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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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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3일 11시 37분 등록

위대한 근대인  

 

엘리베이터를 난생 처음 타는 사람을 보았다. 한 다리는 걸치고 나머지 다리는 망설인다. 두 다리가 모두 엘리베이터 안으로 어렵게 건너왔다. 좌불안석이다. 나는 엘리베이터 구석에서 그를 지켜 보며 설마 했던 것이다. 엘리베이터가 출발하자 흠칫 놀라며 천정과 바닥을 빠르게 번갈아 본다. 오금을 슬며시 굽혔고 핏발이 가시도록 손잡이를 움켜 잡는다. 내릴 땐 살짝 뛰며 건물에 안착한다. 그는 1층에서 탔고 5층에 내렸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라오스 남자에게 멸종된 인류의 마지막 남은 자를 겹친다. 근대인은 멸종했다 믿었지만 오늘 엘리베이터 사건은 마지막 남은 근대인인 그가 현대인에게 가한 회심의 기습이었다. 불현듯 그의 사유가 궁금해진다. 그는 어떤 생각으로 살고 있을까18층으로 가려면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는 생각이 당연한 인류와 생전 빌딩이라는 곳을 가본 적 없는 인류의 차이가 궁금하다. 그들의 사고체계는 무엇이 다르고 어떤 게 같을까. 읽기를 마친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을 다시 펴 든다.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생각한  자유인간을 찬찬히 다시 읽는다. 엘리베이터의 그는 사적영역먹고 사는 데 자신의 온 삶을 바치고 있을까먹고 사는 일은 그저 그렇게 해결하고 내면의 충일함과 깨달음을 갈구하며 살까.  공적영역의 사회인간으로 살고 있을까아니면 그 중간 어디일까. 그는 행복할까. 행복을 발명해 낸 현대의 인간 그 너머에 있을까. 그는 자유로울까. 적당히 술도 마시고 여자를 밝히고 욕지거리도 입에 올리고 적당히 다른 놈들과 박치기도 하며 살까나는  궁금했다.    

 

미루어 보건데 엘리베이터를 처음 타는 걸로 봐선 그의 삶은 우리 잣대로 불편했을(할) 테다. 이어서 다시 조심스레 짐작 건데 그의 삶이 불편 했을(할) 지라도 적어도 엘리베이터를 탈 일 없는 삶이었기로 불안하진 않았을 테다. 여기까지 이르러 그때의 지금이었던 옛날, 현대와 멀지 않은 근대를 생각한다. 국문학자 정민은 그의 저서 체수유병집에서 정색하고 현대인에게 묻는다. '동백기름 발라서 참빗으로  머리카락 낀 때를 뜯어내던 때다. 목욕이 연중행사고 불결한 화장실에서 휴지도 없이 매일 볼 일을 보고 살아야 한다. 그래도 그때는 지금처럼 불안하지는 않았다. 불편과 불안은 어느 쪽이 위험한가?'     

 

'자유롭게 죽고, 죽을 때 자유로울 것. 더 이상 긍정할 수 없을 때는 거룩하게 부정'하는 삶이 내 궁극의 북극성이다. 그 자유의 길, 내 삶의 북극성으로 가는 길은 '멸종의 인간'(근대인)에 가깝다. '종말의 인간'(현대인)으로는 다가갈 수 없다. 니체는 독창성 없는 교양만을 지닌 채 현실에 만족하는 자들을 종말의 인간이라 불렀다. 더 볼 것도 없는 지금의 우리다. 엘리베이터를 겁내지만 전개되는 삶을 겁내지 않는 사람, 더 이상 엘리베이터를 겁내지 않지만 늘 두려움과 불안을 어깨에 얹고 사는 사람2천년 전 세계 사람이 가진 지식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지금 불행한 개인과, 현대인에 비해 보 잘 것 없는 지식에도 광막한 우주와 자신이 내통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가. 먼 나라에서 조우했던 위대한 근대인, 그를 따라가 묻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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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4 08:18:39 *.36.157.231

장재용 변경연 선배님의 폭넓은 관점과 글쓰기에 감동합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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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5 20:33:41 *.62.216.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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