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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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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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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14일 07시 45분 등록

인간은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때, 가장 행복하다.

- 빅토르 위고-

 

“오렌지가 8개에 오천원, 얼마 안 남았어요.”

“조선오이가 3개에 이천원, 참외가 떨이요. 떨이..”

“아줌마, 어여 와! 구경하고 가”

 

시장은 복잡합니다. 시끄러운 야채가게와 과일가게를 지나니 수산물 가게에는 갈치 고등어, 생선들이 널려있고, 한쪽 좌판에는 속을 훤히 비워놓은 닭들이 즐비합니다. 홀딱 발거벗은 닭처럼 시장은‘적나라함’을 느끼게 합니다. 백화점처럼 우아하고 세련되게 욕망을 자극하는 법이 없습니다. 포장을 예쁘게 하지도 않습니다. 손님을 불러 모으는 시끄러운 호객행위, 값을 흥정하는 상인과 손님의 실랑이, 물건을 잔뜩 실은 트럭의 경적소리와 소란스러움.. 인간의 욕망이 날 것 그대로 드러나는 적나라함과 활기야말로 사람사는 느낌을 고스란히 전해 줍니다. 시장에서 일하는 박여사의 남편과 만난 곳은, 복잡한 골목 뒤의 허름한 백반집 입니다.

 

60 세의 박 여사는, 3개월 전 집 근처에서 산책을 하다가 갑작스런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주택가에서 산책을 하던 두 명의 중년 여인을 봉고차가 뒤에서 들이받았습니다. 한 여인은 척추와 다리를 다쳤고, 박 여사는 넘어지면서 뇌를 크게 다쳤습니다. 근처 병원에 갔지만, 뇌수술 장비가 없어서 저희 병원으로 오게 되었고 응급으로 뇌출혈 수술을 했습니다. 수술은 잘 되어서 생명은 건졌지만, 아직 의식은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박여사 부부는 신앙이 깊은 가톨릭 신자였고, 친분이 있던 호스피스 후원회장님의 요청으로, 박여사님의 남편과 저녁을 먹는 자리였습니다.

 

얼큰한 찌개에 소주 한잔이 들어가자, 그가 말했습니다.

“같이 집 앞에 산책을 나갔다가 동네 아주머니를 만났지. 그 아줌마랑 할 얘기가 있으니 산책을 더 하겠다고 해서, 나는 내 볼일 보러 갔지..생각할수록 그게 후회돼..같이 손을 잡고 나갔으니, 끝까지 책임을 졌어야 하는데...”

 

그 후회 때문이었을까요? 그는 하루에 세 번씩 병문안을 왔습니다. 새벽에 출근 전에 오고, 점심시간에 한번, 저녁에 퇴근하면서 병실을 방문한 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거래처와 점심 약속이 있어 빠지는 일은 있었지만, 3개월 동안 아침과 저녁 두 번은 빠지는 일이 하루도 없었습니다. 신기했습니다. 금슬 좋은 부부를 만나기가 하도 힘든 세상이라 신기했고, 더 신기한 건 의식이 없는 박여사가 남편이 올 때마다 몸으로 반응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바라는 것이 있냐고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제가 사고 후에 하느님께 기도 드린 게 있습니다. ‘하느님! 저 사람을 온전하게 보내달라는 청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생명만 지켜 주십시오. 그 다음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했지요. 자식들에게도 얘기했습니다. 살아만 주면, 산으로 데리고 가든, 어떻게 하든 니들 엄마는 내가 살려 놓을 거라고...

 

그는 큰소리로 힘주어 말하지 않았습니다. 무심하고 선한 표정을 지으며 조용한 목소리로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의 말이 단순한 바람이나 희망사항으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뇌 수술로 머리를 삭발했지만, 박여사는 갸름한 얼굴에 콧날이 오똑한 미인입니다. 결혼한 지 올해 43주년 이라고 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금슬이 좋으냐고 묻자, 고향도 같고 어려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같이 다녔던 첫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거친 남자의 애틋한 순정이 느껴졌습니다.

 

병실을 방문했을 때, 간병을 하고 있던 박여사의 올케가 환자의 몸을 옮겨주면서,

툭 내뱉듯이 던졌던 한 마디가, 그제서야 떠올랐습니다.

 

“아이고야. 우리 언니! 몸은 이래 힘들어도, 행복한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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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4 10:59:39 *.166.205.132

콧끝이 찡합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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