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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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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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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1일 14시 17분 등록

letter_from_croatia.jpg

하늘에 구멍이 난 듯이 퍼붓는 빗소리에 잠이 깨었습니다. 지금 시간은 새벽 3시입니다. 저는 지금 동유럽의 가장 아름다운 해변 휴양지로 알려진 크로아티아의 오파티야(Opatija)에서 여러분에게 화요 편지를 씁니다. 크로아티아에 온 지 오늘로 6일째입니다. 오랫동안 꿈꾸었던 일이 현실이 된 지금, 저는 더할 수 없이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찬란한 고대 로마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크로아티아의 여러 도시들은 빼어난 자연경관과 더불어 저의 마음을 모두 빼앗아버렸습니다.

작년 뉴질랜드 캠퍼밴 여행에 이어 올해도 잊지 못할 변경연의 여름 여행을 위해 고심 끝에저는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를 최종 여행지로 선택하였습니다. 크로아티아는 축구 외에는 아직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유럽 사람들에게는 오래도록 최고의 여름 휴양지로 사랑을 받아온 곳입니다. 오기 전에도 그랬지만, 이곳에 와서는 더욱 이번 선택이 최고의 선택이었음을 자부하게 됩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제가 여행에 열광하는 이유는 계획된 스케줄 사이로 계획되지 않은 해프닝들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혼자 하는 여행이라면 저는 최대한 계획은 줄이고 온갖 해프닝을 향해 문을 열어두는 편입니다. 그러나 그런 해프닝을 단체 여행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런 점에서 변경연은 확실히 다른 집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부님을 비롯해 이 집단의 부지기수가 그런 해프닝을 자청하는 로맨티스트들이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어제도 우리에게 잊지 못할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시베닉(Sibenik) 근처의 보디체(Vodice)라는 예쁜 해안 마을에서 하루를 머문 우리들은 크르크(Krk) 섬을 향해 달리고 있었습니다. 구불거리는 해안선을 따라 아름다운 풍경들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졌습니다. 버스가 제대로 속도를 내지 못해 예정에 비해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습니다. 그것이 문제될 것은 없었습니다. 다만 우리들은 배가 고팠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보아도 주변에 49인승 대형 코치(coach)를 세우고 그 인원이 다 밥을 먹을 만한 식당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우리들은 풍광 좋은 곳에 버스를 세우고 비상 식량으로 가져간 햇반과 컵 라면 등을 모두 해체하기로 하였습니다.

‘아 저기다!’ 모두가 이구일언(異口一言)으로 외친 곳은 칼로박(Karlobag)이라는 작은 해안 마을 입구였습니다. 버스에서 내린 우리들은 밥 먹을 최적의 장소를 헌팅하다 나무 그늘이 시원해보이는 동네 어귀의 한 식당을 발견하였습니다. 인심 좋고 서글서글한 안주인 마리아와, 수줍어하면서도 사람을 좋아하는 바깥주인 네노가 운영하는 그 식당은 네노 할머니가 시작했다는 아주 작고 소박한 곳이었습니다. 마리아와 네노는 갑자기 들이닥친 이방의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공간을 사심 없이 제공하였습니다. 그곳에서 느긋한 점심을 즐기던 하이코와 사비네(10년째 여름 휴가를 칼로박에서만 지내고 있다는 독일인 커플)까지 전자레인지에 햇반을 데우고 물을 끓여 옮기는 일을 도왔습니다. 식당의 음식을 팔아주는 것도 아닌데 그들은 맘껏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우리는 한 가족처럼 한국 음식을 펼쳐놓고 그들과 함께 먹었습니다. 네노는 컵라면과 햇반, 심지어는 김과 고추장 튜브까지 자기에게는 최고의 기념품이라며 식당의 진열대에 정성껏 올려놓았습니다. 그들은 그곳의 한 저널리스트가 신문에 연재한 한국에 대한 기사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우리는 어느 날 그들의 가게에 단체로 등장하게 된, 그 뉴스가 전한 ‘실물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들 역시 우리에게는 그러하였습니다. 크로아티아가 이제 우리에게는 더 이상 낯선 국가가 아니듯, 그들에게도 대한민국은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갈 것입니다.

밥을 못 팔아준 대신 우리는 마리아네 식당의 병맥주 칼텐베르그를 다 동내버렸습니다. 여러 날 만에 맛본 한국 음식과 그들이 베푼 인정으로 한껏 포만해진 우리는 최고의 기분으로 내륙과 크르크 섬을 잇는 다리를 건넜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고공 위의 거대한 다리는 마치 천국으로 향하는 문 같았습니다. 여행은 바로 그런 다리가 아닐런지요. 사람과 사람을 잇는 아름다운 다리 말입니다.

우리는 내일 슬로베니아 율리안 알프스 지역으로 올라갑니다. 톨민과 코바리드, 블레드와 보힌 호수를 지나 류블랴나에 닿는 동안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마음을 열고 새로운 해프닝을 기다릴 뿐입니다.


IP *.96.1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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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09.08.12 01:54:47 *.255.183.217
누나, 멋진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네요.
다들 보고 싶네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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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윤
2009.08.12 09:18:51 *.20.125.86
사람과 사람을 잇는 아름다운 다리........................, 오늘도 그 아름다운 다리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 해야 겠습니다.  멋진여행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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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골반
2009.08.15 23:38:25 *.234.76.197
부지런한 한숙님 !  피곤한 일정에 잠을 쪼개어 오파티아의 편지를 올려
편지의 답장을 씁니다.

여행에서 이런 아름다운 사람들과의 만남, 언어를 뛰어넘는 공감,
친절, 내 사고의 사각 틀을 둥글게 바꾸어 놓는 대화, 사랑의 교감이
어떤 자연의 풍광이나 건축물의 양식 보다도 아니 확인을 위해
찍는 사진 보다도 더 따듯하고 뚜렷하게 남아 가슴이 울렁이는 것 같아요.

이번 여행의 기획도 환상적이였지만 따르는 군단의 긍정 에너지도
만만치 않게 좋아, 가는 곳 마다 생각지도 못 한  짜릿함이
진하게 남아 지금도 미소 짓게 하네요.

정말 수고하셨구요..... 당신의 추진력에 감동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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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9.08.16 22:20:24 *.8.184.167
변경연의  가인!
국제적인 휴머니즘과 카리스마를 지닌,
그녀와 함께 하는 변.경.연. 연구원 해외연수 여행은 땡볕의 한여름 모험과 탐험을 동반하며 시원하게 펼치는 휴양과 안식의 신바람 대축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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