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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29일 08시 27분 등록

해마다 그 해가 저물어 가면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그 해의 10 대 뉴스들을 정리하여 보도해 주곤 합니다. 문득 나도 올해 나에게 생긴 10대 뉴스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건들이 줄줄이 꿰지다가 어느 순간에 멈추어 서게 되고, 다시 조금씩 흐르다 또 멈추어 서면서 지난 일 년이 흘러갑니다. 그러다가 한 장면에 이르러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내가 전에 이야기 했던가요 ?

지난 여름 아내와 보름 동안 동유럽을 다녀 온 적이 있습니다. 비엔나에서 잘쯔부르그로 가는 도중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알프스 자락의 대단히 아름다운 곳에 놀랄만큼 풍요로운 먹거리들이 즐비한 신나는 레스토랑 같은 휴게소였지요.

나는 햇살이 바람을 타고 나부끼는 옥외 데크에 반했습니다. 얼른 커피 한잔과 불루베리 케익 한 쪽을 들고 밖으로 나가 내 마음을 그 빛나는 미풍 속에 실어 두었습니다. 한 10분 쯤 그렇게 즐겼을까요. 그리고 일행과 함께 차를 타고 고속도로로 들어섰습니다.

들어서자 마자 나는 내가 그 아름다운 휴게소에 여권이 들은 작은 가방을 놓고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가장 중요한 소지품을 두고 온 것입니다. 아주 난감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마침 가까운 IC가 있었고 우리는 그곳에서 차를 돌렸습니다. 가는 동안 커피를 산 영수증에 적힌 전화번호로 그 휴게소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다행히 나는 휴대전화를 가져갔었지요.

나는 휴게소 직원에게 상황을 알리고 옥외 데크에 작은 검은 색 가방이 있는지 체크하여 보관해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정말 다행으로 이미 그 직원은 내 가방을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그 아줌마가 가방을 열고 여권 속의 내 이름을 더듬더듬 읽어 확인해 주는 목소리가 그렇게 예쁠 수 없었지요. 그때 까지 진행된 몇 분은 참 드라마틱하고 황당하고 짜릿했습니다.

1 시간 정도를 되돌아 가 가방을 찾아 나오면서 그 휴게소 계단 앞에서 가슴 한 가운데 가방을 올리고 기념사진 한 장을 찍었습니다. '여권가방 분실 미수' 사건이 발생한 다음부터 우리 일행들은 휴게소에 쉬었다 버스를 탈 때 마다 가슴에 손가방을 올리고 사진 한 장 씩을 찍어 댔습니다. 그리고 그때 마다 웃었습니다. 덩달아 웃었지만 그때는 우습기도 하고 놀림 받아 창피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날 저녁 나는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일행들에게 좋은 포도주 몇 병을 쏘았습니다.

웃음은 황당함 속에서 창조되기도 합니다. 기쁨 역시 어려운 일이 잘 처리되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전화위복의 보상이도 하구요.

일 년이 웃음 속에서 잘 지나갔습니다. 아, 아직도 조금 남아있군요. 어제 밤 시를 읽다가 올해의 시로 내가 뽑아 둔 것이 있습니다. 아주 화려한 사람의 화려한 시입니다. 아가서 중에 나오는 ‘솔로몬 왕의 노래’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부분만 조금 변형하여 번역해 두었습니다.

사랑아 너는 어찌 그리 아름다우냐. 어찌 그리 화창한지 참으로 달콤하구나. 네 몸은 종려나무 같고, 네 가슴은 포도송이 같구나.

네 숨결은 사과향기 같고 네 입은 내 사랑하는 이에게 부드럽게 흘러 내려 잠든 이의 입속으로 조용히 흘러드는 포도주 같구나. 나는 내 사랑하는 이에게 속해있고, 너는 나를 사모하는구나.

가자, 내 사랑하는 이여. 들판으로 나아가 헤너에 둘러싸여 잠들자꾸나. 아침 일찍 일어나 포도원으로 달려가 포도 움이 돋았는지 , 꽃망울이 터졌는지 살펴보자. 거기서 내가 내 사랑을 너에게 주마.

여러분들의 삶이 이렇게 달콤하길 바랍니다.
한 해 여러분 덕에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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