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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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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21일 20시 18분 등록

혁신에 속고 열정에 울고

 

혁신은, 단언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1995년에 개도 시부리고 다녔다던세계화삽질의 2021년 버전이다. 한때 대기업에 다니며 혁신을 주관하는 팀장으로 일한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동종업계에서 가장 뛰어나고 탁월한 혁신전문가를 꿈꿨다. 궁금하면 책을 뒤졌고 의심이 들면 현장으로 달려갔다. 내게 주어진 혁신이라는 업무를 예술의 경지에 올려놓고 싶었다. 그 와중에 떨쳐낼 수 없는 질문이 늘 따라다녔는데, 왜 혁신하는가? 라는 물음에는 늘 장황하고 현학적인 답만을 해대며 알맹이 없는 얘기를 할 때 사람들은 늘 그렇듯, 침을 튀겼는데, 말하면서 질문의 핵심 뒤로 숨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기억이 있다. 기업 생산에서 일어나는 각종의 낭비를 제거하고, 효율을 높여 동일한 시간 안에 더 많은 작업을 하게 하고, 협력업체와 시너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그네들도 눈물겨운 생고생에 동참시키며 윈윈이라는 되도 않는 명목으로 원청의 갑질 아닌 갑질을 강요하는 것이 도대체 누구를 위해 하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두번의 특진과 최연소 팀장이 되기까지 고속승진을 거듭했지만, 나는 볼품없는 인간으로 망가져 있었다. 그때 나는 차라리 인격화된 자본이었다. 자기성장과 자기계발로 은폐된 자본의 논리를 흠뻑 빨아들인 사람. 추상적인 자본이 사람이라는 어인이 되어 나타나면 그 모습이 될 터인데 그것은 철저하게 은폐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때 나는 알지 못했다. 그 단어조차 쓰이는 걸 막으면서까지 은폐한다. 자본과 노동이라는 단어가 예전엔 금기어처럼 여겨져 쓰지 않았지만 요즈음엔 구시대적 계급의식을 불러일으켜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불러 일으킨다.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말하려는 건 그러나 극명한 계급대립의 처지 비관을 전파하려던 게 아니다. 그것은 환상구조를 말하려는 것이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의 부는환상 구조로 올려진 가치라는 형태의 허구라는 것, 우리 스스로 자신의 눈을 볼 수 없듯 환상 안에서 환상임을 인지하거나 사유할 수 없기 때문에 깊이 파고들어 그 핵심에서부터 설명하고 점점 밖으로 끌고 나와 보여주는 역행을 취했던 것이다. 글이 조금 샌 것 같다.  

 

그래, 왜 혁신하는가 라는 질문을 거듭하던 끝에 혁신이라는 허울은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점점 알게 됐다. 기업의 혁신을 진전시킨다는 것은 파괴적 세상에 일조하는 것일 테다.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을 위해 비록 월급이 궁하다는 실존적인 목적이 있다 하더라도 왜 해야하는지에 대한 결정적인 당위를 나는 찾지 못했다. 설사 그 길을 가는 중에 얻게 되는 깨달음이 있더라도 그 길을 가지않음으로써 얻게 되는 무지보다 나을 게 없다는 결론에 이르자 내 마름으로서의 역할은 그렇다면 여기까지에 다다랐으니 바로 그 순간, 그때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혁신이라는 이름의 야만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열정을 자본의 소명 아래 생을 갈아 넣게 하는지 비로소 보였다. 그 전까지 사회에 순응하며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을 혁신의 기치 아래 모여들게 할까를 고민하던 한 인간은, 혁신이라는 폭력성 앞에 개인의 열정과 인간 됨이 더는 훼손되지 않기를 바랐다. 사람들은 이런 나의 전향을 빗대어 혁신이 만들어내는 모든 불의와 참상, 고통은 오히려 진정한 혁신이 아니어서생기는 문제의 케이스로 지적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마르크스의 자본은 오래전 내 질문과 고뇌에 틀리지 않았다는 확실함을 선사한다. 그는 노동생산성의 향상은 분업이나 협업의 강화에 의한 것이든 기계의 개량에 의한 것이든 잉여가치를 만들어낸다. 산업자본에서 발생하는 잉여가치를 만들어내는 기술, 방법, 동력은 동종 산업은 물론 인접한 산업으로 빠르게 확산한다. 시초의 첨단의 기술과 작업 방식은 초기 단계에서 막대한 부를 가져다 주지만 일반화 된 후에는 이전의 차액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자본은 그 차액을 끊임없이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된다. ‘전례 없는 고도의 기술혁신의 조건이 마련된 것이다. 자본은 세계를 문명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존속하기 위해 기술혁신을 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그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필요 때문이 아니라 가치에 의한 전도 때문에 일어난다.’

