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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6일 17시 50분 등록

삶이 무엇인지는 삶의 뒤편에서 봐야만 알 수 있다. 하지만 삶은 반드시 앞을 향해 살아나가야 한다 - 키에르케고르

어김없이 가을은 오고 삶은 마흔 중반을 넘어섰다. 몇 해 전 '불혹'이라는 제목으로 변경연 연구원칼럼(http://www.bhgoo.com/2011/index.php?mid=r_column&page=9&document_srl=849099)에 글을 올리면서 마흔이 되는 심경을 쓴게 엊그제같은데 시간 참 빠르다. 왜 가을만 되면 중년은 싱숭생숭해지는가. 눈 앞에 보이던 곧게 뻗어있던 그 길이 결국은 신기루였음을 깨닫게 된 마흔의 삶이 어지럽기만 하다. 걸어온 시간만큼 눈앞의 길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발을 어디로 뻗어야 할지 난처하다. 소설가 김훈이 그랬던가. 내일이 새로울 수 없으리라는 확실한 예감에 사로잡히는 중년의 가을은 난감하다고. 사실 그런 난감함 정도면 평범하고 준수한 거다. 새로울 것 없지만 지금의 생활이라도 어떻게든 이어나갈수 있으면 다행이 아닌가. 심심하고 을씨년한 투정이 무색하게 허망하고 위태한 중년의 가을이 허다하다. 삶이 위태로울수밖에 없는 이유중 하나는 현재를 짓누르고 있는 과거의 무게다. 지나온 길에 짊어지고 온 얼마 안되는 짐보따리에도 이제 발목이 시큰거린다. 지나온 길은  실상 지금의 나 자신에 다름 아니다. 

자라면서 한꺼풀 두꺼풀 사회와 세계의 옷을 입는다. 남들과 다른 옷을 입고자 하는 욕망에 잠시 일탈해보기도 하지만, 대부분 결국 비슷비슷한 옷을 입고 똑같은 중년이 된다. 그렇게 한겹 두겹 쌓여진 외피는 나라는 존재를 형성하게 된다. 때론 그 외피를 이질적인 존재로 느끼기도 하지만, 그것을 벗어버릴 용기는 사라진지 오래다. 그동안 쌓아온 외피의 두께만큼이나 우리는 스스로와 격리되어 있다. 이런 내면의 동떨어짐은 결국 자존감을 하락시킨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자기 스스로를 그림으로 나타낼때 청년들은 자기를 점점 더 크게 그린다. 하지만 중년이 넘으면 자신을 점점 더 작게 그린다. 이는 상향곡선을 그렸던 젊은 날의 자신감과 자존감이 중년이 되면서 큰 폭으로 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성적기능을 포함한 육체적 기능의 쇠퇴, 알수 없는 미래, 사회적 지위의 한계, 가족부양의 의무, 일상에 대한 만족감의 급락 등이 원인일 것이다. 자존의 삶에서 굴욕의 삶으로 전환은 가속화된다. 땅콩 한 웅큼 쥔 손을 호리병에서 빼내지 못하는 원숭이처럼 삶은 욕망과 현실의 경계에 위태롭게 걸쳐져 있다. 그렇게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있다. 헨리데이비드 소로의 말처럼 마흔은 조용한 절망감 속에서 죽어 가고 있는 시기인지도 모른다.

영국 워릭대의 앤드류 오스왈드 경제학과 교수팀은 미국,영국,한국 등 전 세계 80개국의 일반인 200만명을 대상으로 설문 및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40대가 전 연령층을 통틀어 심리적 만족도가 가장 낮았다. 가장 불행한 세대란 말이다. 연령대별 비교연구를 보면 행복지수는 20대에 절정을 이루었다가 40대에 최저로 내려앉았다가 다시 70대에 정점을 찍었다. 70대에 행복지수가 높아지는 이유는 과장을 좀 하자면 단지 살아있기 때문에 그렇다는게 중론이다. 친구나 동료가 병과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것을 목격하는 것이 늘어날수록 살아있음에 대한 상대적 행복도는 증가한다. 중년을 버티고 어떻게든 살아있기만 하면 행복해진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다고 중년을 단지 버텨내야 하는 암흑의 터널로만 치부하고 웅크리고 있을 수 만은 없지 않은가.

