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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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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20일 00시 35분 등록

외부 강의를 마치고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길에 아는 분이 소개한 어느 사설 박물관에 들러보았습니다. 언론에도 여러 차례 소개된 저명한 목공예가가 세운 박물관이라는 소개를 받았습니다. 박물관에 이르러 안내문을 보니 박물관장은 평생 나무를 다듬어 작품을 만드는 일에 헌신해 오신 분이었습니다. 박물관의 역사도 20년을 넘기고 있었습니다. 박물관의 주제는 불교였고, 관장이 만든 작품의 주제 역시 대부분 그러했습니다. 관장은 나무를 고르고 다듬어 작품으로 표현하는 일이 참 즐거웠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평생을 그 일에 몰두할 수 있었을까 싶었습니다.


박물관은 입장권을 사고 정원을 가로질러 걸으면 자연스레 전시관에 닿도록 공간이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정원 곳곳에 나무 공예작품이 놓여 있었습니다. 한편 군데군데 금속을 재료로 삼은 작품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또 현대인들로부터 조선시대의 인물들까지 흉상도 전시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무척 부조화하게 느껴졌습니다. 불교적 소재의 목각 작품과 목구조 건축물들, 금속을 써서 만든 외국에나 사는 동물 전시물들, 그리고 인물의 흉상들... 내부 전시실의 박물들 역시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긴 세월을 견뎌낸 불교적 유물을 수집하여 박물한 전시관도 있었지만, 전국의 유명 사적을 모조한 작품들도 무척 많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또 전혀 다른 주제와 성질로 창작된 다른 작가들의 공예작품들이 전시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그 역시 생뚱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정원과 전시실, 그리고 다른 공간까지 박물관 전체가 왠지 모를 부조화로 가득차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이 박물관이 지금 쇠락할 위기에 처했음을 직감했습니다. 곳곳에 배어있는 이질감과 불편함은 더 많은 것을 보여주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 느껴졌습니다. 더 많은 것을 보여주려는 시도는 도약을 위한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좋아하는 일을 오랫동안 꾸준히 즐겁게 해오다가 사설박물관을 여는 1차적 성과를 이루어낸 뒤, 관장은 한 단계 더 도약을 모색했을 것입니다. 전통의 문화를 보전하고 전수한다는 가치로운 영역의 일이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도약을 이루어 내고 싶었을 것입니다. 관장은 체험학습 방문객을 늘리기 위해서 목공예와 전혀 다른 장르의 공예를 체험과 전시 주제로 도입하고, 역사 공부도 겸하도록 하기 위해 모조 작품이나 역사적 인물들의 흉상을 포함하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그것이 군더더기가 된 꼴이었습니다. 비록 조금 가난하더라도 자신이 오랫동안 즐겁게 키워냈던 그 본질적 가치를 훼손하고 있었습니다. 양적 팽창을 통해 도약을 꾀한 것이 본래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지경에 이른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여우숲 역시 이런저런 조언을 듣기도 하고 스스로 고민을 하기도 합니다. ‘도로를 포장해야 한다... 인터넷에 광고를 해야 한다... 각 방마다 에어컨이나 냉장고를 설치해야 한다...’ 편의와 편리를 강화함으로써 도시 방문객들의 상식적 욕구를 채워야 한다는 조언이 가장 많은 편입니다. 여우숲 역시 지금부터 먹고살 수 있는 지속성을 확보하는 도약을 해야 합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장차 참여자와 지역 공동체에도 기여하기 위해서 또 다른 차원의 어떤 도약을 이루어야 하는 더 큰 과제도 안고 있습니다. 


오늘 나는 추락과 도약 사이에 어떤 분기점이 놓여 있는 걸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도약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물관에서 나는 그 공간이 도약하려면 더하는 것보다 덜어내야 할 것이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본래 천착하여 오랫동안 키워온 목공예 분야의 내공과 명성으로 정면 승부하려는 초발심을 회복해야 할 것 같다 느겼습니다. 여우숲에도 도약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당장의 손쉬운 선택이 아니라, 더욱 본질에 충실하여 깊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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