 

혁신이라는 것은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통해 노동력의 가치를 이 시스템에서 저 시스템으로 보내서 노동력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떨어뜨려 잉여가치를 획득하기 위한 적대적 탐욕이다. 혁신이라는 거대한 거짓말의 기획은 월급쟁이들의 자아계발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존속해야 하는 자본의 운명을 월급쟁이에게 내재화 시킨 것이다. 공장의 작업순서 변경, 라인의 재배치, 새로운 기계의 도입, 자동화 설비 등은 그것이 실현되기 전의 시스템에서 점진적으로 개선되며 이루어지는데, 이때 만들어지는 노동 결합의 잉여가치는 기존 시스템에 존재하던 노동자가 밝혀 내기 어렵다. 혁신, 개선활동은 자연히 다른 공장으로 전파되기 마련이고 혁신에 의한 차액 실현은 총자본 선에서 유사해진다. 따라서 혁신은 더 많은 부를 좇는 산업별, 국가별, 대단위 집단으로 확전 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로 인해 자본은 혁신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마치 95년도 아무것도 모르는 초등학생을 앞에 놓고 전교조회 시간에 대머리 교장선생이 가장 많이 말하는 단어, ‘세계화처럼 범국가적인 당면 과제로 승격되는 것이다.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것은 교육시스템에까지 스며들어 학생은 혁신을 숙련하는 산업예비군이 된지 오래다. 교육은 상품화되는 세상을 막아야 할 입장이어야 할 텐데 방귀 뀐 사람이 화 내듯 좀더 나은 상품형태로서의 인간을 위한 자본주의적 노동자교육을 자처한다. 존귀한 자신의 자식이 상품이 되려는 데 부모들은 또 왜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가. 어디서부터 뒤바뀐 일인지 당최 알 수가 없다.

 

가치가 항상 상대적 가치이고 잉여가치 또한 상대적 차액임을 이해한다면 자본제생산의 핵심이 노동생산성 상승에 의한 잠재적 가치체계의 창출에 있음은 분명하다. 자본제사회가 발전으로 보이는 것은 화폐형태라는 전도 위에 누적된 전도인데 화폐형태 자체가 그것을 덮어 숨기고 있다. 따라서 화폐의 기운을 둘러싼 가치형태의 고찰은 자본론의 결정적인 새로움일 뿐만 아니라 사적 유물론을 포함한 일체의 역사철학에 있는 원근법적 도착도 지적한다’ (가라타니 고진,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 p. 70)

 

끝없이 혁신하는 모순은 환상의 구조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환영이다. 종이 쪼가리에 가치를 부여한 그 순간부터 가치형태, 상품이라는 것들이 화폐라는 일반적 등가물을 가지는 순간 갑자기 나타나는 욕망과 같은 것이다. 가치, 그것은 실재가 아니라 형태 상으로 존재하는 욕망의 구조다. 그것은 끝없이 욕망하고, 또 그 욕망을 채우려 뭔가를 만들어내고, 다시 부를 위해 끝없이 '혁신'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모순을 안고 돌진한다. 그로 인해 가려진 축적이 발전처럼 보이지만, 강남의 빌딩들이 발전한 사회의 자랑스런 모습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잉여와 축적에 지나지 않는다. 내 눈엔 축재로 보인다. 진정한 가치의 실체성이 사라진 틈을 축적이라는 탐욕의 발현이 메꾼다. 이쯤에서 오늘도 혁신의 전차에 올라타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왜 혁신하는가?