누가 마흔을 불혹이라고 했던가. 미혹됨이 없는것이 아니라, 더이상 미혹될수 없을 정도로 마모된 시기인 것을. 중년에게 가장 큰 미혹은 삶 그 자체다. 제대로 살아왔는가, 지금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하는 물음에 긍정할 수 있는 마흔은 얼마나 될 것인가.  카를 융은 사람이 쓰고 있는 사회적 가면, 즉 페르조나는 중년이 되면 붕괴한다고 말했다. 자의든 타의든간에 외피가 손쓸 틈 없이 갈라지는 것이다. 페르조나의 붕괴가 열어놓은 길은 오직 내면으로 향하는 길뿐이다. 페르조나가 붕괴한 상태에서 내면을 도외시하고 외면으로 도망치는 것은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융은 중년을 인생의 오후라고 했고, 이때야말로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자기 모습을 내다볼 수 있는 시기라고 했다. 인생의 아침 프로그램에 따라 오후를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아침에는 위대했던 것들이 오후에는 보잘 것 없어지고, 아침에는 진리였던 것들이 오후에는 거짓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융은 말했다.  심리학자 대니얼 레빈스 또한 중년을 자신의 개성과 인간다움을 향유할 수 있는 시기이며 '자신의 날개로 날 준비가 된 성인기'라고 지칭했다. 

마흔이 불행한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 시기를 살아낼 수 있는 지혜를 가지지 못해서이다. 우리는 너무 일찍 늙고 또한 너무 늦게 철이 든다. 이것이 바로 삶의 비극이라고 벤저민 프랭클린은 말한 바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쳐서 뭐하겠는가? 위태로운 마흔을 버텨낸 다음 철이 들고 지혜를 얻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지혜를 가지고 이 시기를 살아가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시도는 해봐야지 않겠는가?

가장 먼저 태도를 바꾸어야 할 부분은 삶은 일직선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다.

인생에 직선은 존재할 수 없음에도 우리가 바라는 성공의 모습은 직선을 닮아있다. 우리가 동경하는 타인의 삶은 보통 이렇다. 좋은 직장이나 사업에서 풍족한 돈을 벌고,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은 모두 말썽 없이 좋은 대학으로 진학하고,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히 살다가 평화롭게 죽는 삶이다. 아무런 문제도 아무런 고난도 없는 삶이다. 이런 한치의 오차없는 직선같은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동경하는 삶이란 군데군데 뭉텅뭉텅 잘린 점선일 뿐이다. 아니, 우리가 보는 성공의 모습은 그냥 하나 하나의 점일 뿐이다. 인생이라고 말할 수 없다.  모든 인생의 점과 점 사이에는 우여곡절의 곡선이 존재한다. 그것이 진짜 삶의 모습에 가깝다. 마흔은 가파르고 때론 더딘 곡선이다. 위기의 중년이 해야 할 일은 이 곡선을 억지로 펴서 직선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또한 지나온 구부정한 길을 자책하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떻게든 곡선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점을 계속 찍어야 한다. 어차피 삶이 도달하는 지점은 죽음 하나뿐이다. 앞으로 찍어야 할 방점들이 외면이 아닌 내면을 향해야 한다는 것이 또한 마흔을 살아가는 지혜일 것이다.

모로코 속담에 따르면 남자는 태어날때 100개의 악마를 자니고 태어나고 여자는 100개의 천사를 지니고 태어난다고 한다. 해가 지날때마다 악마는 천사로 바뀌고, 천사는 악마로 바뀐다. 분석심리학에서 나이가 들수록 남성에게는 여성성(아니마)가 늘어나고, 여성에게는 남성성(아니무스)이 늘어난다고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중년의 남성은 감정이 격해지는 경향이 있고, 중년의 여성은 좀더 논리적으로 바뀌는데, 이는 남성의 아니마는 '기분'으로 표현되고, 여성의 아니무스는 '생각' 또는 '의견'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마흔은 내면의 특성이 크로스오버되어 다른 인격으로 변모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따라서 고전적인 남녀의 역할이라든지 사회적인 지위와 역할에 집착하기보다는 내면의 인격을 보살펴야 한다. 

이상의 추상적인 관념들을 일상에 접목하는 방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것이다. 삶을 긍정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더욱 사랑해야 한다. 과장님, 부장님, 어느 누구의 배우자, 부모, 자식이 아닌 고유한 인격체로서 스스로를 더욱 아끼고 보살펴야 한다. 나 자신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해줄 사람은 나 자신뿐이다. 나를 옭아매고 있는 책임감으로부터 벗어나보자. 다른 이들이 규정한 모습에 갇혀 사는 것은 이제 충분하다. 이기적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내가 먼저 행복해야 함께 행복할 수 있다. 마흔,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다.


P.S. 2020년 10월에 변경연 연구원 칼럼에 기고했던 글을 개정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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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8 20:37:58 *.166.200.71

어느 순간 나는 숙명처럼 내게 다가온 이 삶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세상에 길에 들어서면서 부터 매트르담( Matre D'ame : 펜싱 마스터)’ 이었고 지금도 매트르담( Matre D'ame : 펜싱 마스터)’으로 살고 있고 앞으로도 매트르담( Matre D'ame : 펜싱 마스터)’ 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저는 세상의 모든 것을 알 수 없지만 그래서 옳고 그름과 행복과 불행을 명확하게 가름할 수는 없지만 이 작은 하나의 세계를 통해 제 존재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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