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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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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14일 17시 22분 등록

N포를 위하여

 

일하기를 포기하고 일 할 의지도 없는 자, 좋은 차를 더 이상 선호하지 않고 남들과의 비교를 거부하며 사는 데 별다른 욕망을 갖지 않는 젊은이들, 승진을 갈구하지 않고 많은 돈을 벌기를 바라지도 않으며 돈이 없으니 필요 이상으로 비싼 물건들을 사지 않는 자, 결혼은 물론 출세에 대한 욕망이 사라졌고 지위와 명예를 개소리로 아는 젊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어느 늦은 저녁 TV 시사프로그램 패널의 장탄식.

 

안 보던 TV를 봤던 내 잘못이겠지만, 출연자 패널은 왜 그들을 탄식해야 하는지, 그가 비난한 젊은이들은 왜 그들의 탄식을 받아야만 하는지를 생각한다. 나는 오히려 그런 젊은이들에게서 작은 희망을 본다. 종단의 승려가 무소유를 말하면 사람들은 존경해마지 않지만, 욕망의 욕망까지 끊어라 말하면서 어렵디 어려운 그 말을 현실에서 실천하는 젊은이들을 왜 탄식의 대상으로 바라보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일말의 구조적인 문제임을 자인하는 동시에 자포자기의 삶을 측은하게 여겼을 테다. 우리의 시선이 모두 그렇다.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국민경제학은 노동하지 않을 때의 노동자는 인간으로 간주하지 않으며 그런 식의 간주는 형사법정, 의사들, 종교, 통계표, 정치, 거지 단속 경찰에게 맡겨버린다라고 말한 것처럼 지금을 사는 우리 각자에겐 어느새 이와 같은 경제학자의 시선이 내면화 되어 있는지 모른다. 외려 그것은 오랫동안 구축해 온 시스템 지탱의 근간이 되는 욕망의 구조를 하부에서부터 뒤흔드는 균열이자 희망인데 말이다.

 

시스템의 욕망을 대중에게 삼투시켜가며 유지하고 키우고 움직이던 세계가 처음으로 맞는 새로운 형태의 실패다. 시스템 자체의 구조로는 더 이상 먹혀들 지 않는 강적이 나타난 것이다. 이 실패는 시스템 스스로 내는 불협화음의 결과다. 물론 이 시스템은 악착같이 일해서 벌어야 하고, 부끄럽지 않게 탕진하는 게 미덕인 자본주의사회다. 돈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않고, 돈 없는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새로운 집단의 탄생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들은 나를 찾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라 말하는 현자들 너머에 있다. 왜 자아를 찾아야 하고 왜 일을 해야 하는가를 먼저 묻는 사람들이다. 질문과 답을 법정 심문처럼 이어가며 이 사회가 구현하는 욕망의 자기투사적인 시스템의 근본을 알아차린 사람이다. 욕망의 자기 자리를 찾아주고 내가 일찍이 갈구해 마지않던 그 욕망과 충동들은 나의 욕망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은 자, 야만의 시대를 더는 살 수 없다는 실천적 투사처럼 나는 보인다.

 

욕망은 결핍이다. 결여는 욕망할 것을 욕망한다. 대체로 사람들의 결핍은 보편적이다. 결여의 경험은 개별적이지만, 삶의 일정한 선을 넘지 않은 자가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해 가정을 꾸리며 경로徑路 의존하며 살았다면 개별적인 결여감 또한 남들과 다를 바 없어진다. 말하자면 욕망하는 대상과 그 욕망을 채우는 방식도 같아지는 것이다. 이 욕망을 배후에서 조정할 수 있다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람들을 자신의 기획 속으로 밀어 넣을 수 있게 된다. 내려 놓은 자들의 눈에는 이 상황이 얼마나 우습겠는가 말이다. 얄팍한 기획이 죄다 드러나고 한번 알게 된 뒤론 다시 어리석은 욕망의 전차에 올라탈 수 없는 것이다.   

 

새 것을 욕망하라, 헌 것들을 경멸하라, 집을 사지 않고, 재산을 축적하지 않으며, 유행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결여이니 세상이 강요하는 유행의 욕망으로 끊임 없이 나를 재탄생 시켜야 한다. 그 안에서 진짜 나를 찾는다는 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새로움을 향한 맹목적이고 광범위한 유행이 세계가 욕망을 채우는 방식이다. 이 욕망은 과잉생산을 추동하고 현란한 마케팅과 불필요한 소비를 촉발한다. 권력자의 지배 메커니즘이 이와 같다. 사회가 사람들을 조정하는 방식은 유사하게 작동한다.  

 

시사 프로그램의 패널들은 그들을 철없는 젊은이들로 한탄해선 안 된다. 그들은 결핍에 대해 뼛속 깊이 자각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처지가 왜 결핍과 결여로 여겨지는지 되묻는 사람들이다. 존재하는 것들은 결여가 있을 수 없다는 높은 깨달음, 나는 여기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아무것도 결여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은 사람들이다.

 

아마, 어쩌면 그들은 삶을 전면적인 욕망으로 채우고 있으리라. 인간이 이룰 수 없는 것들을 강하게 욕망하는 것, 이를테면 자유 같은 것. 강렬하게 욕망하는 자유, 썩어 없어질 것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는 것.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것과는 열렬히 비교하며 대자유에 이르지 못하는 자신에게 무한히 좌절하는 것. 그들의 욕망은 잗다란 물신성이 아니라 생을 걸어야만 쟁취할 수 있는 무사의 야망과 같은 것이니 깊은 밤 테레비에서 흰소리를 시부리는 먹물들에게까지 수많은 무사들의 혀 차는 소리가 돌비 서라운드로 들렸기를.



IP *.249.8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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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7 16:10:20 *.169.227.25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포기 해서라도 가질 수 없을 것만 같은 단 하나를 갈망하는 것...

욕망일까요 ?  근본적인 본성일까요 ? 

전 포기가 아니고 또 다른 선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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