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종종
  • 조회 수 559
  • 댓글 수 1
  • 추천 수 0
2022년 9월 13일 12시 37분 등록
종종의 종종덕질
화요편지 - 이토록 은밀하고 스펙터클한 음식의 역사, 미식가의 어원 사전 
2022.09.13

무척 오랜만입니다. 책 한 권을 즐겁게 읽고 있어요. 
<미식가의 어원 사전>이라는 책입니다. 한 달전쯤 지인이 운영하는 성수동 책방에서 발견하고 이거 맛나겠… 아니, 재미나겠다 싶어 바로 입수한 책인데, 다른 할 일들과 게으름에 밀려 제 침대 머리맡에서 한 달 내내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다가 연휴를 맞아 첫 장을 넘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내내 정주행! 5백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건만 술술 넘어가는 게, 저자의 능청맞은 화술 뒤에 숨은 놀랍고 엉뚱한 음식의 역사 덕분에 읽는 재미가 아주 쏠쏠해요.

이 책은 제목대로 갑니다. 진짜로 어디서 유래한 지 모를 다양한 음식의 이름을 설명한 사전이라 할 수 있어요. ‘얼그레이는 회색도 아닌데 왜 그레이라는 거지? 블러디 메리는 피 흘리는 메리라는 건가? 시저 샐러드는 로마의 카이사르랑 상관이 있나?’ 요런 궁금증을 따라가다보면, 전쟁과 정치, 지리, 경제와 예술을 넘나드는 음식의 역사를 만나게 되지요. 책을 여는 저자의 첫 문장도 이렇게 시작해요. ‘음식은 버젓한 역사라는 점에서 성, 전쟁, 왕, 여왕, 문학, 흑사병에 뒤지지 않는다’고요. 

책을 읽다 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일찌기 악마의 열매라 불리며 배척당했고, 뛰어난 영양공급원으로 서민의 주식이자 구황작물로 활약하는 한편, 한 나라의 인구 절반을 앗아갈 만큼 비극의 씨앗이었으며, 사치의 대명사 마리 앙뜨와네뜨의 패션소품으로 활용된 기구한 운명의 야채가 뭔지 아시나요? 이 어마어마한 역사를 지닌 녀석은 바로, 못난이 감자예요. 

이렇게 작가의 찰진 유머와 야심찬 목차를 따라 감자 한 알, 샐러드 한 접시에 담긴 이야기들을 차례로 만나다 보면, 음식의 역사가 학교에서 배운 전쟁사, 정쟁사로 가득찬 역사보다 백만배는 재미있고 의미있구나’라는 깨달음에 도달합니다. 그래서 감히! 저는 주장합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목에 한국사, 세계사의 한 과정이든 뭐가 됐든 필히 음식의 역사를 배울 기회를 만들어 주자구요. 

저자는 500페이지에 이른 이 책의 구성을 아침식사, 도시락, 티타임, 수프와 첫 코스 등등 식사의 전 과정을 망라하는 목차로 정리했는데, 저는 특히 수프, 국물의 세계를 설명한 7장의 서문을 여는 인용문에 꽂혀서 이 책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졌어요.  

음식의 세계에서 수프보다 더 다정하고 융통성 있는 친구가 있을까. 당신이 아플 때 달래주는 것은 누구인가? 가난할 때 떠나기를 거부하며 부족한 재료를 늘려서 따뜻한 음식과 격려를 안겨주는 것은 누구인가?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주는 것은 누구인가? 그러면서도 가장 부유한 식탁의 명예가 되고 가장 까다로운 손님에게 깊은 인상을 줄 수도 있는 것은 누구인가? 수프는 충실하게 최선을 다한다. 주어진 형편이 아무리 품위 없어도 말이다. 
- 주디스 마틴, <미스 매너스>

수프라는 게, 국물의 태생이란 게 그렇죠. 야채든 고기든 모자라는 건더기를 어떻게든 함께 나누고 한 입이라도 더 거둘 마음으로 만들던 음식이 수프고 국밥이잖아요. 여름에는 차가운 냉국 한 그릇으로 입맛을 돋우고, 찬 바람 불면 몸을 훈훈하게 덥혀주는 탕국 한 그릇으로 기운을 차리죠. 하여간 연대의 힘, 함께 어울려 살아가기의 가치를 보여주기에 이만한 소재가 또 없지 않나라고 막연히 생각하던 저는, 저자가 ‘서약의 스프’라고 불린다는 페르시아의 특별한 양파 수프를 소개하는 대목에서 크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어요.    

