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김글리
  • 조회 수 592
  • 댓글 수 1
  • 추천 수 0
2022년 8월 5일 11시 32분 등록

저는 지금 우붓에 있습니다. 지난주 금요일에 이동했으니 딱 일주일 만이네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일주일이 어떻게 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중입니다. 아무것도 안 할 계획으로 발리에 온 터라 별다른 계획도 세우지 않았고 와서도 딱히 뭘 할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때마침 허리를 다친 덕분에 더 더욱 뭔가를 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허리가 아프니 요가도 어렵고 서핑도 어렵고, 한시간 이상 걷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참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남들 다하는 거 저도 하려고 기웃거렸을 거고, 종일 걷거나 활동하며 몸을 혹사시켰을 거거든요. 저는 활동하는 걸 너무 좋아해서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안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허리를 다쳐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덕분에 원래 계획인 아무것도 안하기를 아주 충실하게 수행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이곳에서 제 하루 일과는 매우 단순합니다. 주로 걷고, 먹고, 마시고, 쓰고, 자기로 이루어지죠. 하루 4~5번씩 30~40분씩 걷습니다. 여기저기 걸으며 구경하다, 지치면 오토바이를 빌려 우붓 이곳저곳을 쏘다닙니다. 배고프면 식당가서 밥 먹고, 목마르면 카페 들어가 음료수 마시고, 뭔가 떠오르면 글을 쓰고, 잠이 오면 잡니다. 이미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데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하고 싶어지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한국에 있을 땐, ‘실용성효율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살았습니다. (이건 지금도 핵심가치들입니다) 무엇을 하든 최대한 빠른 시간에 더 많이 할 수 있어야 하고, 또 반드시 결과를 만들어내야 하죠. 무엇을 하든지 그것이 삶에 유용해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무용無用한 활동과 시간을 매우 싫어했죠. 쓸모없는 인간이 되는 것 같아서요. 그런데 이곳에서는 매우 비효율적으로 하루를 보내고, 정말 쓸모없이 시간을 보냅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게 싫지가 않습니다. 즐겁습니다.

 

사실 저는 오랫동안 쓸모없는 존재가 되는 것에 대한 깊은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스스로의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요. “잘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라고!” 그런데 그게 오히려 제 두려움을 감추는 행위일 뿐이었더라고요. 내가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증명하기 위해, 더더욱  ‘유용한 것 초점을 맞추는 것이었죠. 그런데 이제는 '무용함'의 가치도 발견하게 됐습니다. '유용함' 이상으로 중요한 유용함과 무용함이 균형을 이루는 것입니다.

 

여기 발리는 힌두교를 믿는데요, 힌두교에선 선과 악을 철저하게 구분하지 않습니다. 선과 악이 나름의 역할을 가지고 있고, 그들이 서로 조화를 이룰 때 균형 잡힌 세상이 된다고 보지요. 선한 신도 악한 일을 저질 수 있고, 악한 신도 나름 정의로울 수 있다고 봅니다. 저는 이 개념이 마음에 듭니다. 모든 건 상대적인 가치를 지닌다는 것 말입니다.

 

좀 쓸모 없어도 되잖아요. 가끔은 비어 있어야 뭔가를 담을 수도 있고, 새로운 쓸모를 발견할 수도 있으니까요.

오늘 하루 비어있길, 가벼워지길 바라며 발리의 바람 한 줌을 오늘 마음편지에 동봉해 보냅니다.

 

Terima kasih (뜨리마 까시) 감사합니다

IP *.253.84.111

프로필 이미지
2022.08.07 13:03:53 *.166.200.71

노자가 말했던  ' 無爲而無不爲 ' 가 생각나는군요 ! 

건강 유의 하시고 즐거운 시간되세요 !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176 스스로를 다시 보다 어니언 2023.08.24 601
4175 [내 삶의 단어장] 쵸코맛을 기다리는 오후 1 에움길~ 2023.05.01 602
4174 [수요편지] 성공적인 휴식 [1] 불씨 2022.07.05 603
4173 [월요편지 126] 아무에게도 간섭 받고 싶지 않을 때, 케렌시아 [1] 습관의 완성 2022.10.30 603
4172 화요편지 - 오늘도 틀리고 내일도 [1] 종종 2022.09.20 604
4171 [수요편지] 보왕삼매론 [1] 불씨 2022.11.30 604
4170 삶의 실험 [2] 어니언 2022.04.21 606
4169 [라이프충전소] 발리에서 띄우는 편지 [4] 김글리 2022.07.30 606
4168 왜 하필 시였을까? [1] 어니언 2022.04.07 607
4167 화요편지 - 회의를 좋아합니다만 [1] 종종 2022.08.16 607
4166 [월요편지 118] 우리가 미루는 진짜 이유(part2) [1] 습관의 완성 2022.07.31 608
4165 [라이프충전소] 인생의 방향을 다시 설정하고 싶다면 [2] 김글리 2022.09.17 608
4164 [수요편지]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 불씨 2023.07.12 609
4163 [라이프충전소] 강의갈 때 꼭 여행음악을 듣는 이유 [2] 김글리 2022.11.18 610
4162 [수요편지] 꽃은 스스로 피고지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1] 불씨 2022.08.09 611
4161 함께한 기억(4/14 마음편지) [1] 어니언 2022.04.21 613
4160 [수요편지] 수오훈 [1] 불씨 2022.08.30 613
4159 [라이프충전소] 결국 누가 글을 잘 쓰게 되는가 [1] 김글리 2022.12.08 613
4158 [수요편지] 휴식에 대해 불씨 2022.11.09 615
4157 모임을 즐기는 78억가지 방법 [1] 어니언 2022.12.15 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