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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18일 12시 28분 등록

종종의 종종 덕질

 

사랑과 자유를 위해 No할 수 있는 용기, ‘옷소매 붉은 끝동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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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사진 소개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존재를 느끼지만 닿을 수 없는 두 사람, 아니 냥이의 모습은 실은 제가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드라마의 가장 애틋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거든요. 창호문을 사이에 두고 갇혀 있는 왕세자 이산과 이산이 좋아하는 시경의 귀절을 읽어주며 그 곁을 지키는 궁녀 성덕임의 원샷 말입니다~ㅋㅎ 그러기엔 집 안 소파 위에 고이 식빵을 틀고 앉은 왕세손냥에 비해 창밖의 성덕임 궁냥이가 넘 후덕한가요…^^;  


암튼 얼마 전 종영한 옷소매 붉은 끝동을 보셨겠지요들? 안 보셨으면 당장 보십시오! 진짜 너무 대박 재밌단 말입니다(근데 끝났어요ㅜㅠ). MBC가 정말 간만에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찍은, CJ왕국과 넷플릭스에 완벽하게 밀린 2021년 공중파 방송 드라마들 중 정말 막판에 왕년의 드라마 왕국 MBC의 체면을 살려준 수작이었지요. 사도세자의 아들로서 비극과 트라우마 속에 왕위에 올라 조선 왕조 500년에 남은 성군이 된 정조 이산과 그의 일생의 사랑이었지만 자신을 지키고자 후궁이 되기를 거부했던, 그러나 결국은 의빈이 되어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궁녀, 성덕임의 이야기랍니다. 사실 정조와 의빈의 이야기는 과거 이서진과 한지민이 주연을 했던 드라마 이산을 보셨던 분들은 다들 알고 계실 거예요. 하지만 주체가 되는 시점이라는 측면에서 무려 15년의 시간 차를 두고 제작된 두 드라마는 아주 대조적인 선택을 합니다. ‘이산은 제목 그대로 조선왕조 500년 사에 남을 성군 정조 이산을 위한 이산의 이야기였다면, ‘옷소매는 어디까지나 가늘고 길게 잘 살고 싶었던 궁녀 성덕임의 이야기거든요.   


저는 조선역사 덕후는 아니고, 드라마 이산을 보지 못했던 터라 정조와 의빈의 사연도 새로웠지만, 이 드라마가 다른 면에서 진짜 진짜 흥미로웠어요. 그리고 이미 많은 분들이 이 드라마의 특이점에 대해 다뤄 주셨죠. 이 주체적이고 독보적인 조선 여성 캐릭터에 대해서 말입니다. ‘옷소매의 주인공은 단연코, 정조 이산이 아니라 궁녀 성덕임입니다. 투톱 배우가 등장하는 드라마는 대개 양자의 시선을 오가며 드라마를 쌓아 올리는데, ‘옷소매도 물론 그렇긴 합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운명을 바꿔 놓는 큰 사건들의 줄기를 만드는 인물은 이산이 아니라 매번 덕임이예요. 성덕임이 목격한 영조와 이산의 트라우마로 얼룩지고 벗어날 수 없는 혈연 관계, 그녀가 해석한 중전과 이산의 아슬아슬한 역학 관계, 또한 그녀가 알아차린 필요악 같은 측근이자 권력욕의 아이콘 홍국영과 이산의 애증서린 관계, 그리고 그걸 이용하거나 감싸 안으며 덕임이 행하는 일들이 사건의 큰 줄기를 바꿔 놓고 이산의 위치를 바꿔 놓습니다. 제 관찰로 적어도 이 드라마에서 이산이 성덕임에 대해 그런 시도를 하고 성공하는 부분은 성덕임을 후궁으로 만들 때 한 번 뿐이에요. 그 외의 모든 장면에서 성덕임은 이 모든 일들을 하고도 본인이 원하는 자리에 발을 굳건히 디디고 서서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습니다. 이때 그녀가 발휘하는 총명함과 통찰력은 물론, 예리한 현실 인식은 이산의 마음을 알면서도 십 수년 동안 후궁이 되라는 제안을 거부하는 결단으로 이어지지요. 후궁이 되는 순간 궁 안에 갇히고 왕의 가족이 되면서 궁녀로서 누려왔던 쥐꼬리만한 자유, 직업인으로서 자긍심, 몇 안 되는 소중한 관계들이 모조리 파괴될 거라는 사실을 덕임은 직시합니다.


사랑과 자유, 상대와 나, 가족과 독립. 이것들은 모두 소중하지만 지금 이 시대의 여성들에게도, 사실은 남성들에게도 종종 끔찍한 선택을 강요하는 난감한 가치들입니다. 정조는 덕임에게 나는 너와 가족이 되고 싶다라는 고백으로 자신의 감정이 그냥 스쳐가는 변덕이 아님을 어필해요. 비극적으로 아비를 잃은 정조에게 가족의 의미는 남다릅니다. 그걸 덕임이가 모를 리 없잖아요. 저도 그 부분에서 그냥 넘어갈 뻔했다니까요? 덕임이에게 아 이젠 그냥 후궁이 되어 정조랑 잘 살란 말이다!!!’라고 소리 지르고 싶은 순간이었는데,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것은 정말 무시무시한 순간이었더군요. 가족이 된다는 것, 끈끈하고 든든하지만 어마무지한 압력으로 한 인간의 인생을 박살낼 수도 있는 것이 가족의 굴레아니겠습니까.   