싸고 맛있고 키우기 쉬운 양파는 세계 곳곳 많은 수프의 기본이 된다. 양파는 페르시아의 어쉬-에-나즈리 혹은 서약의 수프pledge soup의 기본 재료이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이 수프는, 예를 들어 아픈 아이나 긴 여행을 떠나야 하는 자녀 등 도움이 필요한 가족이 있을 때 만드는 음식이다. 이 수프에는 아이의 회복이나 여행자의 안전한 귀환을 바라는 기도가 곁들여진다. 그 밖에 들어가는 다양한 재료는 친척이나 친구, 이웃이 동일한 양으로 기부한다. 부유한 사람은 잘난척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고, 가난한 사람은 열등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이다. 모두가 수프를 만드는 데 기여하며, 모두 먹고도 남을 정도로 만들어서 가난한 사람과 집 없는 사람에게도 나눠줄 수 있게 주의한다. 그들의 기도가 응답받아서 아이가 회복되거나 여행자가 안전하게 돌아올 경우, 해마다 같은 날 신에게 감사를 표하는 의례로 이 수프를 만든다.  
- 앨버트 잭, <미식가의 어원사전>

세상에, 이런 수프를 먹고 떠나는 여행길은 얼마나 든든할까요? 아픈 아이를, 멀리 떠나야 하는 가족을 생각하며 만드는 수프 한 그릇. 음식의 역사를 만난다는 것은 이렇게 곳곳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한 사람들의 지혜와 노력, 피와 눈물을 만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미식가의 어원사전은, 서양음식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궁금했을 다양한 음식의 기원을 만날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예요. 하지만 이 책이 아니더라도 정말 훌륭한 음식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책들이 많지요. 하하, 저는 음식문화사 덕후이기도 해서요. 그 어떤 거대한 담론과 거창한 철학이 담긴 책들보다 더 소중한 깨달음을 선사하는 우리들의 삼시 세끼, 음식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한 번쯤 만나 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 편지는 저의 최애 음식책 리스트를 소개해드리며 마무리하겠습니다. Bon appetit! 

<빵의 역사> 하인리히 에두아르트 야콥
<커피의 역사> 하인라히 에두아르트 야콥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한창훈
<백석의 맛> 소래섭
<대구> 마크 쿨란스키
<먹거리의 역사> 마귈론 투생 사마

IP *.166.254.112

프로필 이미지
2022.09.15 00:46:28 *.166.200.71

하나 속의 우주라는 말이 생각나는군요 ! 

부처께 물었습니다. 

"우주란 무엇입니까?" 

부체께서 답하시기를

"우주 란 바닷가의 수많은 모래알과 같다. 그리고 그 모래 한 알 한 알속에는 온 우주가 있다." 


저도 그렇게,  세상 모두 것을 알 수 없어서 하나를 충실하게 함으로써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216 [목요편지]아침 운동 [1] 어니언 2023.03.09 1123
4215 [수요편지] 그와 우리의 유일한 차이 불씨 2023.03.07 632
4214 [라이프충전소] 당신이 정말 친구로 만들어야 할 사람 [1] 김글리 2023.03.03 935
4213 다시 회사로 [2] 어니언 2023.03.02 806
4212 [라이프충전소] 외국어를 1년간 매일 하면 얼마나 늘까? 김글리 2023.02.24 941
4211 드디어 호그와트에 입학하라는 부엉이를 받았습니다. [1] 어니언 2023.02.23 559
4210 [수요편지] 심리적 안정감 [1] 불씨 2023.02.21 706
4209 [수요편지] 바위를 미는 남자 [1] 불씨 2023.02.15 542
4208 [월요편지 137] 마음이 힘들 때 보세요 [1] 습관의 완성 2023.02.12 1550
4207 [라이프충전소] 론리여행자클럽 [1] 김글리 2023.02.10 786
4206 두 가지 멋진 일 [3] 어니언 2023.02.09 1078
4205 [수요편지] Stay tuned to your heart ! [1] 불씨 2023.02.08 633
4204 [수요편지] 너를 위하여 [1] 불씨 2023.01.31 657
4203 [월요편지 136] 50 이후엔 꼭 버려야 할 3가지 습관의 완성 2023.01.29 1238
4202 [라이프충전소] 실패는 실패로만 끝나지 않는다 김글리 2023.01.27 722
4201 [라이프충전소] 실패를 바로잡는 기술 [4] 김글리 2023.01.20 905
4200 실수를 통한 성장 [1] 어니언 2023.01.19 506
4199 [수요편지] 괜찮아, 친구잖아 [1] 불씨 2023.01.18 614
4198 [월요편지 135] 은퇴 후 절대 되지 말아야 할 백수 유형 3가지와 남들이 부러워하는 백수가 되는 방법 습관의 완성 2023.01.15 979
4197 [라이프충전소] 오롯이 좌절할 필요 김글리 2023.01.14 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