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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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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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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9일 09시 35분 등록

닫은 지 1분도 채 지나지 않은 휴대폰을 또 연다. 자동적으로 네이버까페 앱을 터치하마자 눈에 들어오는 내 소식 아이콘. 여전히 아무런 변화가 없음을 확인하고 30초 만에 또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회를 거듭할수록 입안은 빠닥빠닥 말라간다.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니지. 머리로 아무리 제동을 걸어 봐도 소용이 없다.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으니 나도 모르게 게시글을 다시 꼼꼼히 읽는다. 아무리 봐도 이 정도면 괜찮은데, 도대체 뭐가 문제지?

 

2월에 이어 3월에도 언니공동체의 달달마켓(재능마켓)에 상품등록을 했다. 3.27 예정된 요가원에서의 스튜디오 인요가 클래스와 집에서 하는 홈인요가를 팩키지로 묶어낸 기획이었다. 잔치처럼 첫 손님을 맞고 싶은 마음으로 정성을 다했고 하늘이 도왔던지 준비한 클래스 완판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선물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 상품 안내 게시물을 보고 해외와 지방에 계셔서 오프라인 수업을 듣기 어려운 분들이 밤시간 줌수업을 열어달라는 제안을 해 오신 것이었다.

 

그렇게 그들과의 줌인요가 파일럿 수업이 시작되었고, 그 결과 수업을 계속 진행해보자는 합의가 있었다.(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내 입장에서 이번 달달마켓 상품등록은 고객과 이미 약속이 된 상태에서 진행한 일종의 요식행위인 셈이었다. 초저녁 잠이 많은 내게 밤 수업이 다소 아니 솔직히 좀 많이 무리가 되는 것이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세상이 내게 베풀어준 깊은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길이라고 믿었던 것도 같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게시글을 올리고, 친절하게 그들이 모여있는 단톡에 공유까지 했는데도 반나절이 지나도록 반응이 없다. 아닐 줄 알았는데 어김없이 속은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사정이 있거나 마음에 안 들었으면 미리 말을 했어야지, 그렇잖아도 없는 시간 쪼개감서 게시글 등록하는 괜한 수고를 하게 한 것도 그렇지만, 백번 양보해 그럴만한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쳐도 저대로 썰렁하게 방치될 매대를 지켜볼 생각을 하니 온 몸의 피가 말라붙는 것 같았다


더 답답한 일은 이 상황에 하기로 약속한 일들이 줄줄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수선한 마음이 그대로 담긴 마음편지를 헐레벌떡 보내놓고, 단장은커녕 세수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오래 기다리던 중요한 약속장소로 향하는 내 심정은 그야말로 말이 아니었다일주일 전만해도 온 세상이 나를 위해 돌아가는 것처럼 한껏 들떠있던 나는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그제서야 심사숙고해 스스로 선택한 기쁨들 속에서 참담해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익숙한 모습이었다. 꿈에 그리던 산해진미가 가득 차려진 뷔페식당에 들어와 눈에 보이는 대로 닥치는 대로 음식을 집어 먹다 결국 탈이 난 채로 식당을 나와야 했던 어린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식당에 처음 들어와 처음 몇 가지 음식을 먹을 때의 감사와 감동은 사라지고, 어느새 본전생각에 눈이 멀어 맛은커녕 몸이 부대껴하는데도 꾸역꾸역 먹어대다 아픈 배를 부여잡고 끙끙거려야 했던 웃픈 기억이 디테일을 바꿔 정확히 재현되고 있음을 알아차린 거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린 시절, 그 후로도 몇 차례나 같은 실수가 반복되고서야 내 몸과 마음에 가장 친절한 뷔페식당 활용법을 익힐 수 있었다. 그렇게 뷔페식당은 같은 값에 가능한 많은 음식을 먹기 위한 곳에서 나에게 맞는 음식의 종류와 양을 실험하는 곳으로, 더 나아가 다양한 취향과 양을 가진 사람들과 모두 함께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으로 그 쓰임새가 달라져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물론 나는 이제 마지막 경우가 아니라면 뷔페식당엔 잘 가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것도 소화력의 한계를 넘기면 독이 된다는 것을 몸으로 완전히 이해했기 때문일거다.

 

이렇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무렵, 줌인요가를 요청했던 그룹의 단톡에서 하나둘씩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정말로 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시간 맞추기가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어렵게 시간내준 나에게 미안해서 차마 말을 못하다가 어렵게 용기를 냈다고 했다. 만약 뷔페식당의 기억을 떠올리기 전이었다면 나는 여기에 어떤 반응을 했을까? 하지만 이미 나는 누구보다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니 마음에 두지 말고 우리는 좀 더 편하고 자연스러운 기회에 다시 만나자고 했다. 진심이었다. 그리고 욕심만 앞서 벌려놓았으나 딱 그들과 같은 마음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난감해 하던 활동 몇 개를 정리했다.

 

그 때였다. 바빠서, 한동안 나도 잊고 지내던 유튜브 채널 요가 영상에 댓글 알림이 울렸다. 아무래도 넘 어설퍼 속상해하던 영상이었는데 바다 건너 페루에 계시는 구독자분이 매일 그 영상과 함께한 수련 덕에 꿀잠을 자고 계신다는 소식이었다. 한참 아무런 소식도 없던 줌인요가 상품안내글에 신청댓글이 달린 것은 바로 그 다음의 일이었다. 물론 상황을 설명하며 정중히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그 동영상을 링크해 보내드렸다. 여전히 서툴지만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언제 어디서나 편안 시간과 장소에서 인요가의 매력을 즐길 수 있는 영상만들기에 정성을 다해보겠다는 약속과 함께. 역시 진심이었다.

 

그렇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다이나믹한 시행착오를 통해 지금 여기 내게 허락된 현장의 소중함과 내 몸과 마음의 현위치를 다시 한 번 깨우치고 나니 이 자리가 이리 충만할 수가 없다. 온 몸을 던졌던 흔들림의 과실이 달디 달다

IP *.130.11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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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4 11:48:08 *.52.45.248

시작이 반이죠 ?  그만큼 힘겹다는 뜻이기도 하겠죠 ? 

건강하시고 힘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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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9 08:50:04 *.140.209.114

네~~ 힘내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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