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장재용
  • 조회 수 1050
  • 댓글 수 2
  • 추천 수 0
2021년 10월 26일 18시 30분 등록

산과 미운 나

 

매일 아침 출근하기 위해 세면대에 고개 처박고 머리 감는 일이 문득 넌더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불안한 날에 배낭을 들쳐 메고 산에 오르면 방금까지 내 배후에 있던 무대장치는 무너진다. 나를 부르는 이름들이 빠지직 소리를 내며 사라지고 세계 하나가 붕괴한다. 나와 세계는 부조리를 사이에 두고 팽팽하게 대치하다 나의 일방적인 도피 선언에 허무하게 승부가 갈린다.

 

사실 이 세계는 나와 다투지 않는다. 다툴 겨를도 없을뿐더러 내 주변을 짓누르면서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무엇, 그 모든 것의 주체를 알지 못하기 때문일 텐데 주체를 알 수 없는 대신 어느 순간 세계를 내면화시킨 내 안에서 불현듯 저 밑에서부터 아니라는 음성이 북받쳐 올라올 때 거울에 금이 간다. 금이 간 사태는 전손을 예고한다. 회사 사무실, , 출퇴근 지하철 안에서 왔다리 갔다리 하는 일상의 이미지들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깨지는 것이다. 이제 오로지 만 남게 되고 두 발로 가는 길만이 나의 길이 된다. 산을 홀로 올랐다.

 

홀로 산을 오르는 사태는 세계 안에서 부조리와 섞여 들어가는 나를 빼내는 일이다. 누군가에게 불리어지던 나로부터 이름 없는 세계로 들어가는 일이다. 알튀세르의 호명 테제는 홀로 걷는 산과 같다. 관계는 이름을 만들어낸다. 관계는 체제를 만들고 관계 속의 나는 관계가 만들어낸 이름으로 불리어지는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이름만큼 관계가 존재하고 그 관계는 모두 닮아 있다. 이때 다른 사람들이 사는 대로 살지 않게 되는 건 차라리 형벌이다. 이 세계가 만든 관계와 무관한 존재로 단절된 나를 알게 되는 건 오히려 무서운 것이다.

 

자아를 발견하라고 말하는 사람은 자아를 발견했을까? 자신을 찾아 나서라고 말하는 사람은 자신을 찾았을까? 그 무섭고, 힘들고, 사나운 삶을 거침없이 살아라 말하는 자들은 무엇에 기댄 자신감일까? 나와 이 세계의 관계가 깨어지고 홀로 암흑 속을 전진할 때는 처절한 외로움을 견뎌야 한다. 자신의 두 발의 자유를 얻는 대신 모든 조건은 바닥이어야 한다. 자유로운 결정은 무섭고 외롭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유롭지 않게 사는 법을 택한다. 노예로 사는 게 편하기 때문이다.

 

부디 나이 먹었다고 영리하고 지혜로운 척하지 말자. 생긴 대로 사는 것은 지혜롭게 사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사사로운 소확행 류의 자유가 아니라 삶 전체가 몰락할 수도 있음에도 기꺼이 대자유를 택하는 자의 무대장치 없는 거친 삶에 언제나 경배를. 집 따까리에 재산 쏟아 붇지 말고 두 발로 공부하고 여행하는 삶에 쏟아 붓기를. 홀로 걷는 산에 나와 별빛 사이에 아무것도 없기를. 온전한 나를 나 스스로 견딜 수 있기를. 미운 나.



IP *.161.53.174

프로필 이미지
2021.10.27 22:58:58 *.34.224.111

그대의 거친 삶에 언제나 경배를~~

프로필 이미지
2021.10.31 16:36:47 *.169.227.25

누구든 가능한데도  아무나 할 수 없는...  왜 그럴까요... 

갑자기 로마의 한 교회의 현판에 쓰여 있다는 문구가 생각났습니다. 

" 왜, 인간은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가? "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176 [라이프충전소] 강의갈 때 꼭 여행음악을 듣는 이유 [2] 김글리 2022.11.18 590
4175 [수요편지] 성공적인 휴식 [1] 불씨 2022.07.05 592
4174 [수요편지] 보왕삼매론 [1] 불씨 2022.11.30 592
4173 [내 삶의 단어장] 쵸코맛을 기다리는 오후 1 에움길~ 2023.05.01 592
4172 왜 하필 시였을까? [1] 어니언 2022.04.07 593
4171 [라이프 충전소] 최고와 최악의 상황을 함께 그려보는 습관 [2] 김글리 2022.06.17 593
4170 [수요편지]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 불씨 2023.07.12 594
4169 화요편지 - 오늘도 틀리고 내일도 [1] 종종 2022.09.20 595
4168 [월요편지 126] 아무에게도 간섭 받고 싶지 않을 때, 케렌시아 [1] 습관의 완성 2022.10.30 595
4167 [내 삶의 단어장] 멈춤, 언제까지 야반도주 [4] 에움길~ 2023.09.11 595
4166 화요편지 - 회의를 좋아합니다만 [1] 종종 2022.08.16 599
4165 모임을 즐기는 78억가지 방법 [1] 어니언 2022.12.15 599
4164 삶의 실험 [2] 어니언 2022.04.21 601
4163 [수요편지] 수오훈 [1] 불씨 2022.08.30 601
4162 [라이프충전소] 인생의 방향을 다시 설정하고 싶다면 [2] 김글리 2022.09.17 601
4161 [월요편지 118] 우리가 미루는 진짜 이유(part2) [1] 습관의 완성 2022.07.31 602
4160 [라이프충전소] 발리에서 띄우는 편지 [4] 김글리 2022.07.30 603
4159 함께한 기억(4/14 마음편지) [1] 어니언 2022.04.21 604
4158 [수요편지] 꽃은 스스로 피고지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1] 불씨 2022.08.09 604
4157 [라이프충전소] 결국 누가 글을 잘 쓰게 되는가 [1] 김글리 2022.12.08 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