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아난다
  • 조회 수 1535
  • 댓글 수 2
  • 추천 수 0
2021년 3월 2일 09시 44분 등록

뒷골이 묵직하다. 가슴이 답답하다. 눈이 뻑뻑하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내 안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방해를 받고 있다는 신호다. 이런 경우 대개는 하던 일을 멈추고 눈을 감고 편안한 자세로 잠시 호흡을 고르는 것만으로도 흐름이 한결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낀다. 한 곳으로 과도하게 쏠려있던 에너지가 몸 전체로 고르게 퍼져나가면서 눈꼬리에서 맑은 눈물이 흘러내리면 급한 불은 끈 셈이 된다. 온 몸으로 나른한 평화가 퍼져나간다.

 

그런데 가끔은 이런 응급처방이 먹히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응급처방을 넘어 경험으로 체득한 모든 처방을 다 동원해도 소용이 없는 경우 말이다. 그야말로 대책이 없다. 대개 그 대책없음에 대한 무력감까지 더해지면서 몸과 마음의 상태는 급속하게 악화된다. 어떻게든 빠져나와 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도 너무나 피곤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날이 거듭되다 보면,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내 몸의 주인이 된다. 그때부터는 본능처럼 남아있는 그래도 살고 싶은 마음과 죽고 싶은 마음이 서로 몸을 차지하고자 치르는 사투에 이미 살아도 살아있는 것이 아닌 상태가 된다.

 

이것은 내 삶의 시간을 운용하는 대표적인 패턴중의 하나다. 이 파괴적인 패턴을 자각하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5년 전, 그러니까 퇴직하고 집으로 돌아와 있을 즈음이었다.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져 그야말로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남지 않았을 때 홀연히 어떤 감각 하나가 나를 찾아왔다. ‘남은 생은 이 패턴을 끊어내는데 다 바치게 되겠구나하는 자각이었다.

 

이 자각에 이르고 나자 그때까지 나를 움직이는 동력이었던 이란 것이 그야말로 허망하게 느껴졌다. 여기까지 이르자 그 시간까지 나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성분이라고 여겼던 위대하고 훌륭해져서 온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꿈을 비워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을 버리면 죽을 줄만 알았던, 그래서 그렇게나 힘들어하면서도 집요하게 붙들고 있었던 이 빠져나간 삶은 한결 가벼워졌고, 그 빈자리를  당시만 해도 하나도 안 위대하고 별로 안 훌륭해 보이던, 지금 여기의 나를 돌보는 요가와 살림으로 채워나갔다.

 

덕분에 아직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진짜로 나를 살리는 힘은 꿈이 아니라 요가와 살림인건가? 조심스럽게 가정하면서. 그렇게 삶은 조금씩 모양새를 갖춰가는 듯했다. 드디어 나를 괴롭히던 그 지긋지긋한 패턴에서 영원히 벗어났나 보다 싶었다. 하지만 바로 그런 확신을 갖기 시작할 무렵인 작년 여름, 삶으로부터 또 한 번 보란 듯이 내동댕이쳐지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내게 가장 소중한 꿈마저 포기하고 있는 힘껏 한참을 달려와 그 무시무시한 패턴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차리고 보니 바로 그 패턴의 한 복판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의 절망감이란. 이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나는 어쩌란 말인가요? 누구라도 붙들고 따져 묻고 싶었다. 도대체 내게 왜 이러는 거냐고? 그러나 대답이 있을 리 없었고, 운명과 세상을 원망하는데 그나마 남아있는 힘까지 다 쓰고 나자 전혀 다른 움직임이 시작되는 것이 느껴졌다. 더 작고, 더 눈에 띄지 않는 방법으로. 그리고 볼 수 있게 되었다. 풀었다고 믿었던 그 패턴의 구조와 원리를. 그리고 내 인식의 치명적인 오류를.

 

나는 여전히 언제 어디서나 쓸 수 있는 만능열쇠를 찾고 있었다. 한번 만들어두면 그 다음부터는 아무 신경도 쓰지 않고 편하게 쓸 수 있는 만능열쇠. 그것이 한동안은 다른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믿는 어떤 것(, 명예 등)이었다가, 나만의 고유한 길이라고 믿는 어떤 것(, 소명 등)이었다가, 지금 여기서 내 몸과 일상을 살리는 그 어떤 것(요가, 살림 등)으로 변했지만 본질은 같았다. 나는 만고불변의 정답을 찾고 싶었던 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는 고단하면서도 흥미롭다가 정답을 찾았다고 믿는 순간 어김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기를 반복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모색을 중단하는 순간 흐름이 꼬인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한 곳으로 에너지가 쏠린다는 것은 그 것만이 정답이라는 단정에서, 다른 감각에 골고루 써야할 에너지를 거둬들인데서 오는 불균형이었음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던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는 쓸 수 있는 모든 감각을 열어두게 마련이기 때문에 고단하지만 나름의 균형을 찾을 수 있었던 거다.