 

혁신이라는 게 이따위 것들이었다면 그것은 우리를 갈아 넣은 성장과도 바꾸어 쓸 수 있고우리를 씹어 삼켰던 '열정'으로도 바꿔 쓸 수 있다. 혁신은 우리 형, 누나, 동생들 번아웃의 공범이다. 주범일지도 모른다. 성장 이데올로기는 자본의 숙명이다. 그 중심에 세계화와 혁신이 있는데 자본의 입장의 숙명적 세계관이 역으로 지금 우리를 옭아매는 에반스 매듭이 되어있다. 나는 얍샵하게 빠져 나왔다. 몸은 비록 월급쟁이 정체를 벗지 못했지만, 누군가 침을 튀기며 '혁신'을 말할 때 코웃음 친다. 다만, 그것을 개인적으로 사용할 때는 개별 인간의 자유이므로 나는 간섭할 수 없으며 의견조차 낼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어제보다 나아지려는 담금질과 무두질을 개을리하지 않는다. 혁신이라는 단어의 사용이 문제되는 건 오로지 그것의 자본주의적 사용에 있다. 그 장면이 감지될 때, 그것으로 돌진하는 사람들을 볼 때, 싫으면서도 억지로 끌려 다니는 사람을 대면할 때, 나는 이제 어지간하면 소모적 삶으로의 적극적 이행을 멈추라 권고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승리로서 끝나선 안 될 일이다. 그렇지만 '대충 살아라'고 노래하고 다니면서도 대강 사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힘들다는 것을 점점 알아간다.

 

, 글에 쓸데 없는 사족과 오지랖이 난무하는 걸 보니 이제 아끼던 이 편지글도 그만둬야 할 때가 온 듯 하다.


 

IP *.77.66.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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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23 09:50:29 *.78.110.48

공감 300% 입니다.


기획팀장으로 근무할 때

하고 싶은 업무를 예술의 경지로 올려놓고 싶어서

노력했던 수많은 시간들......


협회지에 기고했던 컬럼들이 결국은

경영자의 시각과 마인드를 내재화한 표출이었다는 깨달음


혁신과 성장 이데올로기, 자본의 숙명, 

번아웃..프로세스

적당히 벌어서 아주잘 살자....라는 결론 


수정...공감 천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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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29 09:51:13 *.161.53.174

공감 천프로는 처음 받아봅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께서 보내주신 노래 '하루'는 들으면 들을수록 빨려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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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24 18:18:44 *.169.227.25

스포츠는 서울 올림픽 때문에 세계화라는 말이 나오기 전부터 세계화를 시작하고 있었죠 ! 

이제 쫓아가는 입장이 아니라 지키는 상황에서 다른 각도로 생각하고 대응하고 관리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세월' 이라는 개념은 '시간' 이라는 개념으로 대체되고 지식과 정보는 찰나의 분초를 다툽니다. 

 그 과정이야 어떻든,,, 

마치 다양한 스타일의 검법(fencing style)이  하나의 목적에 귀착되듯이...  

 모든 다양한 삶은 '일생' 이라는 단 하나, 그리고 한 번 뿐인  인생 행로를 거치기 때문에...  

늘 승자와 패자가 있고 옳은 자와 그른 자가 있었으나,  문제는 누가 진정한 승자이고 옳은 자인지 분명치가 않습니다.

아마도 인간사,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 없고, 오늘도 되풀이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향해 칼날을 휘두르는 '혁명'이든 스스로를 거듭나게 하는 '혁신'이든 아주 오래 전부터 늘 거기 있어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자신을 그저 가장 쉽지만 또 다른 한편 가장 어려운  거기 '있는 그대로'  오늘을 살다 가는 (까르페 디엠)  존재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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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29 09:56:27 *.161.53.174

맞습니다, 선배님. 몸으로 자득하는 공부가 세상에서 최고입니다. 

몸을 직접 단련하며 수련과 공부를 이어가는 분들에게 혁신이나, 철학 같은 것들은

하잘것없고 거추장 스러울 뿐이지요.  

몸받고 태어난 인간에게 몸으로 하는 공부에 비길 수 있는 건 없을 것 같습니다. 

훗날 만나뵙게 되면, 부디 저에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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