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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25일 07시 12분 등록

 휴가를 냈었습니다. 쉬면서 그동안 하찮게 여겨 미뤄왔던 것을 해보았습니다. 바로 ‘웹소설 쓰기’입니다. 막연하게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으나 우선순위가 낮아 늘 미루던 일이었습니다. 


 웹 소설 쓰기가 내적 우선순위에서 갑자기 상승한 배경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외부에서 온 충격으로. 최근에 게임 시나리오 직무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던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회사에서 요구하는 것 중 하나가 저의 포트폴리오였는데, 일단 글쓰기를 기준으로 포트폴리오를 작성하는 것도 처음이었고, 제 글의 종류가 에세이에 집중되어 있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정리하면서 연습 삼아 캐릭터 이야기 만들기와 세계관을 설정하는 작업을 해보니, 자신에 관한 글을 쓰는 것과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내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것이 생각보다 다르며, 창작에도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내부로부터 온 변화입니다. 스스로가 생각보다 상업적 글쓰기에 대한 욕구가 꽤 있었던 것 같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원더우먼 프로그램에서 관심사와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에도, 만화를 그리고 스토리를 창작하는 것을 꽤 하고 싶어하는 자신을 발견했었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좋아하는 작품에 대해 설명할 때와 제가 회사에서 기획해왔던 제품을 소개할 때 제 눈빛과 목소리는 달랐던 것입니다. 몰랐으면 몰라도 알고 나니 뭐라도 한 번 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휴가 중 하루동안 혼자서 써보다가 작법에 대한 수업을 들어두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수업을 하나 신청했습니다. 대단한 인사이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웹소설을 읽으면서 느꼈던 여러가지 포인트들이 정리되어 있는 수업이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고, 저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미있는 세계와 이야기를 만들어서 이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즐기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또 하나는 웹 소설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과 쓰면서 느끼는 것이 좀 다르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읽을 때는 유행하는 코드들을 사용하는 것이 식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웹 소설의 차별성은 코드의 차별성이 아니라 진행의 차별성에서 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상업적 창작이 다 그런 것 같긴 합니다. 그동안 문학계에서 사용하지 않던 신선한 소재를 들고 오면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긴 하지만, 그 안에서 주인공이 주변 인물들과 어떤 관계를 쌓고 세계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흥미로워야 끝까지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연습용으로 짧은 장면과 캐릭터 설정, 이야기의 구조 등에 관해 이리저리 생각하다 보니, 내가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에게서 용기를 얻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았습니다. 웹 소설은 기본적으로 상업적인 글이다 보니, 철저하게 고객의 니즈를 반영하여 만들어지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웹 소설의 독자들은 주인공에게서 대리만족을 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세계의 문제를 해결할 열쇠를 가지고 모든 관계와 세계에서 자신이 주도권을 갖는 사람이 주인공이기를 바라는 것이죠.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실 세계에서 이런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소설의 기승전결을 쓰는 것이 어쩐지 주인공의 기승전결을 내 손으로 만들어가는 기분이 들어 주인공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며 쓰는 기분이 느껴지곤 했습니다. 뇌가 픽션과 논픽션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혹시 누군가 성공 체험을 해보아야 할 때, 그러나 자기가 하지 않을 일을 했다고 할 수는 없으니, 가상의 배경과 인물을 만들어 대리 성공 체험을 할 수 있게 써보는 것도 자기 자신에게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그동안 상업 소설 쓰기를 미뤄왔던 이유는 멋있지 않다고 생각했어 그랬던 것 같습니다. 누가 ‘요즘 퇴근하고 뭐 하냐’고 물어볼 때 ‘웹 소설 써요’라고 대답하는 생각을 하면 멋쩍은 웃음이 입가에 서립니다. 평온한 표정으로 ‘웹 소설이요’라고 말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제 자신만 해도 웹 소설을 좀 얕잡아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주인공이 다 해먹는 세계관을 읽어가는 것이 너무 현실성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반지의 제왕을 해리 포터보다 더 좋았던 이유 중 하나는 마법사 세계의 모든 설정이 해리 포터가 영웅이 될 수밖에 없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었던 것도 한몫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많은 소설가들이 소설을 쓰면서 자신의 자존감이 올라갔다고도 하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한 고백을 제가 쉽게 넘길 수 없는 것은 아마 그들이 주인공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며, 주인공이 어떻게 바뀌어가고 주변으로부터 영향을 받을지 고민해 보면서 자신의 일부를 사용했기 때문일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개인적인 측면에서 웹 소설 쓰기란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꽤 멋진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만과 편견 때문에 놓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이번 일을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콘텐츠를 소비할 때는 가리지 않고 즐기다가 막상 할 일을 고를 때는 속으로 우습게 보고, 그러고는 즐거웠던 기억이 있으니 한 번 나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도전해 보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이제부터라도 재미있게 자신을 실험해가는 시간을 많이 만들어갈 예정입니다. 마음 편지 독자분들도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어쩐지 머쓱해지는 하찮은 욕망을 한 번 시험 삼아 도전해 보는 시간을 한 번 가져보시면 좋겠습니다. 

IP *.143.23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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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26 12:46:49 *.181.106.109

전혀 하찮지 않음.^^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오!

프로필 이미지
2022.08.26 13:29:40 *.138.247.98

웹소설이던던, 소설이던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만이 쓴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열렬히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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