는, 지금의 저는 다른 글을 쓸 수 없음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이번 기회에 저에 대해 보다 깊은 탐험을 하고 그 과정을 정리해봐야겠습니다. 잘 될지 모르겠지만 가능하면 앞으로 그 과정과 결과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한 사람의 현재에 대한 진지한 고민으로, 과거에 대한 뼈저린 아쉬움을 떨어내는 과정으로, 그리고 내일을 위한 희망의 여정으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공지사항이 하나 있어 덧붙입니다. 의도했던 것은 아닌데 ‘내꿈의 첫 페이지’ 프로그램에 대한 공지사항입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 공지사항 : 9월 30일 부터 10월 2일 까지 2박 3일간 '내 꿈의 첫 페이지' 프로그램이 진행됩니다. 자신의 기질과 재능 그리고 경험을 활용하여 평생의 직업을 창조하고 싶은 분들은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자세한 내용은 변화경영연구소 홈페이지 '프로그램 안내' 중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을 참고 하여 등록하시기 바랍니다. 현재 추가 등록자 2명을 모집 중 입니다.
IP *.189.23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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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기원
2006.09.18 21:26:25 *.190.84.195
승완님의 길(道)를 잘 만드실 것이라 확신합니다.
一貴 =>스스로 믿는데로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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