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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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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3일 10시 11분 등록

1. 지루함의 끝에서 삶을 바꾸다


지루함을 느끼면 대개 어떻게 반응할까? 대부분은 그 지루함을 없애기 위해 ‘뭔가’를 한다.  스마트폰을 꺼내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혹은 뉴스를 검색하거나 드라마를 보면서 지루함을 죽인다. 스마트폰이 생긴 이래 지금처럼 지루함을 쉽사리 처치할 수 있는 시대가 없었다. 도통 지루할 새가 없다. 나도 지루함을 몹시 견디기 힘들어하는데, 그럼에도 가끔은 지루함을 견디려고 한다. 지루함을 견디면서 인생이 바뀐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27살, 처음으로 정규직으로 취직을 했던 때였다. 생활은 안정되었지만, 이상하게 공허감이 커지던 시기였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떠난 휴가길에 허리를 크게 다치게 됐다. 그길로 한달간 병원에 입원하게 됐고, 넉 달을 식물인간처럼 눈만 뻐끔뻐끔 거리며 누워 지냈다. 아주 바쁘게 흘러가던 일상이 셧다운 되고, 졸지에 집에 갇혀 홀로 보내게 됐다. 처음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는 시간이 좋더니, 곧이어 강력한 지루함이 강타했다. 정말 너무 지루해 미칠 지경이었다. 종일 누워있어야 하는데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당시는 스마트폰도, 넷플릭스도 없었기 때문에 덕분에 생각만 많아졌다. 아침부터 밤까지 온갖 생각을 하며 지냈다. 저절로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는데 가장 당혹스러웠던 부분이, 그간 참 열심히 살았는데 한 번도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거기에서 다른 생각이 올라왔다. ‘그렇다면 지금 방식 그대로 살아가는 게 맞을까?’ 지금처럼 산다고 가정할 때 앞으로의 3년 5년 10년 시뮬레이션을 돌려봤다. 특별히 더 행복해질 것 같진 않았다. 그럼 어떻게 할까? 지금까지의 방식이 행복하지 않았다면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할 때였다.


 누워서 꼼짝 못했던 그 시간동안, 나는 내 삶의 방향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누구의 철학이나 기준이 아니라 내 방식대로 삶을 꾸려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 없었기에 먼저 다양한 재료를 모으기로 했다. 일단 드넓은 세상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삶의 방식들을 보자! 일 년간 열심히 재활치료를 해서 허리가 완치되자마자 나는 모아둔 돈을 몽땅 가지고 세계여행을 떠났다. 듣도보도 못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만나면서 어떻게 살지 재료들을 하나씩 모아갔다. 그리고 여행 이후, 내 삶은 크게 바뀌게 되었다. 방식이 바뀐 것은 물론이고 삶의 만족도도 그 어느때보다 높아졌다.



2. 지루함을 견디는 힘


누워서 꼼짝도 못했던 그 지루한 시간이 결국 내 삶의 아주 중요한 터닝포인트를 만들어줬다. 고대 사상가들은 “사람은 아무 할 일이 없을 때 비로소 자신의 잠재력을 깨달을 수 있다”고 했다. 인간은 지루함을 견디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뉴턴은 흑사병이 돌자, 시골인 고향에 내려와 피신한다. 2년 가까이 골방에 틀어박혀 지냈는데, 기간동안 그의 연구업적 대부분이 나왔다.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한 것도 그때였다.


일부 학자들은 쉴 때, 지루할 때 인간의 창의력이 가장 발휘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지루함의 끝을 경험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답변을 내놓다는 실험결과도 있다. 영국의 중앙 랭커셔 대학의 산디 만과 레베카 카드만 교수는 지루함이 어떻게 사람들의 사고를 변화시키는지 실험을 했다. 한 그룹에는 전화번호부를 외게 하고, 다른 그룹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임무를 주었다. 이후 플라스틱 컵을 이용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이야기해달라고 요구하자 지루한 임무를 부여받은 그룹이 훨씬 더 창의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이후 몇 번의 실험을 거듭한 결과 연구진은 이런 결론을 내렸다. “지루함이 우리 뇌에 ‘충분히 자극적이지 않다’는 신호를 보냄으로써 우리를 창의적으로 만들어준다.”


지금 생각해보면 홀로 누워지냈던 그때, 넷플릭스와 스마트폰이 없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다른 이들의 멀쩡해 보이는 일상을 SNS를 통해 지켜보며 부러워하거나 좌절감을 느꼈을 테고, 지루함을 달래려고 영화나 드라마, 유튜브 영상을 끝도 없이 봤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루함은 덜었겠지만 내 삶을 생각해볼 시간과 생각의 깊이는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3. 지루함을 견뎌야 할 이유


산디 만 교수는 이메일을 확인하거나 SNS를 탐험하기 보다 ‘공상하라’고 조언한다. 공상하거나 멍때리는 시간이 우리의 무의식을 해방시켜 더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다.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도 공상하는 시간을 스케쥴에 포함한다고 밝힌 바 있다. 지루함은 내가 진정으로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혹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아가도록 하는 원동력과 같다. 그래서 지루함을 또 다른 변화의 신호라고도 말한다. “지루함은 우리가 하고싶은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경고이자 진정 원하는 일을 빨리 하게끔 해주는 원동력이죠.” 루이스빌 대학의 안드레아 엘피도로우 철학 조교수의 말이다.


지루함의 끝에 뭐가 있는지 보려면 지루함을 뚫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 지루함의 끝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사람은 지루함을 정면돌파하는 사람들이다. 이번에 인생의 3막을 앞두고 다시 한번 결정했다. 올 12월, 이 귀한 시간을 나는 아주 아주 지루하게 보낼 것이다. 다행히 공식 일정이 모두 마무리가 됐기에 마음대로 시간을 쓸 수 있다. 넷플릭스를 보거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극적으로 줄이고 다소 지루하게 일상을 보낼 예정이다. 그를 견디기 위해 내 안에서 다양한 생각이 바람처럼 일어날 것이고, 그 생각들은 서로 엮여지고 뒤섞이고 혼종되면서 알알이 맺혀 내가 생각지 못한 어떤 형태로 커가게 될 것이다. 나는 그를 모조리 지켜볼 예정이다. 그 지루함의 끝에서 내 다음 인생의 3막이 시작될 예정이므로.


IP *.181.106.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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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3 13:01:38 *.244.220.254

글을 읽고 먼저 떠오른 오래 전 휴대폰 광고 카피 하나. "... 휴대폰은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정확한 문구는 생각나지 않음). "누워서 꼼짝도 못했던 그 지루한 시간이 결국 내 삶의 아주 중요한 터닝포인트를 만들어줬다."는 말씀이 좋은 기운을 줍니다. 터닝 포인트! 우리 말로 변곡점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구본형 선생님 책에도 이 단어가 자주 나온 것으로 압니다. 각자의 삶에 무언가를 계기로 스스로의 변곡점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는 분명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사는 분이겠지요. 이번 지루함의 정면돌파를 통해 글쓴 분의 다음 인생  3막이 활짝 피어나기를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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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4 08:28:39 *.181.106.109

응원과 격려 감사합니다, 응덕님. 저도 응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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