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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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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13일 17시 53분 등록

오늘, 그 사나이에게

 

간 밤, 갑작스런 고열로 잠을 설쳤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세찬 비를 맞고 놀았더니 몸살이 왔던 모양입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마냥 좋다고 비 맞고 놀 나이는 아니지만, 쏟아지는 비가 그리 좋을 수 없었습니다. 신나게 놀았으니 그걸로 됐습니다. 나아지겠지요. 쑤시는 몸을 겨우 일으켜 출근했습니다. 출근 길에 문득 이대로 죽는다면 내 인생은 아름다웠다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3초간 했습니다. 조금 아쉬울 것 같기도 하다는 말이 튀어나오려는 걸 막았습니다. 체력이 갈수록 바닥나니 생각도 약해집니다. 눈물이 많아지니 두려움도 커졌던 모양입니다.

 

분명 이 따위로 살려고 밥을 축내고 있진 않을 텐데, 고작 일상에 쫄아 두려움에 떨어선 안 될 텐데, 걱정을 떨칠 수 없습니다. 아직 길을 찾지 못했고 찾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가련한 안락을 즐기다 겁마저 많아지고 있습니다. 아무데도, 누구와도 드러내고 즐기지 못하는 시시함이 더해져 볼품없는 인간이 된 것 같습니다.

 

생각건대 오늘 출근 길에 불현듯 내게 들이쳤던 질문은 그를 연결하고 있는 나에게 화답하는 그 사나이의 말이 아닐까 했던 것입니다. 그 사내는 항상 사람들에게 스스로 묻게 했습니다. 내 인생은 스스로 아름다웠다 말할 수 있는가? 그러고 보니 산 언저리에 벚나무가 꽃을 피워 산 전체가 열병을 앓는 것 같습니다. , 알겠습니다. 꽃은 시드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피지 못하는 걸 두려워한다는 것을. 나는 여전히 시드는 걸 두려워하고 있으니 피워낼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혼자 터지는 벚꽃은 꽃을 틔울 때 남의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동백은 꼿꼿했으므로 싹둑 떨어지는 그 순간을 끝까지 즐기는 것 같습니다. 바다가 태풍을 만들어낼 때 시켜서 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생명은 그 자체로 완벽하고 그 자체로 완성입니다. 그에 비하면 인간은 나약합니다. 존재를 놓고 존재의 정당성을 찾거나 존재감이라는 단어와 사유를 생각하는 건 인간만이 가능한 일이라는 걸 늦게나마 알게 됩니다. 인간만이 눈치보고 미숙하고 지배당하고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내가 가진 두려움도 조금 이해가 됩니다. 그 사내도 일찍이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선지 그 사내는 눈치 볼 수밖에 없는 약자를 위해 마지막까지 살았던 것 같습니다. 약자는 강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데 세상에 널려 있는 강자들의 눈치만 살피다 내면에 있는 자기 안의 강자의 꽃을 피우지 못하는 사람들을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래서 늘 네 꽃도 언젠가 핀다는 말을 달고 살았지요. 꺼지기를 겁내지 말고 활활 타지 못함을 자책하라며 불쏘시개 부지깽이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약해 빠진 인간들을 모아 놓고 창조적 부적응자로 추켜세웠습니다. 그의 말은 누군가에게 꿈으로 걸어가게 하는 용기가 되었고 또 누군가에겐 다시 타오르는 삶의 의지가 됐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변명하자면, 눈치보지 말고 세상과 맞붙어라는 그의 말은 때론 숨겨져 있었고 더러는 속삭임처럼 나긋했으므로 나는 그의 무시무시한 말을 알아차릴 수 없었는지 모릅니다. 아닙니다. 솔직하게 말해야겠습니다. 그가 말하는 주술의 진위를 알게 된 후의 거친 삶을 미리 예견하곤 그게 무서워 애초부터 비겁하게 알아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늘 한발 빼는 야비함이었습니다. 그 사내가 하는 명령에 나는 이것저것 현실의 핑계를 댔고, 직장 상사의 눈치를 살폈고, 아내, 자식의 존재를 방패삼아 사나운 삶을 지레짐작으로 그렸고, 보기 좋게 뭉개며 빠져나갔습니다.

 

이제는 빠져나올 수 없다는 걸 압니다. 언제나 그랬듯 한 발 앞선 말을 선문답처럼 넌지시 건네던 그 사내는 저의 얍삽함을 알고 있었다는 듯, 어리석은 놈, 이래도 못 알아먹을까 이젠 힘을 주어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어떤 일에 공명해 떨림을 얻게 되면 그 문, 그 길로 들어서라. 의심하면 안 된다. 모두 버리고 그 길로 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자기혁명이다.” -구본형-



IP *.161.53.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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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3 22:53:50 *.52.254.111

전 스승님의 그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을 때, 그렇게 시간이 멈추어 선 그 순간에 오직 하나의 질문에 답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

이 길에 마음을 온전히 담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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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4 23:58:11 *.34.224.111

그대 역시 선동가.

불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훌륭한 제자 입니다.


좋은 봄날.

건승을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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