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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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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9일 08시 23분 등록

응급실로 와 달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무슨 일인지 묻기도 전에 전화는 끊어졌고,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30분 후에 시작될 중요한 회의의 발표를 맡았는데, 아직 준비를 못했기 때문입니다.‘빨리 끝내고 와야지!’다짐을 하고 갔더니, 할머니와 응급실 인턴이 말다툼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 괜찮다니까..”

“할머니, 빨리 하셔야 된다니까요.”

“안 해도 괜찮다니까 그래”

“할머니~~”

 

78세의 강민자(가명) 할머니는 은행 식당에서 일합니다. 은행직원 15명의 점심식사를 혼자서 챙겨주는 일을 36년째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식사 준비를 하다가 손가락을 다쳤습니다. 식당에서 사용하는 커다란 햄 깡통을 개봉하다가 날카로운 면에 왼손 엄지손가락을 베었고, 두 군데의 신경이 같이 잘려서, 봉합수술을 빨리 해야 하는 급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이정도 상처로 무슨 수술을 하냐?’며 집에 간다 하시고, 의사는 할머니를 설득하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빨리 수술하셔야 해요.”

“뭐, 이까짓 것 가지고 수술을 해?”

“아까 검사하실 때,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으셨죠? 신경이 눈에 보이지 않아서 별것 아닌 것 같겠지만, 그대로 두면 엄지손가락을 아예 움직이지 못하게 되요.”

“손가락 하나 못 움직여도 괜찮아”

 

“그뿐인 줄 아세요. 감각이 없어져서 요리하다가 손가락이 칼에 베이거나, 불에 타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되요. 그래도 괜찮으세요? 빨리 봉합을 해야 된다구요.

“그래? 나는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저희가 별거 아니면 이런 얘기 안해요. 수술하실 거죠?”

“괜찮아. 안해도 될 것 같아”

“할머니! 다른 환자들도 봐야 해요. 저희도 바쁘다구요.”

 

응급실은 늘 시간에 쫓깁니다. 실랑이가 길어지면서 의사는 짜증을 내는데, 할머니는 남의 일처럼 웃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할머니, 웃는 표정이 백만불 입니다. 슬쩍 슬쩍 웃는 미소에도 환한 에너지가 전해지는 하회탈 같은, 평생을 기도와 수행으로 살아 온 수도자의 얼굴에서 볼 수 있는 평화로운 웃음이었습니다. 그런 미소를 지으며 히죽히죽 웃고 있으니, 속이 타는 건 할머니를 데려 온 은행직원과 의료진입니다. 저도 설득을 시작했습니다.

 

“할머니, 병원에 다닌 적 있으세요?”

“없어, 난 병원에 안 와. 오늘이 난생 처음 병원에 온 거야.”

“병원이 돈 벌려는게 아니구요. 빨리 낫게 해드리려고 하는 거에요. 수술하고 하루만 입원하면 나을 수 있는데, 왜 안 하실려고 하세요?”

“난 괜찮아”

“뭐가 괜찮아요? 지금 의사 설명 들으셨죠? 빨리 수술하시지 않으면 큰일나요.”

“괜찮아, 집에 갈래”

 

“아드님 있으세요? 수술을 하던 하지 않던 보호자가 있어야 해요.”

“아들은 바뻐. 시장에서 일해. 뭐 이런 걸로 아들을 불러. 부를 필요 없어”

“손가락을 못쓰게 되도 좋으세요?”

“괜찮아. 살만큼 살았는데 뭐. 일 그만하고 집에서 쉬면 되지 뭐..”

 

상황이 짐작되었습니다. 은행직원에게 빨리 아들에게 연락을 하라고 했습니다. 평생을 병원을 다니지 않은 할머니가, 고까짓 손가락 베인 일(?) 로 병원비 부담을 아들에게 주면서까지 수술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의사에게는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급하게 회의를 마치고 오니, 상황은 이미 정리되었습니다. 아들이 와서 할머니는 입원을 했고, 바로 봉합수술을 받고는 경과가 좋아서 다음날 퇴원했습니다. 병원비는 은행직원들이 조금씩 돈을 모아서 내주었으니 모두가 행복한 해피엔딩입니다.

 

며칠 뒤, 성형외과 앞에서 할머니와 마주쳤습니다. 인사를 드렸더니 반갑게 맞으시면서 실밥을 풀러 왔다고 합니다. 집에서 쉬겠다던 할머니의 말이 생각나 물었습니다.

 

“할머니! 이제 일 안하실 거에요?”

“아니 왜? 내일부터 일하기로 했어”

“지난 번에는 아드님 부담주기 싫어서 수술을 안 한다고 하신거죠?”

“아니 뭐. 괜찮은 것 같아서 그랬지......”

 

자식에게 부담주기 싫은 우리 어머니들의 지독한 자식사랑...늘 괜찮지요.뻔~히 보입니다. 그런데 말이에요. 그 웃음, 모든 상황을 웃음으로 눙치는 할머니가 다시 그 천진난만하고 귀여운 웃음을 보이시는데, 갑자기 어쩔 줄을 모르겠습니다. 웃음에 전염되어 같이 크게 웃는데 눈물이 나는 느낌이랄까요?

 

너무 뻔해서,

너무 짠한 거,

그게 사람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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