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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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2011년 7월 29일 08시 06분 등록

  
   단테 알리기에리는 고향 피렌체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서른 일곱 살에 고향에서 추방되어 20년 가까이 객지를 떠돌다 라벤나에서 죽었지요. 그 곳 성 프란체스코 성당 옆에 있는 황제과 성인들의 무덤들 사이에 '고향 피렌체가 줄 수 있는 영광보다 더 영예로운 사람들을 벗 삼아' 조용히 잠들어 있습니다.  추방은 사람을 소모시키지만 고도로 완숙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는 마뜩찮은 조건으로 피렌체로의 귀향을 제의 받자 아래와 같은 답신을 보냈습니다.

"그 어디에 있건 나는 태양과 별빛을 볼 수 있다. 불명예스럽게 아니, 치욕적으로 사람들과 조국 앞에 서지 않고도 그 어디서나 고귀한 진리를 생각할 수 있다.... 세계 전체가 내 고향이다"

  고향을 잃었기에 단테는 세계적 관점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조각가 로렌초 기베르티의 말처럼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배운 자는 타국에 있어도 이방인이 아니며,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친구가 없어도 그는 온 도시의 시민이며, 두려움 없이 운명을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배움을 즐기고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어디에 자리를 펴든 그곳이 바로 고향이니까요.

추방에 즈음하여 단테의 정신적 확장은 '신곡'의 집필을 시작하게 했고 죽기 전에야 완성하였습니다. 이 위대한 시는 떠도는 자의 20년간의 고뇌였고, 분노였고, 주술이었고, 깨달음이었을 겁니다. 그는 '더 이상 명예가 필요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명예를 갈망했으나' 그 무상함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내용은 차치하고 그 문장의 힘으로 무찔러오는 단테는 르네상스 예술가들의 영감의 원천이었을 뿐 아니라 당대의 대중을 압도 했으니 당나귀 몰이꾼 까지 단테의 칸초네를 읊조렸다고 합니다.

 만일 단테가 살아서 지금 고향 피렌체로 귀향한다면 아무 어려움 없이 자신의 집을 찾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피렌체의 거리는 700년 전의 그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가 지금 피렌체 사람들에게 700년 전의 언어로 말을 건네 온다하더라도 별 어려움 없이 서로 알아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토스카나의 방안은 이탈리아 언어의 이상어가 되었고, 그로 인해 비로소 사람들이 쓸만한 풍요로운 언어가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변합니다. 이것이 유일한 변화의 불변의 법칙입니다. 그래서 변화경영전문가이며 변화경영 사상가가 되고 싶은 나같은 사람이 먹고 살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요즘 식으로 말한다면 '컨텐츠는 영원하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700년 동안 바뀐 것이 별로 없는 피렌체에 여전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피렌체 주민들은 그 몰려든 사람들로 먹고 살고 있는 것을 보면 컨텐츠의 힘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과거를 보기 위해 피렌체에 가지는 않으니까요. 

   '신곡'의 구성과 기본 사상은 중세의 산물이지만 이 작품이 모든 근대시의 효시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그 속에 인간의 내면과 영혼을 드러내는 대목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페이지 어느 대목에서건 인간의 모습과 정신이 구체적이고 입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으니까요.    그가 내세의 일을 그토록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기 까지 얼마나 많은 이승의 사건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연구했을지 추측할 수 있습니다. 몸짓의 묘사 하나로 내면을 고스란히 보여주기 위해서 얼마나 삶에 대한 진지함이 깊었겠습니까?   모두 방랑에서 얻은 지혜였을 것입니다.



Dante and Beatrice, 1915. By John William Waterhouse (1849-1917)

 
 " 그런 뒤 앞에 기록한 바와 같이 이 거룩한 여인이 나타난 이래 정확히 아홉 해가 될만큼 많은 날들이 지나
그 마지막 날에 이르렀을 때
이 찬탄할 만한 여인이 두 명의 고귀한 여인들 사이에서 하얀 옷을 입고 내게 나타났다 "


Vita Nova 3


   그러므로 자기경영은 스스로를 추방하여 경계인이 되는 것입니다.   나를 키워 온 뿌리에서 멀어져 스스로 벽으로 세워 둔 좁고 편안한 틀 안을 버리고 하나의 바람으로 떠나 보는 것입니다. 가슴 속에 텅 빈 열린 공간을 마련해 두어 새로운 바람이 그 속으로 들락거리며 들려주는 속삭임을 듣는 것입니다. 중세 천년의 엄격한 구조로부터 르네상스라는 불길을 타오르게 한 것은 바로 그 바람이었으니까요. 굽이굽이 세상의 모든 구석을 거쳐 까마득히 먼 과거에서 미래로 불어가는 바람 속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들어있을까요.  그 바람이 보고 듣고 전하는 목소리를 들어 보세요.   그것은 아마 심장으로 들어야 들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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