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어니언
  • 조회 수 597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23년 8월 24일 10시 57분 등록

두근 두근 ..

월요일 아침 10시, 오전 업무를 일단락 지은 뒤, 짬을 내어 한 홈페이지에 접속했습니다. 긴장되는 마음에 비밀번호가 가물가물해서 몇 번이나 다시 시도했습니다. 로그인을 하고 나서도 다음 화면이 바로 보이지 않습니다. 저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같은 홈페이지에 접속 중인 모양입니다. 이 홈페이지는 바로 지난 7월 초에 본 일본어 능력 시험 사이트로, 그날이 결과 발표날이었기 때문입니다.


답안지 귀퉁이에 적어 집에 가져온 제 답안을 가채점했을 때는 합격 안정권이었지만 가채점은 가채점일 뿐 결과는 제대로 확인을 해야 하지요. 그래도 기대하는 바가 있으니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힘들었습니다. 결과 발표 페이지에 들어가는 순간! 제 이름 밑에 쓰여있는 선명한 영어 여섯 글자 Passed. 합격이었습니다!


솔직히 이번에 공부를 충분히 못했습니다. 시험 열흘 전까지 몸 컨디션도 나쁘고 공부하기 너무 싫어서 단어장만 꼴랑 세 장 들춰 봤었습니다. 거기다 작년 12월에 N3급을 상당히 쉽게 따서 좀 방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마 제 성격상 이번에 시험을 합격하지 못하면 한동안 일본어는 쳐다보기도 싫어질게 뻔해서 남은 시간이라도 최선을 다하자고 공부했던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JLPT는 기본적으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일본어 시험’이기 때문에 합격 커트라인이 적당히 낮습니다. 전체 180점 만점에 반타작만 하면 되고, 180점을 이루는 세 개의 과목을 각각 60점 만점에 19점 이상만 맞으면 됩니다. 그러니까 합격 여부만 놓고 보면 제법 쉬운 시험입니다. 이런 부분을 노려서 꽤 효율적으로 공부했다고 생각합니다.


단어 외우는 것은 한자랑 발음을 제 마음대로 배경을 만들어 외웠습니다. 예를 들어 '쓰다듬다'라는 뜻을 가진 撫でる(なでる)라는 단어가 있는데 한국어로 '나대다'랑 발음이 같아서 ‘나대루지 말아라=쓰다듬지 말아라’라고 외우고, 한자도 손 수 변에 없을 무자 조합이라 ‘손이 안 보여도 쓰다듬는 손길은 느낄 수 있다’는 식으로 저만의 한자 암기를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다른 사람한테 설명할 때는 좀 웃기긴 하지만 기억하려면 이거만 한 게 없었습니다.


긴 지문을 읽고 답을 찾아야 하는 독해 문제는 오래전 토익 시험을 풀듯이 접속사랑 구조가 비슷한 문법들을 뽑아 한꺼번에 카테고리처럼 외웠습니다. 그리고 지문 읽기 시작하기 전에 질문, 주제, 글의 구조부터 파악하고 들어가서 어디쯤 답이 있겠다는 범위를 좁혀서 읽는 방식으로 진짜 시험 대비용으로 연습했습니다. 그래도 재미있는 상식 같은 것이 많이 나와서 단순히 단어를 암기하는 것보다는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1964년 도쿄 올림픽이 영어 사용권이 아닌 국가에서 열린 첫 올림픽이어서 화장실 마크를 맨 처음 사용했다든가 하는 알면 쓸데없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듣기 과목은 평소에 애니메이션이나 일본 맛집, 뉴스 유튜브 같은 것을 못 알아 들어도 열심히 봤던게 도움이 됐는지 나름 준수한 성적을 받았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배운 이후로는 대학 전공도, 취업 진로도 일본과는 상관없는 방향으로 지낸지 거의 15년 가량됩니다. 다만, 재작년 이직한 회사에서 일본 고객사 미팅을 몇 번 참석했다가 제 안에 일본어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자격증에 도전했습니다. 그리고 일 년만에 스스로도 성공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2급 자격증을 따서 자신에게 많이 놀라고 있습니다.


물론 JLPT가 진지한 진로를 결정할 때는 그다지 영향력이 없는 자격증이고, 제 처지도 직장인 13년 차로 이제 와서 일본어 능력이 진급이나 업무에 도움이 되는 건 전혀 없지만 제 나름대로 스스로에 대한 평가를 달리하게 되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피터 드러커가 생전에 몇 년에 하나씩 외국어를 깊게 공부했다는 글을 읽었던 적이 있는데 평생 개인의 프로페셔널함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람임을 되짚어보면 아마 외국어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받는 여러 자극뿐 아니라 자신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는 것을 느꼈던 바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 기회를 바탕으로 그동안 뒷전이었던 외국어 공부를 꾸준히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혹시 인생이 무료하다면 외국어를 하나 공부해 보시면 어떨까요?

IP *.143.230.48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216 이야기를 찾는 여행 어니언 2022.06.09 557
4215 하찮지만 하고 싶으니까 [2] 어니언 2022.08.25 557
4214 [수요편지] 채움 [3] 불씨 2023.07.18 561
4213 최선의 어른 [2] 어니언 2023.01.05 562
4212 화요편지 - 오늘도 덕질로 대동단결! [4] 종종 2022.06.07 563
4211 [수요편지] 가을, 그리고 마흔, 나를 사랑할 적기 [1] 불씨 2022.09.06 564
4210 [수요편지] 오!늘! [3] 불씨 2022.09.21 564
4209 사월이 온다, 올해도 어김없이 어니언 2023.03.30 564
4208 [수요편지] 노리스크 노리턴 [1] 불씨 2023.09.27 566
4207 신발 한짝 [1] 불씨 2022.05.25 567
4206 휴가를 맞이하여 [2] 어니언 2022.07.28 567
4205 화요편지 - 이토록 은밀하고 스펙타클한 [1] 종종 2022.09.13 568
4204 드디어 호그와트에 입학하라는 부엉이를 받았습니다. [1] 어니언 2023.02.23 568
4203 [수요편지] 진짜와 가짜 불씨 2023.01.10 569
4202 [라이프충전소] 함께 사는 사람들 [1] 김글리 2022.05.06 572
4201 [변화경영연구소]#따로또같이 월요편지 114_이번 역은 쉼표 역입니다 [1] 습관의 완성 2022.07.03 572
4200 [수요편지] 당신이 지금 보는 색깔은 어떤 색인가요? [1] 불씨 2022.07.12 572
4199 [라이프충전소] 실패는 없었다 [3] 김글리 2022.11.25 573
4198 결심의 과정 [2] 어니언 2023.10.12 573
4197 [수요편지] 깨달음은 궁극인가 과정인가 [1] 불씨 2022.12.21 5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