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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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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13일 01시 02분 등록

올해 여름 이탈리아 로마로 향하면서 한 사람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그의 작품을 보며 미켈란젤로를 느끼고 싶었습니다. 바티칸(Vatican)의 성 베드로 성당(St. Peter’s Basilica)에 있는 ‘피에타(Pieta)’도 그런 작품 중 하나였습니다.

 

고려대학교 김화영 명예 교수는 <행복의 충격>에서 젊은 시절 방문한 바티칸에서 “그리도 오래 찾다가 결국은 못 찾아 실망하고 마는 줄 알았던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나는 성당에서 밖으로 나오다가 참으로 우연히 발견하였다”고 썼습니다. 한 여인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따라가다가 피에타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나는 그보다 쉽게 피에타를 만났습니다. 피에타는 멀리서도 한 눈에 들어왔지만 이 작품을 생생하게 느끼고 싶다는 바람을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한 눈에 알아차렸습니다. 조각이 방탄유리 속에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관람객과 작품의 사이가 이렇게 멀지는 몰랐습니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운 좋게 가장 앞쪽에 섰음에도 조각상의 앞모습만 볼 수 있을 뿐, 옆모습은 물론이고 세세한 부분은 볼 수 없었습니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인 ‘천장화’와 ‘최후의 심판’을 보기 위해 챙겨간 망원경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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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 작품은 놀라웠습니다. 많은 사람들로 소란스러운 상황이었음에도 나는 피에타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아니, 피에타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하는 게 더 맞을 것입니다. 책에서 읽은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크기 비례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묘하게도 피에타를 보며 기쁨과 슬픔이 교차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리를 비켜주기 전까지 이 작품에서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사진가 로버트 훕카(Robert Hupka)의 피에타 사진집을 구입한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바티칸에서도 한 곳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사진집입니다. 피에타를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하고, 세세한 부분까지 담은 이 사진집은 로마 여행에서 건진 최고의 보물입니다. 멀리서 본 실물에 생생한 사진이 더해지니 뭔가 확실한 느낌이 왔습니다. 피에타는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전반적인 느낌, 예수와 성모의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을 사진집을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성모의 표정은 순진무구한 동시에 처연해 보인다. 반면에 입을 반쯤 벌리고 있는 그리스도의 얼굴은 오랜 고통으로 인해 지쳐 있다”는 어떤 책의 글처럼 멀리서 보거나 밑에서 올려다볼 때 예수를 감싼 분위기는 고통이고, 성모의 그것은 비탄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하늘을 향해 벌린 성모의 왼손을 따라 그리스도의 시신 위로 시선이 내려오면 정해진 운명을 어찌 할 수 없는 망연함에 가슴이 아프다”는 그의 말은 틀렸습니다. 위에서 아래를 향해 찍은 피에타 사진 속 그리스도의 표정은 편안한 미소입니다. ‘다 이루었도다.’, 바로 그것입니다. 정면에서 보면 어색하다는 하느님의 아들과 어머니의 구도 역시 위에서 보면 조화로웠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시선은 신의 관점을 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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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Robert Hupka, <Michelangelo Pieta>

http://www.la-pieta.org 에서 Hupka의 사진집의 모든 사진을 볼 수 있음

김화영 교수가 알퐁스 도데의 단편소설집 <풍차방앗간 편지>에 나오는 풍차가 있는 곳에서 느낀, ‘이 삶의 지극한 기쁨과 지극한 슬픔이 마주치는 곳’을 나는 피에타에서 느꼈습니다. <행복의 충격>을 읽으며 “영혼의 깊숙한 곳에서 일찍이 꿈꾸어본 일이 없는 풍경이나 공간을 우리는 참으로 볼 수 없다”는 말을 여러 번 음미했습니다. 피에타를 보며 감동한 이유를 알려 주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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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화영 저, 행복의 충격, 문학동네,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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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3 15:46:06 *.136.209.2

올해 여름, 저 역시 이탈리아 로마에 있었습니다. 기대했던 미켈란젤로의 작품들을 드디어 보게 되었지만 큰 감동은 받지 못 했습니다.

 

 다만 미켈란젤로의 작품들을 보고나서 다른 작품들로 눈을 돌리자, 모든 작품들이 '오징어'로 보이는 부작용이 있었습니다. (마치 영화 '아저씨'의 '원빈'를 본 여자친구의 눈에 옆에 있는 남자친구가  '오징어'로 보이는 것과 같은 효과입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처음부터 방탄 유리에 둘러싸여 있던 것은 아니었지요. 1970년대에 한 헝가리 조각가가 망치를 들고 난입하여 조각품을 훼손한 뒤부터 유리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저는 '피에타'의 감상보다는 망치를 들고 난입한 조각가에게 관심이 갑니다. 자신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천재와 대상에 대한 좌절과 분노, 그와 같은 것들이 그를 짖누르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괴테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하죠. '미켈란젤로가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애기를 들었을 때 안도했다.' 자신은 도저히 표현해 낼 수 없는, 만들어 낼 수 없는 작품을 다른 누군가가 세상에 내 놓았을 때, '천재'를 보게 될 때 엄청난 질투에 휩싸일 것입니다. 그 엄청난 질투를 어떻게 스스로 소화해야 될까요?

 

요즘  '디자인'이 어렵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보기 좋고 갖고 싶은 것들을 만들어 내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겠죠.

'경쟁'이 아닌 '본질'을 찾고자 합니다.

 

 

승완형! 좋은 애기 들려줘서 고마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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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6 00:02:42 *.34.180.245

성우야 그대도 피에타를 봤구나.

그대가 말한 것처럼 피에타에 망치질을 한 인간은 정신질환을 가진 라즐로 토스라는 30대 젊은이야.

1972년 5월 그는 성당에 들어와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다’라고 울부짖으며 십여 차례 망치로 조각을 내리쳤지.

 

나는 궁금했어. 왜 하필 피에타였을까?

성 베드로 성당 안의 작품 대부분은 걸작인데,

그는 어째서 그 많은 명작들 중에서 ‘피에타’를 공격한 것일까?

 

몇 가지 해석이 있지만 내가 보기엔,

아마도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은 정신병자에게도 강한 정감을 안겨주었던 것 같아.

거기에 더해 “사물을 보는 나의 눈은 나의 밖에 있는 사물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동시에 본다”는 말처럼

그 안의 신성까지도 일깨웠을 지도 모르지.

그럼에도 그 강렬한 감정으로 망치를 들 일은 아니지.

그 정열과 에너지를 스스로를 갈고 닦는 데 썼다면

그는 진정으로 치유되었을 수도 있는데 말이야.

어리석은 자는 기회를 파멸로 전락시키는 재주가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

 

나도 요즘 디자인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

'생활 명품'이란 단어가 자주 떠오르는 요즘이야.

관심을 가지고 보고 물건을 써보니,

내가 산 물건들에는 디자인과 기능,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겸비한 물건은 별로 없는 것 같아.

내가 그런 물건을 볼 수 있는 눈이 없기 때문인데,

나도 앞으로 그런 눈을 키워보려고 해.

 

성우 댓글이 반가워서 내가 말이 많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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