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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6일 16시 18분 등록

종종의 종종덕질

가을 단상 - 일과 나, 그리고 우리


태풍은 비를, 비는 가을을, 가을은 추석을 몰고 오네요.

올해는 추석이 예년보다 좀 이르게 찾아온다 싶더니, 여름 끝, 가을 시작을 알리는 태풍과 함께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한 주를 보내게 생겼습니다. 지금도 바깥은 비가 주룩주룩, 얼마전 있었던 기록적인 홍수의 기억이 아직 생생한 터라 부산, 제주에 사는 지인들과 카톡으로 비 조심, 태풍 무사 통과를 기원하며 안부를 챙기느라 분주했습니다. 뉴스도 태풍 소식으로 도배를 하는 판국이니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 추석 시즌이지만, 어찌됐든 이번 주 마음편지는 ‘추석 – 가을하다’라는 주제를 일찌감치 정해 놓고 필진들이 돌아가며 편지를 쓰기로 한 터. 저도 수확과 결실의 계절, 가을과 추석에 대해 한 자락 썰을 풀어야할 참입니다.

누런 벼가 고개를 숙이고 알밤이 토실해지는 계절, 가을은 누가 뭐래도 수확과 결실의 계절입니다. 굳이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한 해 동안 끝내야 하는 일이 있다면 어느 정도 성과가 드러나거나 예상되는 시점이지요. 제게 이번 가을은 2n년차 열혈직장인의 세월이 무엇을 남겼는지, 어떤 의미로 남게 될 지를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지난 주말, 오랜 직장 동료이자 친구의 첫 책을 소개하는 북토크 행사에 다녀왔습니다. 그간 지인을 포함한 다양한 작가들의 북토크에 참여해 보았지만, 이번 행사는 무척 특별했어요. 이번 행사가 그리 특별했던 첫 번째 이유는요. 출판사가 기획한 홍보 행사가 아니라 작가의 지인들이 나서서 작가를 부추기고 행사를 직접 기획, 진행하는 재능기부와 자발적인 협업으로 이뤄졌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행사를 나서서 기획한 지인들의 정체는 무려 십여 년 전 한솥밥을 먹던 직장의 선후배와 동료로 구성된 3인방. 그 중 엉겁결에 행사의 사회를 맡은 게 저였구요.

사실 작가의 지인 몇 명을 모아 조촐한 축하 모임이라도 해보자고 시작한 작당이 참석자 50명이 넘는 공식 북토크 행사가 될 줄은, 더욱이 북토크의 주인공도 아닌 제가 이렇게 큰 위로와 보람을 느끼게 될 줄은 미처 몰랐죠. 이번 일의 발단은 책을 낸 친구가 옛 직장의 동료이자 편한 사이인 두 사람을 평일 저녁에 책 증정 겸 간만에 밥 한 끼 하자며 불러낸 데서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첫 책 출간을 핑계로 밥과 차와 수다를 나누다 보니 옛날 옛적 사내 행사의 담당자들로 온갖 해프닝을 함께 겪었던 세 사람의 주특기가 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추억이 방울 방울,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멋지게 행사를 치러낸 기억이 슬금슬금 되살아나더니 어어… 어느새 저도 모르게 친구의 북토크를 우리 손으로 만들어 주자며 척척 행사 장소며 날짜며 컨셉을 잡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뚝딱뚝딱 기획된 행사의 홍보와 진행은 후배가, 저는 사회를 맡기로 하고 주인공인 친구는 첫 북토크의 주인공이자 섭외 담당으로 역할을 나눈 후, 한 달 남짓한 준비 기간 동안 퇴근 후 화상회의와 번개를 알뜰히 활용하며 착착 일을 진행해 나갔습니다. 참 놀라운 것이, 과거 수년 동안 함께 근무하며 서로의 업무 스타일이나 역량을 잘 알고 있다고는 하지만 무려 10여 년 만에 협업인데도 호흡이 척척, 손발이 착착 맞는 거 있죠. 퇴근 후 그 잠깐의 시간을 쪼개가며 일하는데도 협업이 너무나 순조로웠답니다.

그리고 대망의 D-day. 친구는 이왕 사람들 앞에 설 거면 좀 꾸며보자며 아침 일찍 저를 미용실로 불러냈습니다. 친구와 제가 한 명씩 돌아가며 꽃단장을 하는 동안 그날 진행할 순서와 멘트를 틈틈이 함께 맞춰 보는데, 어찌나 죽이 잘 맞는지. 서로 주거니 받거니 너스레를 떠는 중에도 ‘아… 지금 이 순간이 일의 보상인가’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어요. 원래 저는 아무리 간단한 행사를 진행해도 행사 직전에는 긴장과 초조함에 신경이 곤두서서 날카로워지는 편인데, 그녀와 함께 하니 모든 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편하더라고요. 신뢰하는 동료이자 친구와 일한다는 게 이토록 즐거운 일이었다니, 까맣게 잊고 있던 감각이 되살아나는 듯 활력이 느껴지고 긴장은 즐거운 흥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날의 행사는 모든 게 완벽했습니다. 행사의 시작과 끝은 지키되 ‘관객들이 함께 참여해서 만들어가는 사랑방수다’를 지향하는 기획의도가 잘 맞아떨어져서, ‘배가 산으로 가도 즐거운’ 북토크로 마무리가 되었지요. ENFP와 INTJ의 환장 케미 진행과 관객 참여 전략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두 시간이 삼십분처럼 지나갔다는 참석자들의 칭찬과 격려에 어깨가 으쓱하기도 했고요. 그렇게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열심히 찍어둔 행사 사진을 주고받던 중, 저는 한 장의 사진에서 그만… 울컥하고 말았습니다.    

사진 속엔,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여 울고 웃고 싸우던 30대의 초보 팀장으로 만나 십수년의 세월이 지나 각자의 자리에서 전문가로서 서로를 도울 수 있게 된, 그렇게 버팀목이 된 두 친구가 행복하게 웃고 있더라고요.

‘우리, 이렇게 성장했군요.’
그 어떤 비싼 교육이나 훌륭한 책에서도 발견하지 못한 깨달음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도무지 알 수 없었던, 애증이자 좌절이었고, 무거운 책임이자 자부심이었으며 때로는 나 자신을 파괴할까봐 두려울 만큼 버거웠던 ‘일의 의미’라는 것을 저는 이 사진 한 장에서 발견한 것 같습니다. 일로 맺어진 인연이 이해관계를 넘어선 선의와 신뢰로, 고립된 개인에서 확장된 세계로 나아가는 순간을 그대로 포착한, 제 인생의 명장면으로 저는 이 시간을 영원히 기억하게 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 가을, 수확의 계절이자 결실을 함께 나누는 추석을 앞두고 발견한 일의 의미 덕분에 홀로 감동 모드에 빠져 써내려간 화요편지는 여기까지입니다. 어쩌면 제 직장 경력의 가을쯤에 해당할 이 시절에, 이토록 멋진 작당으로 일의 의미를 일깨워준 두 사람의 친구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합니다. 그리고 북토크의 오프닝을 장식했던 곡, 이상은의 ‘비밀의 정원’을 들려드리며 편지를 마치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rDL_A9hw3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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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14 23:59:08 *.166.200.71

멋진 분들이네요 !   존경합니다. 잘 살아온 시간들 그리고 멋진 회고의 기회 !  

 보여주는 아름다운 것들로 인하여 보는 이들 마저 기쁨을 일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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