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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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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13일 12시 59분 등록

 

만약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 뿐이다.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무라카미 하루키 -

 

일요일 새벽 5시, 사업으로 바쁜 그가 먼저 일어나는 것을 보고 차에 동승했습니다. 가평에서 서울로 가는 춘천 고속도로는 텅 비어 있습니다. 새벽까지 통음을 하며 불렀던 노래 탓에 목이 아프고 칼칼합니다. 바람이 신선합니다. 지나간 세월이 영화처럼 머릿속에 스쳐갑니다.

 

“시간이 참 빨리 흘러간다. 그지?”

“그러게 말야...벌써 12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

 

‘코크리어(cochlea)’는 귀 속에 있는 ‘달팽이관’을 말합니다. 소리의 높낮이를 구별하는 청각기관이고, 병원에서 처음 만들었던 밴드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95년 병원에 입사했을 때, 저는 틈만 나면 모여 술을 먹던 4명의 남자들 중 한명이었습니다. 30대 초반의 남자 4명이 모여, 병원 주변의 술집들을 완전히 섭렵했을 때, 저는 밴드를 구성해서 환자를 위한 공연을 하자고 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술집을 섭렵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뭔가 의미있는 즐거움이 지속되기를 원했습니다.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은 기타치는 저밖에 없고, 악기도 없으며, 연습실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중요한 건 음악실력이나 환경이 아닙니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은 무언가가 필요한 거였죠. 악기를 구입하고 건반, 베이스, 드럼, 기타 등 학원에서 1인 1악기를 배우며, 음악은 구성원들에게 삶의 열정을 불러 일으켰고, 열정은 지루한 일상에 활력을 주는 에너지가 되었습니다.

 

직원 80% 가 여성인 병원이라는 환경에서 느끼는 남자들의 상대적인 외로움, 강한 결속을 원했던 뜨거운 젊음은 음악을 분출구로 삼았습니다. 어설픈 솜씨로 환우위로행사, 크리스마스 캐롤잔치 등 각종 행사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렇게 ‘코크리어’는 삶의 지루함과 열정의 평형을 유지시켜 주는 존재였습니다.

 

콘서트를 하게 된 계기는 드럼을 맡고 있던 동료의 퇴직이었습니다. 조직생활에서 참을 수 없는 인간관계의 갈등과 분노가, 그에게 아무 대책없는 사표를 쓰게 했고, 무력하게 술잔만 기울이던 우리는 그를 위해 코크리어 최초의 ‘콘서트’ 를 열어주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퇴직하기 일주일 전에, 콘서트를 열었고, 먼저 보내는 동료에 대한 미안함과 아쉬움의 결과물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이 2000년 10월이었습니다.

 

그러나 젊음의 시간이 지나가고, 결혼, 아이들이 생기면서 생활고가 음악의 열정을 대체하기 시작했습니다. 드러머의 퇴직으로 합주는 하지 못했고 바빠진 병원업무로 서로의 관계도 시들해졌습니다. 가끔씩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과거를 추억할 뿐, 함께 하는 콘서트는 생각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엠티를 가기로 했을 때, 전날 문자를 날렸습니다.

‘각자 한 곡씩 [내 인생의 노래] 와 선정이유를 준비해 와. 가평에서 작은 공연을 해보자.’

 

12년 전 사표를 냈던, 지금은 의료기기 회사 사장이 된 그가 가평에 도착한 시간은 밤 11시였습니다. 준비해 간 마이크와 앰프를 사용하지는 못했지만, 새벽 2시까지 우리는 신나게 놀았습니다. 옆 펜션에서 사람들이 몰려 와 항의를 하지 않았으면 아마 밤을 샜을 겁니다. 각자가 선택한 인생의 노래는 대부분 공연시 불렀던 노래들입니다. 윤도현의 ‘사랑 투’, 김동율의 ‘기억의 습작’, 럼블 피쉬의 ‘예감 좋은 날’ 등. 두 대의 기타와 젓가락 드럼에 맞추어, 고래고래 악을 쓰며 지난 12년의 추억을 되살렸습니다.

 

생각해보니 낭비하며 살았습니다. 음악과 술과 젊음을 낭비했습니다. 생은 시간으로 이루어진 것이니, 돌아다보면 낭비한 시간의 아쉬움이 없을 리 없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두 길을 걸을 수는 없습니다. 오직 한 길을 걸을 수 있을 뿐입니다. 세월의 끝에서 돌아봤을 때, 나는 무엇에 시간을 낭비하며 살았는지, 최종 평가자는 오직 자신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계속 달려야 하는 아주 적은 이유를 찾고, 그것을 단련하는 것이겠지요.

 

제 인생의 노래는 한 곡이 아닙니다. 현재 한 30곡 정도 됩니다. 총 365곡을 만들어 하루에 한 곡씩 인생의 노래를 부르며 살겠다는 것이 제 야무진 꿈이죠. 그날 제가 선택한 인생의 노래는 백무산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김씨의 사랑노래’입니다. 연말, 변화경영연구소 송년회에 오십시요. 어설프지만 끝내주는(?)  노래를 들려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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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13 14:14:03 *.64.140.235

적지만 중요한 나의 이유들이 수없이 쏟아지는 타인의 이유에 뭍혀

값진 자신의 인생을 하나씩 만들어 가는데 방해를 받고 있는것은 아닌지

요즘의 제 상황들을 놓고 곰곰히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음악을 즐기시는 상황도 비슷하고 공감되어 마치 제 이야기인양 보고 또 보았습니다.

연말의 멋진 공연을 기대하겠습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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