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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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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13일 17시 57분 등록

[내 삶의 단어장]

엄마! 뜨거운 여름날의 수제비

 

  며칠 사이 목도리와 패딩을 장착한 사람들을 제법 본다. 계절이 변하는 시점이니 기온이 변하는 것도 당연하건만 늘, 계절이 변하는 즈음의 온도는 적응이 쉽지 않다. 작년 이맘때쯤엔 어땠었나 생각하니 코로나로 격리되어 있었던 게 기억난다. 바쁜 와중에 예기치 못한 코로나감염으로 마음은 한없이 불편하고 몸은 펄펄 끓기만 하던 때였다. 목이 아프다보니 음식은 삼켜지지 않고 식욕을 상실한 채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었던 때 내 방문을 여는 사람은 엄마뿐이었다.

몸이 아프면 만사가 귀찮아지고 괜스레 투정부리고 싶어진다. 오로지 엄마에게만. 몸이 아파서만 그랬겠냐만 엄마에게 행하는 투정이라고 말하면 그건 너무 가벼운 것 같긴 하다. 어떻게 보면 엄마와 딸의 관계야말로 톨스토이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 나오는 첫 구절의 완벽한 구현 아닐까.

  “행복한 모녀 관계는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모녀 관계는 제각각 다름으로 불행하다.”

  문제는 엄마와 딸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언어의 수위나 행동 패턴을 누구의 기준에 더 맞추어 행복한 모녀 관계의 전형으로 보고 있는가 하는 거다. 적당히 들어도 저건 독설이 아닐까 하는 정도의 말을 퍼붓는 딸에 맞서 조금은 티키타카해보지만 결국엔 일방적인 어머니의 배려 나아가 희생으로 마무리되는 것. 세대별 차이는 조금 반영된다 하더라도 말이다. 또한, 모녀의 대화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와는 다른 층위에서 이루어지기에 고부갈등이 있는 한국사회에서 모녀의 대화란 친구와의 대화 이상으로 말들의 향연이 거세어지기도 내용도 다양하지 않는가. 그 이후가 어떻게 되느냐를 따진대도 뒤끝이랄까 뒤탈이 없기도 하고.

  당혹스럽게도 이러한 전형성을 거론하며 나와 엄마 사이는 아주, 좋다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었다. 이런 정도야말로 모녀가 가지는 유대일 것이니 행복 아닌 다른 무엇이겠느냐고 하려던 생각이, 그렇게 내뱉으려는 말이 주춤거려진다. 내가 내뱉는 말의 수위가 아무리 덜해진다 하더라도 뒤따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점점 얕아진다는 것을 글을 쓰며 불현듯 깨닫게 된다. , 이 마음을 무엇이라 해야 하나.

  내 어머니는 참 눈물이 많은 사람이다. 그러고 보면 어린 날부터 엄마는 내 말에 7할은 울음으로 답했다. 못된 딸은 독설이라 생각지 않고 그냥 이라고 여기는데 엄마는 그 말에 심장이 상해서눈물 흘렸고 집을 나가 버리셨다. 짐을 싸서 어디 멀리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동네 한바퀴 돌며 한 시간도 안돼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딸이 보기 싫어서 밖으로 나가신 거였던가?!) 말이다. 엄마가 침대에 등 돌리고 누운 완고한 모습일 때면 서로 대치상태가 되기도 잠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거나 어느 순간 방에서 보이지 않게 되면 내 마음 또한 철렁하곤 했다. 지금보다 어린 시절엔 가지지 못한 것에,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울분이 많았으니 그런 것들을 한번씩 엄마에게 풀어냈을 거고 자라면서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엄마를 제법 다그치기도 했다. 요즘 말로 나는 팩트라고 우길 테지만 아마도 엄마에게는 팩트폭행으로 인해 가슴 저린 시간이었을 테다. 그렇게 엄마와 나는 오랜 시간을 지나왔다.

내가 그렇게 세뇌하고 있지만, 모녀 관계가 행복해 질 수 있었던 건, 그렇다고 치자면, 그건 수제비 때문이다. 그 뜨겁고 물컹한 수제비!

  수제비는 한여름 내 생일날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음식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서 밀가루 반죽을 밀어내어 곱게 칼국수를 만들어내던 때도 엄마는 듬성듬성 밀가루를 썰어 내겐 수제비를 만들어 주었다. 그게 초등학교 입학 전의 기억이니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수제비를 좋아했었던 모양이다. 세월이 흘러 무수한 음식이 생겨나고 먹어보기도 했지만 내게 여전히 수제비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된 건 음식 자체의 맛이 아니라 결국 음식이 불러일으키는 기억과 거기서 기인하는 감정 때문이다. 엄마도 나도 한바탕 울고 난 후 정적을 비트는 소리가 누구에게서 먼저 나오는지는 그때그때 다르다.

 “수제비 먹을래?”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는 이렇게 말한다.

 “엄마, 수제비 해줘!”

  오랜 시간 동안 엄마와 나와의 싸움 끝에는 항상 수제비가 있었다. 우리만의 화해의 신호이자 미안함의 다른 말이 바로 수제비였다. 변하지 않는 건 어쨌든 나는 해달라고 말하고 엄마는 해준다고 말한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도…….

  그리고 오늘 이 글을 쓰며 또한 사랑의 다른 말이었음을 알아간다. 늘 수제비는 엄마가 만들어주었다. 코로나로 아무것도 먹지 않았을 때에도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여보낸 음식 또한 수제비였다. 그날 수제비를 먹으며 나는 코로나를 버텼을 테고, 딸에게 수제비를 만들어 주던 엄마는 아픈 내색하지 않고 있었지만 딸로부터 코로나를 옮겨 받은 상태였던 것 같다. 내가 그 상황이었으면 반죽에서부터 시간이 걸리는 수제비를 만들었을까.

  우리의 기인 화해의 단어인 수제비를 먹은 날이 오래된 것 같다. 몸이 아프신 엄마를 돌보기보다 일에 치여 바쁨에 다른 것을 보지 못하고 있는 나여서 더 그렇기도 하다. 한바탕 울더라도 우리가 그 어떤 이야기라도 다시 나눌 시간이 그립고, 한편으로는 어떤 사안을 가지고 힘차게 으르렁거리고도 싶다. 지금, 우린 사랑하는데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마음 하나 전할 길 없이 시간을 내버리고만 있는 것 같다. 마냥 내게는 엄마일 것 같던 엄마는 계속 할머니를 닮아가고 있다. 내가 세월을 어쩌지 못하지만, 수제비를 먹자고 엄마에게 말을 계속 해야겠다. 이 삶의 허덕임 속 정적을 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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