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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7일 23시 37분 등록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혼자서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라는 시입니다. 
러시아의 소설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과학자는 우주의 한 점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보고, 시인은 시간의 한점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느낀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대추 한알로부터 볼 수 있는 것은 사람에 따라 다른 거죠. 우리는 붉은 대추가 익어 있는 결과만을 봅니다. 결과를 만들어낸 인고의 시간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대추 한알이 그냥 쉽게 익는 것이 아닙니다. 무서리 내리는 몇 밤, 땡볕 두어 달, 초승달 몇 날...제대로 여물기 위해서는 숙성과 담금질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자연의 이치가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인간만이, 자신만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입니다. 
사과가 떨어지는 이유는 만유인력의 법칙 때문이 아니라, 가을이 왔기 때문입니다.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봄이 옵니다.
우리는 저절로 가을이 오고 봄이 온다고 생각하지만, 뜨거운 여름이 있었기에 결실의 가을이 오고, 차가운 겨울이 있었기에 생명이 움트는 봄이 올 수 있습니다.

저는 20년째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저를 그토록 힘들게 했던 소프트웨어의 이슈들과 버그들이 지금의 제 실력을 결정지은 것 같습니다. 저를 죽이지 못하는 것들이 저를 강하게 만든 셈입니다. 이슈와 버그 때문에 괴로워하는 후배 개발자들에게 꼰대 소리를 들어가면서 항상 얘기하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 이 힘든 오르막길을 오르느라 두터워진 네 허벅지는 앞으로 왠만한 오르막길은 다 평지로 만들거라고요. 김훈 선생은 인생에서 모든 오르막길과 모든 내리막길은 정확하게 비긴다고 얘기한 바 있는데요. 여기에 덧붙여 오르막길에 올라보지 않으면 쾌속하는 내리막길도 없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삶과 그 삶 속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을 잘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계절이 순환하듯 이것들은 삶의 한 단면들일 뿐이니까요.

저는 지금 어떤 계절에 서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봄의 절정이 아스라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곧 따가운 여름이 올 것입니다.
누군가 기다리는 그 가을은 올 것이고, 겨울은 차가울지라도 다시 봄이 찾아올 것입니다.
계절은 순환하지만 대추 한 알이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습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이 시간들을 온전히 살아내야 하는 이유입니다.

IP *.114.255.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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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8 17:46:23 *.169.227.25

삶이 그저 무난하기만 했던 어떤 70 대가  하던 말이 기억납니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순탄하게 자라고 평범한 직장 생활과 무난한 결혼 생활 그렇게 말년에 이르렀는데 죽음을 앞두고 삶을 되돌아보니 허망하다고 ...  

그렇게 보면 전 지금 또 다른 행복을 느낌니다. 보통은 일생에 한두번 있을까 말까하는 순간들을 수도 없이 살고도 아직 숨이 붙어있으니 감사하죠. 

그저 아쉽다면 반대로 그러한 강한 체험들 때문에 일상의 평범함 속의 삶이 주는 소소한 행복에 둔감해져서 때때로 아내에게 감정무디고 재미없는 남자라고 ....   

전 그저 함께 할 수 있는 하루가 감사하기만 한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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