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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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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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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2일 16시 58분 등록

지나간 봉우리는 잊어라

 

지난 성공은 독()이다. 과거에 이루어 낸 일들에 대한 집착은 다가올 성공을 가로 막는다. 지금 오르는 봉우리를 위해서는 이전에 올랐던 봉우리는 잊어야 한다. 오직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사람만이 과거의 빛나던 순간을 회상한다. 과거는 대부분 그 당시에 빛나지 않았더라도 회상하면 빛났던 것으로 뒤 바뀐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삶 전체가 부정 당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회상에 의한 과거의 의식적 분칠은 삶이 허망하다는 사실을 부인하려는 인간의 방어기제다.

 

아무도 자신의 빛났던 과거를 부정하지 않으니 마음을 놓았으면 한다. 자신이 과거에 했던 업무는 탁월했고 지금, 과거 자신과 같은 업무를 하는 사람은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꼰대들이 회사에는 많다. 그때는 모든 것이 좋았고 지금은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더는 봐줄 수 없는 노회함에 사로잡혀 있다 봐야 한다. 그대가 아니길 바란다. 과거에 붙들리면 한 치 앞도 나아가지 못한다.

 

봉우리는 봉우리만의 난해함을 가진다. 에베레스트를 생각하고 데날리 (Denali, 북미대륙 최고봉, 6,194m)가 에베레스트(8,848m)보다 낮다 하여 물로 보다간 큰 코 다친다. 날고 기던 산악 영웅들은 데날리에서 죄다 운명을 달리 했다. 데날리는 산악영웅들의 무덤이다. 북극권 거봉에는 습한 돌풍이 분다. 히말라야의 마른 바람을 예견하여 오르면 낭패를 본다.

 

그대나 나나 지금 여기를 바라보지 않고 늘 먼 미래 어딘가만 바라보고 있다. '여기 지금'을 살지 않고 과거 빛나던 순간만을 기억한 채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그렇다고 지금도 아닌 지금을 살고 있다. 쓸데없는 일이다. 이를테면 그 시절, 그 시기, 그 순간이 자신에게 너무도 강렬하여 시간을 건너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시대를 건너오지 못하고 머무르는 것이다.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늘 그때의 이야기만 한다. 그때의 환희로 사는 사람들이다. 지금 사는 꼬라지가 꼭 그 순간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경계해야 한다.

 

삶은 멈추지 않고 머물지도 않으며 고이지도 않는다. 그때는 옳고 지금은 틀리는가? 되는 게 하나 없다는 생각의 근원은 과거에 무게중심을 놓고 살기 때문이다. 지나간 봉우리는 잊자. 지금을 어엿하게 살아갈 수 없다면 그때도, 앞으로도 제대로 사는 게 아니다.

 

지나간 봉우리는 마음이 만든다. 자극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는 것이 마음이다. 인간은 허망함 위에 서있고 그런 인간이 생각하는 마음은 늘 지금을 제쳐 두고 과거와 미래의 환상을 쫓기 때문이다. 달리려는 마음을 멈춰 세우고 이어가려는 마음을 끊어버리는 연습이 필요할지 모른다. 더 잘하지 못해 안달하기보다 잘 하려는 마음을 멈추게 하는 것이 현명하다. 쓸모로 죽어 나가는 월급쟁이들이 어디 한 둘인가. 영원히 살 것 같은 마음도 죽음이라는 단명함을 인식해야 나와 내 주변의 모든 존재들이 소중함으로 재구성된다.

 

후회라는 것은 늘 오만함에서 시작한다. 인간의 오만함은 의젓함이 아니라 언제나 자신이 가진 물적 환상에서 나온다. 그 토대가 마음이라는 환상이다. 그것은 욕심을 만들고 분노를 내뿜게 하고 희망과 절망도 생산한다. 그래서 수행자들은 평생 이 환상들과 싸우는지 모른다. 선이든 악이든 도덕이든 윤리든 시비 판단이든 지금을 떠나지 않고 멈출 때 그 배후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 배후는 마음이고 마음은 언제나 과거의 기억에 의해 지배당한다. 그러므로 마음은 늘 지나간 봉우리를 지향한다.

 

지나간 봉우리에 대항하는 등반 철학이 알피니즘이다. 알피니즘은 무엇인가, 철학에 등산을 더하면 알피니즘이고 등반가에 철학을 더하면 알피니스트다. 행위는 등산이고 행위자는 등반가지만 행위의 기반, 방법은 철학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철학은 개별적인 고유명사다. 보편화된 규칙이나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다. 칸트의 철학은 칸트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고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비트겐슈타인의 시선으로 해석된 세계다. 알피니스트라는 형태 안에 등반가가 있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해석체계와 산을 바라보는 시선과 해석의 기준이 있다면 그는 알피니스트다.

 

철학은 행위로 하여금 일종의 지위와 영역을 제공하고 그 안에서 추구하는 사유의 핵심을 구성한다. 머메리즘, 등로주의 같은 산악 기획은 나름의 핵심을 이루는 등반철학을 가지고 있으니 모두 알피니즘이다. 알피니즘은 산을 바라보는 시선과 등반이라는 행위를 해석하는 방식의 층위를 구분하는데 그 기반은 개인의 철학이고 그 철학의 수많은 차이가 수많은 알피니스트를 만든다. 알피니즘의 위대함은 그 안에 몰락을 담지하기 때문이다. 모든 알피니즘은 스스로 정한 등반의 방식과 철학으로 자신을 자진 自盡에 이를 때까지 밀어 부친다. 오로지 밀어 부치는 중에는 지난 성공과 지나간 봉우리가 다시 솟구치지 않도록 자신의 발 밑에 둔다. 그리고 그들은 기꺼이 몰락할 줄 안다. 쉽게 말해 지나간 봉우리를 잊는다는 건, 오늘 아침 가져온 우산 같은 건 잊어버리고 내 앞에 벌어지는 사건에 휘말릴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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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3 18:43:16 *.52.45.248

고난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행동하는 삶을 살아서 그럴까요 ?

전 늘 글을 읽으면서 그 삶에서 배우는 게 많습니다. 

코치로서의 개인적인 철학은 과거에 대해서는 '나는 뒤돌아 보지 않는다'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는 '미래는 목표지 길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오늘은 ' 망설이지 않는다. 먼저 행동한다.  그리고 정면으로 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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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3 19:59:12 *.161.53.174

늘 못난 글에 댓글을 달아주시는 정성에 감사하면서도 염치가 없었습니다.

산이 말해 주는 만큼만 담고 살았으면 하는데 늘 모자랍니다.

생각 앞에 먼저 행동하고,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선배님의 기운을 조금이라도 닮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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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5 07:04:49 *.169.176.67

좋은 편지, 늘 마음으로 돌이켜 생각하고 배우게 하는 글 귀들과 마음들 덕분에 많은 배움이 있습니다.  표현을 통해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며 새로운 배움을 행동으로 시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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