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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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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2일 10시 09분 등록

 

# ‘선비과자 먹어라’

어렸을 적 아버지는 자주 새벽에 자식들을 깨우곤 했다. 셈베인 과자를 그 당시엔 선비과자라고 불렀다. 일어나 시계를 보면 새벽 2시, 거나하게 술이 취한 아버지는 자는 아이들을 깨워서 자신이 사온 빵과 과자를 먹는 것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거 참, 대놓고 말은 못했지만 괴로운 일이었다.

 

# 아주 어릴 적, 부산에서 보트를 타고 정박해 있던 커다란 배에 갔었다. 해군을 나온 아버지는 전 세계를 누비던 외항선의 1등 항해사였다. 낮에는 나침반과 태양으로, 밤에는 북극성으로 배의 위치를 잡았다. 세계여행을 공짜로 하는 기쁨도 있었지만 외로움은 견디기 힘들었다.  1년간 배를 타고 한국에 돌아오면, 1개월간 집에서 놀다가, 다시 1년 동안 배를 타고 가는 생활이 30년 동안 계속되었다. 어느 여름 새벽, 문득 잠에서 깨었을 때,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하는 말이 아직도 생각난다. “배 타기 싫다. 교도소에 가는 기분이야.”

 

# 나이가 들어 더 이상 배를 탈 수 없는 나이가 되어서야 그곳을 빠져 나올 수 있었고 직업을 구해야 했다. 그런데 어떤 직업이든 배겨나질 못했다. 경비도 오래 못했고, 정수기 판매 대리점의, 명함만 상무인 일도 오래 못했다. 가족들이 더 죽을 맛이었다. 주위에서 뱃사람은 바닷바람을 쐬기 때문에 정착을 못한다고 수군거렸다.

 

 # 지금 아버지는 치과 기공소에서 근무를 하신다. 기공소에서 제작한 이빨들을 치과로 배달해 주는 일이다. 처음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배달하는 맛에 그 일을 좋아했다. 바람을 마음껏 맞을 수 있었던 탓이 아닐까? 벌써 20년이 되었다.

 

# 어느 날인가, 아버지가 남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60년대에 아버지라는 존재가 요구받는 무거움을 이기지 못하고 술로, 욕으로 풀어보려 했던 늙은 사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욕구를 마음껏 분출하지 못한 한 남자의 불쌍함도 느껴졌다. 그때부터 였다. 소통이 어려운 가족과 아버지와의 커뮤니케이션은 대부분 내가 맡아서 했다. 똑같은 말을 해도 아버지가 내 말은 잘 들어주었다. 나는 졸지에 언어변환체가 되어 형제들의 의견을 아버지에게 전달하고 아버지의 속마음을 전하는 커뮤니케이터가 되기도 했다.   

 

# 할아버지는 집을 짓는 대목수 였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손기술이 좋았다. 외로운 뱃생활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만든 작은 배 모형은 감탄을 자아낼 만 했다. 공방을 보면 다니고 싶고, 못질도 못하면서 건축가가 되고 싶은 강한 욕망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면, 내가 목수의 피를 이어받았구나..하고 고개를 끄덕거릴 때가 있다. 아까운 손기술을 활용하는 것인지, 지금은 자전거를 조립해 가끔식 타라고 가져다 주신다. 그 자전거를 타고 집에서 전철까지 매일 출퇴근을 한다.

 

# 젊어서는 돈을 물 쓰듯 하더니, 지금은 차비를 아껴서 돈 천원을 절약하려 애쓴다. 그렇게도 어머니 속을 썩이더니 이제는 어머니가 의지하는 남자가 되었다. ‘세상 참 공평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위암수술과 무릎수술, 협심증 등 노화에 따른 질환과 친구들의 죽음이 아버지를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79 세에 빵모자 쓰고 엠피쓰리 양귀에 꼽고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어 대는 아버지를 보면 갑작스레 걱정이 몰려든다. ‘야..나도 저러겠구나!!’

 

# 사무실에서 친구와 가벼운 몸놀이를 하면서 약을 올렸다. 그냥 심심해서 그랬단다. 친구는 몹시 화가 났다. 문제는 아버지 친구가 유도사범을 했던 무도인 출신이라는 것이다. 약이 오른 그는 아버지를 유도의 기술로 바닥에 메다꽂았고, 아버지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사무실에서는 놀라서 119를 불렀고, 119가 도착한 순간, 아버지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돌려보냈다. 뇌 CT를 찍었더니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나중에 한마디 했다.

“아버지! 그 나이에, 그러고 싶었어요?

 

#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서 갈비뼈를 다친 아버지가 입원을 했다. 어른 남자 둘이서 특별히 할 애기도 없고, 그렇다고 예쁜 여자 얘기를 할 만한 관계도 아니어서, 가계도(Faimily Tree) 를 그려보았다. 아버지의 아버지는 누구? 아버지의 할아버지는 누구? 고모의 자식들은 누구? 그리다 보니, 한 나무에서 이렇게나 많은 열매들이 열린다는 것이 무척 경이로왔다. 가계도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이게 ‘오래된 미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네, 건강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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