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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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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7일 09시 50분 등록

지난 금요일, 교회 셀그룹 모임에서 순장님이 아주 작고 소박한 노트를 선물해 주셨습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11*15cm 19, 48)의 노트입니다. 노트를 선물만 주다가 받아보니 기분이 참 좋더군요. 순장님이 멤버들에게 노트를 선물한 것은 얼마 전 저희 교회 목사님의 설교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설교중에 남부교도소에 1천권의 감사 노트를 기증한 탤런트 김혜자씨의 이야기를 해주셨거든요. 그 노트에 수감자들이 썼다는 감사제목을 몇 가지 소개해주었는데 코 끝이 찡해지는 내용들이었습니다.

직접 운영하는 프로그램에서 저도 사람들과 감사노트를 여러 번 시도했고, 개인적으로도 여러 형태의 감사노트를 써본 경험이 있습니다. 감사노트의 효과에 대해 좀 안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지금그것을 하고 있지 않다면 그건 그저 아는 것일 뿐이지요. 모든 것이 현재형이 아니면 무익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지금 여기, 현재를 살아내고 있으니까요. 제가 가장 혐오하는 사람은, 과거를 들먹이며 허세를 부리지만 현재는 그 삶을 살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 혐오하는 사람이 제 자신이 될 때가 실은 가장 괴롭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노트를 선물 받았을 때 당장시작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선물 받은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지금 여기서 첫 페이지를 함께 채우면 어떨까요?’

그곳에서 시작한 한 페이지 덕분에 지난 일주일 동안 그 노트를 끝까지 다 채울 수 있었습니다. 하루에 3장씩, 그러니까 6페이지씩을 채운 셈입니다. 처음 하루를 쓰고 나니 자연스럽게 감사노트가 진화를 했습니다. 처음엔 감사제목만 적었는데, 기억력이 현저히 떨어진 저 자신을 위해 감사의 이유도 적게 되었고, 감사하지 못하는 일에 대해서도 적게 되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자신의 약점을 보게되니 자연스럽게 기도가 흘러나와 기도문까지 적게 되었습니다. 노트가 작으니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집안에서조차도) 어디서든 쓸 수 있어 감사의 내용이 매우 세밀해졌습니다. 자연스럽게 하루의 일과와 심리적 변화까지 담은 꽤나 괜찮은 일기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조금은 객관적인 입장에서 자신의 하루를 세밀히 기록하면 여러 면에서 유익이 있습니다. 감사 노트와 함께 한 지난 일주일을 자평하건대 아주 질적이고 밀도 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달라진 거 없이 늘 하던 일을 했지만 아주 다른 차원, 다른 기분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제 안에 작동하기 시작한 기분 좋은 에너지를 in motion 상태로 계속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주일 내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결정과 선택에 있어서도 내 자신의 통제력이 높아졌습니다.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을 때 피해의식이 생기고 그 피해의식이 사람을 희생자로 만들지요. 그런 메커니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글에 적고 스스로 선언하는 순간 해방(?!)은 바로 임했습니다. 틈만 나면 적는 노트가 그런 선순환을 지속하도록 저를 지킨 것입니다.

베란다 창고에 먼지 뒤집어쓰고 있던 녹음기가 요즘 제가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 주방으로 나오게 되었고, 무슨 일을 하든 제 몸에서 노래와 춤이 자주 흘러나왔습니다. 아이들이 노래를 흥얼거리는 시간도 늘었습니다. 고양이와 강아지의 발걸음도 더 경쾌해진 듯합니다. 아무튼, 집안 분위기가 지난 일주일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놀랐습니다. ‘이 집에서 내 영향력이 이다지도 컸단 말인가!’      

세밀하게 기록하는 것, 제가 좋아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핑계로 오래도록 시도해보지 않았습니다. 이번 감사노트를 계기로 대상을 바꾸어가며 가끔은 세밀하게 기록을 해봐야겠다는 의욕이 생겼습니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당분간 모시게 된 구순의 우리 어머니, 그리고 내게 아이기르는 재미를 되돌려준 우리집 귀염둥이 고양이 PYG입니다. ,. 1999년에 분초 단위로 기록을 한 적이 있습니다. 10살된 첫째가 외국에서 댕기열병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인데요. 입원한 아이 옆에서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적는 일이었습니다. 기도와 함께 매 순간을 노트에 빠짐없이 적었습니다.(참고로 저의 기록 강박은 역사가 좀 된답니다) 덕분일까요. 아이는 잘 회복했고 제 손에는 깨알같이 채워진 작고 두터운 노트 한 권이 남겨졌습니다. 그런데 그 노트, 어떻게 된 줄 아세요. 소매치기를 당했답니다. 노트가 든 가방 채 말이죠. ㅎㅎ

이 편지를 마치면 문방구 나들이를 하려고 합니다. 똑 같은 노트를 사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딱 한 권만 사 들고 올 작정입니다. 일주일 다시 그 한 권을 채우면 또 다시 문방구에 갈 겁니다. 일주일 단위로 결심하고 실행하고를 반복해 보려고요. 잘 해서 한 달 이상을 지속하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욕심 내지 않으려구요. 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여러분이라면 아실 겁니다. 크게 목표를 세우는 것 자체가 좌절을 미리 설계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요.

여러분도 감사노트, 써보지 않을래요. 일단 일주일만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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