 

물론 시행착오가 거듭될수록 타인의 욕망에서, 나의 욕망으로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내 몸의 정직한 욕구로 모색하는 자극이 점점 구체화되어가는 변화가 있었고, 그 변화가 몸으로 체감하는 삶의 질을 점점 나아지게 하고 있었다는 것 역시 분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닌 지금 이 순간의 진실에 대한 지속적인 모색, 깨어있음이야말로 파괴적인 패턴을 풀 수 있는 유일한 열쇠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그 고단한 수련은 언제까지 계속되는 거냐고? 끝도 없이 이런 고단함이 지속되는 거라면 도대체 무엇을 바라고 그리 열심히 수련하는 거냐고? 현재 상황 나의 대답은 이렇다. 수련 자체가 목적이며, 수련의 현장 자체가 내가 바라는 유일한 것이라고. 생명이 남아 있는 한 삶은 어떤 방식으로든 내게 끊임없이 현장을 제공할 것이므로 나는 이미 바라는 모든 것을 다 이룬 셈이다. 이토록 넘치는 축복으로 나를 응원하는 삶을 찬미하지 않을 수 없다. 문득 어쩌면 바로 이 느낌이  아모르파티, 내 운명(내 패턴)을 사랑하는 감각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웃는다. 숨을 따라 온 몸으로 부드럽고 따뜩한 빛알갱이가 퍼져나간다. 



IP *.140.208.92

프로필 이미지
2021.03.05 06:57:35 *.169.176.67

"비장한 각오라고요 ?"  ... "비장한 각오로 밥먹고, 잠자고, 숨쉬고 있는 사람은 비장한 각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 " 

"우리 기도 한 번 합시다. " ...  " 당신이 우리에게 권하는 기도는 이런 절박한 순간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고요 ? 우리는 날마다 날마다 이 순간을 위해 온 몸과 마음으로 기도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2021.03.07 09:17:01 *.140.209.86

ㅎㅎ 드뎌 제게도 그 경지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모양입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195 [수요편지] 진짜와 가짜 불씨 2023.01.10 543
4194 [월요편지 134] 은퇴 후에도 손 벌리는 자녀 등쌀에 벌벌 떠는 부모가 늘고 있는 이유 습관의 완성 2023.01.08 828
4193 [라이프충전소] 실패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나요? [1] 김글리 2023.01.07 595
4192 최선의 어른 [2] 어니언 2023.01.05 540
4191 [수요편지] 새해 진심을 다하겠습니다! [1] 불씨 2023.01.03 560
4190 [월요편지 133] 40대 50대를 위한 가장 확실한 노후 준비 2가지 습관의 완성 2023.01.01 845
4189 [라이프충전소] 아직 끝나지 않았다 [2] 김글리 2022.12.30 565
4188 삶이라는 모험 [1] 어니언 2022.12.29 772
4187 [수요편지] 한해를 마무리하며 [1] 불씨 2022.12.28 607
4186 [월요편지 132] 은퇴자들이 퇴직 후 가장 많이 하는 후회 5가지 [1] 습관의 완성 2022.12.25 1298
4185 [라이프충전소] 체게바라의 위장사진 [1] 김글리 2022.12.23 657
4184 [수요편지] 깨달음은 궁극인가 과정인가 [1] 불씨 2022.12.21 551
4183 [월요편지 131] 노후자금 얼마나 필요할까? [1] 습관의 완성 2022.12.18 1081
4182 [라이프충전소] 비범한게 없다면 평범한 재능을 연결하기 [1] 김글리 2022.12.16 661
4181 모임을 즐기는 78억가지 방법 [1] 어니언 2022.12.15 574
4180 [수요편지] 허상과의 투쟁 [1] 불씨 2022.12.14 436
4179 [월요편지 130] 50대 이상 퇴직자들의 현실 [1] 습관의 완성 2022.12.11 1189
4178 [라이프충전소] 결국 누가 글을 잘 쓰게 되는가 [1] 김글리 2022.12.08 589
4177 좋아함의 증거 [1] 어니언 2022.12.08 503
4176 [라이프충전소] 부모님을 모시고 첫 해외여행을 다녀왔습니다 [5] 김글리 2022.12.03 6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