결국 드라마는 덕임이 정조의 구애를 받아들이고 아이를 낳다 죽는 그 순간을 넘어 홀로 남은 정조가 그녀와의 시간을 반추하는 장면들로, 역사가 남긴 그 결말로 가게 둡니다. 그 뒤로도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사는 결말은 동화에나 등장하는 것이지요. 덕임은 결국 정조의 마음을 외면하지 못하여 후궁이 되었고 후궁의 가장 중요한 책무인 아이를 낳으려다 죽어요. 왕의 가족이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지요. 활기 넘치고 초롱한 눈빛과 잰 발걸음이 예뻤던 궁녀 덕임은 후궁이 된 뒤로 점점 생기를 잃고 친구도 잃고 아이까지 잃은 후 죽게 됩니다.


마침내 둘은 맺어져서 아들 놓고 딸 놓고 잘 살았다로 끝내지 않은 이 드라마가 저는 아주 아주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자유란 가족의 가치에 우선하는 것일까요? 모성과 결혼의 의무는 한 개인의 행복보다 신성한 것일까요? 덕임이 끝내 왕의 마음을 거절하고 궁녀로 살아갔더라면 그녀는 무사히 남은 평생을 원했던 대로 가늘고 길게, 잘 살았을까요? 역사로 증명된 인물의 운명에 가정이란 의미가 없겠지만, 그래도 상상해봅니다. 남녀의 관계가 가족으로만, 결혼과 부부의 사이로만 완성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현명한 덕임은 어쩌면 정조의 곁에서 가장 든든한 오른팔, 제조상궁이라든가 뭐 그런 자리에 올라 정치적 동지이자 친구로서 평생의 동반자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그런 남녀 사이의 우정과 사랑이 결혼으로 맺어지지 않았을 때 다다를 수도 있을 또다른 멋진 결말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은, 수백 년 전 조선시대는 물론 지금 이 시대에도 발휘하기 힘든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 이제 제 편지도 마무리를 지어야 할 시점인 것 같은데요. 저는 뭐든지 결말에서 시작을 되짚으며 마무리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런 관계로 이 드라마의 시작, 제목의 의미를 한번 들여다 보면요. ‘옷소매 붉은 끝동은 원래 궁녀의 옷차림을 말하는 것이라 합니다. 사실 제목에서부터 대놓고 이 드라마는 (물론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궁녀의 삶을 살고 싶었던 성덕임의 이야기라는 점을 천명하고 있지요. 정말 멋진 드라마였고, 그 시대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살았을 멋진 인물들을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2022년에는 가족의 의미와 나의 자유, 엄마의 책임과 나의 행복이 공존할 수 있다고 말하는, 부부의 의무보다 깊은 신뢰 관계를 감싸 안을 수 있는 한 인간과 그의 동반자가 당연한 현실을 보여주는 이야기를 만나고 싶어요. 아주 새롭고, 아주 재미있는 드라마가 될 것 같지 않나요?


그럼 오늘은 옷소매 붉은 끝동의 OST (네가 나의 기적인 것처럼 정세운)을 들려 드리고 이만 물러가렵니다


담 주에 뵈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5iBs-ClVg1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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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 you again입니다요~~~~


IP *.166.25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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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18 15:28:21 *.6.230.65

옷소매 붉은 끝동이 이런 재미난 드라마였군요. 다는 아니더라도 소개영상이라도 함 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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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18 17:27:59 *.166.254.112

생각할 거리가 아주 여러 방면에서 많은 드라마였어요. 여성과 결혼에 대해, 가족과 개인에 대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폭력과 억압에 대해서 특히 그랬고요. 그러다보니 '사랑이 모든 가치에 우선한다는 일반론이 과연 옳은가...'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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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18 16:02:14 *.138.247.98

조선시대 궁녀가 임금의 승은을 거절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팩트라는데 놀랐습니다.
그리고 정조 이산의 남아있는 글에서 성덕임을 사랑하고 죽음에 아파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어서 또한 놀랐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아름답게 소설로 지어낸 작가분께 감사드리고,
이것을 멋진 영상으로 옮긴 분들께 감사드리며,
다시 되살리게 해주신 '종종'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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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18 17:29:41 *.166.254.112

그죠? 그런 일이 가능했다는 게 덕임의 특출함은 물론 정조의 남다름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요. 생각보다 옛 사람들은 우리가 사실이라고 알고 있는 역사를 훌쩍 뛰어넘는 현실을 살았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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